요한복음 06:01-15 우리의 결핍을 아시고 작은 헌신을 통해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생명의 떡

by 평화의길벗 posted Feb 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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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06:01-15 우리의 결핍을 아시고 작은 헌신을 통해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생명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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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이 가까울 무렵, 예수님은 디베랴 건너편 산에 오르십니다. 수많은 무리가 표적을 보고 따르자,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시며 떡을 사서 먹이게 하십니다. 빌립은 계산적인 불가능을 말하지만, 안드레는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축사(감사 기도)하시고 나눠주게 하시어 남자만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차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왕 삼으려 하자 예수님은 홀로 산으로 떠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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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적 배경 : 본문의 배경인 갈릴리 바다(디베랴 바다) 건너편은 벳새다 광야 지역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의 통치 아래 있었으며, 많은 사람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 절기적 배경 : '유월절이 가까운 때'(4절)라는 언급은 매우 중요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먹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엄밀한 역사적 의미에서 유월절은 출애굽 당일 어린 양의 피와 무교병을 먹은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지만, 요한복음 6장은 이 유월절 배경을 통해 예수님을 광야에서 만나를 먹였던 모세와 대조하고, 예수님 자신이 '참된 하늘의 떡(만나)'이심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유월절을 만나 사건 기념까지 연결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모세보다 위대하신 분이며, 광야에서 백성을 먹이시는 참된 구원자이심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 신학적 배경 : 오병이어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유일한 이적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를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표적(semeion)'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떡을 떼어 축사하시는 장면은 성만찬을 예표하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살을 내어주시는 '생명의 떡'이심을 암시합니다. 오늘은 빈 들 같은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셔서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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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빈 들에 모인 무리와 유월절 :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친히 사람들의 질병과 배고픔을 아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다가오시는 긍휼의 주님.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자 큰 무리가 따릅니다. 이는 그들이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산에 앉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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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가 예수님을 따른 동기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필요와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예수님이 '산에 앉으셨다'는 표현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연상시키며, 예수님이 모세를 능가하는 새로운 율법(말씀)의 수여자이심을 암시합니다. 또한 '유월절'의 배경은 예수님이 장차 십자가에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온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실 것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무리의 잘못된 동기조차 아셨지만, 그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들의 결핍을 채워주실 준비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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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동기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단순히 내 병이 낫고, 사업이 잘되고, 자녀가 성공하는 '표적' 때문에 주님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기적을 바라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님 자체를 사모하며, 말씀이 선포되는 은혜의 산(예배의 자리)에 앉기를 즐겨야 합니다. 이번 한 주, 나의 필요보다 주님의 임재를 더 갈망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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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절 빌립의 계산과 안드레의 믿음 : 우리의 이성적 계산과 한계를 시험하시며, 작고 보잘것없는 헌신을 통해 일하기를 기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님은 빌립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빌립은 200 데나리온의 떡도 부족하다고 계산적으로 대답합니다. 반면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를 데려옵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라며 회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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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미 어떻게 하실지를 알고 계셨습니다(6절). 주님의 질문은 제자들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테스트였습니다.

빌립의 반응 : 그는 이성적이고 계산이 빨랐습니다. 그는 '돈'과 '불가능한 현실'을 먼저 보았습니다.

안드레의 반응 : 그는 작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찾았습니다. '보리떡'은 당시 가난한 자들의 주식이었습니다. 지극히 초라한 도시락이었지만, 그것을 주님 손에 올려드렸습니다. 비록 안드레도 확신은 없었으나, 예수님은 이 작은 헌신을 통해 기적을 행하실 재료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순종을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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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경제적인 문제나 해결할 수 없는 난관이 닥칠 때 우리는 빌립처럼 계산기부터 두드리기 쉽습니다. "이 월급으로는 안 돼", "지금 얼마나 안 좋은데"라며 안 되는 이유를 찾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너에게 있는 작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내가 가진 것이 보리떡처럼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것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의 작은 시간, 나의 작은 물질, 나의 작은 재능을 주님께 가져가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계산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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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3절 축사하시고 풍성히 먹이시는 주님 : 감사 기도를 통해 작은 것을 창조적 능력으로 변화시켜 모든 이에게 풍성한 생명을 공급하시는 공급자 하나님

예수님은 사람들을 앉게 하시고 떡과 물고기를 가져사 '축사(감사 기도)'하신 후에 나눠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원대로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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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하셨다(eucharisteo)'는 말은 감사를 드렸다는 뜻으로, 성만찬 제정 때 사용된 단어와 같습니다. 이는 이 기적이 단순한 배부름을 넘어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보여주는 성례전적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은 떡을 창조하시되 '원대로', 즉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12바구니가 남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함이 없으며, 차고 넘침을 보여줍니다(12는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완전수).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 아니라 후히 주시고 누르게 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남은 조각을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소중히 여겨야 함을 교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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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광야 같은 우리 인생에 식탁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혹시 지금 삶이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끼십니까? 감사가 기적의 시작입니다. 보리떡 같은 현실을 들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주님은 성도님들의 가정 식탁과 일터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결핍을 풍요로 바꾸시고 남음이 있는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이웃과 나누며 은혜의 부스러기까지 소중히 거두는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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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5절 억지로 왕 삼으려는 자들을 떠나심 : 세상적 성공과 정치적 왕이 되기를 거부하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

사람들은 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말하며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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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들은 신명기 18장 15절에 예언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정치적 해방자와 경제적 해결사로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삼으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왕'이 되기를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군림이 아니라,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정한 왕의 길을 가시기 위해 홀로 산(기도의 자리)으로 물러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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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내 성공의 도구, 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깨비방망이'나 '해결사'로만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믿으면 부자 된다"는 식의 기복신앙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 삼으려는 군중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지만, 내 욕망을 위한 왕이 아니라 내 삶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세상의 환호와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홀로 하나님 앞에 머무시는 예수님의 고독과 기도를 본받읍시다. 우리의 기도가 "내 뜻을 이루어 주소서"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소서"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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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빈 들에 찾아오셔서 

생명의 떡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빌립처럼 계산하며 "안 된다, 부족하다"고 불평할 때가 많았고, 

때로는 예수님을 내 배고픔을 해결할 도구로만 여겼던 

연약한 모습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보잘것없는 보리떡 다섯 개를 주님 손에 올려드린 

안드레의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작은 헌신과 땀방울을 

주님 손에 올려드립니다. 

주님께서 축사하여 주셔서,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 부족함이 없고 남음이 있는 

풍성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썩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참된 만족을 누리게 하시고, 

세상의 헛된 영광을 뒤로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던 주님을 본받아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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