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5:31-47 성경과 하나님 아버지가 친히 증언하시는 영생의 수여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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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선포하신 예수님(5:17-30)은 이제 자신을 증거하는 확실한 증인들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증언이 필요 없으시지만, 너희의 구원을 위해 세례 요한을 언급하십니다. 그러나 요한보다 더 큰 증거는 아버지께서 맡기신 '역사(일)'와 '아버지' 자신입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연구하면서도 정작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께로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사람의 영광만 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에 믿지 못함을 지적하시며, 그들이 의지하던 모세가 오히려 그들을 고발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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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적 배경 : 유대 율법(신 19:15)에 따르면 어떤 사실이 참되다고 인정받으려면 '두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유대인들이라는 거대한 불신의 법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확실한 증인들(세례 요한, 성부 하나님, 성경, 모세)을 차례로 내세우고 계십니다.
# 문화적 배경 : 당시 명예와 수치(Honor and Shame) 문화에서 '영광'을 구하는 것은 사회적 인정과 평판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서로의 칭찬(영광)은 탐했지만,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인정(영광)은 무시했습니다.
# 신학적 배경 : 본문은 '기독론'의 정수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주인공이시며, 모세가 기록한 그 선지자(신 18:15)이심을 드러냅니다. '연구하다'(39절)는 단어는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깊이 파고들어 조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유대인들의 성경 연구가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 지적 유희에 불과했음을 보여줍니다.
# 오늘 주님은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쓰는 우리에게 참된 증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짜 생명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지친 심령이 위로를 얻고, 말씀 속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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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32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 : 자신을 스스로 증언하지 않으시고, 또 다른 참된 증언자이신 성부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진실성을 확증하시는 신실하신 아들.
예수님은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계시니" 그분의 증언이 참인 줄 안다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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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예수님은 유대 법정의 원칙을 존중하십니다. 스스로 자신을 증거하는 것은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결정적인 증인이 따로 계십니다. 여기서 '따로 계신 이(allos)'는 예수님과 구별되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권위를 가진 성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고립된 자가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가 완벽한 연합 속에서 서로를 증거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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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세상에서 나의 진심이 통하지 않고 오해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를 변호하려 할수록 더 꼬이는 상황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그때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를 위해 친히 변호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나의 정당성을 내가 입증하려 애쓰기보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 증명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믿음의 여유를 가집시다. 주님이 아시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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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35절 켜서 비추이는 등불, 요한 : 비록 사람의 증언이 필요 없으시나,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세례 요한을 '켜서 비추는 등불'로 사용하시는 자비로운 주님.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 그가 진리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않지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었고, 너희는 잠시 그 빛을 즐거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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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의 추천서나 보증이 필요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례 요한을 언급하신 이유는 오직 하나, 듣는 이들의 '구원'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등불'이라고 부르십니다. 등불은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이 아닙니다. 기름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누군가 켜줘야만 빛나는 도구일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요한의 등장을 축제처럼 즐겼지만(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정작 그 등불이 비추고 있는 실체인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메신저(요한)에게 열광했을 뿐, 메시지(예수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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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교회 안에서 사람에게 집중할 때가 많습니다. 훌륭한 목사님, 은혜로운 찬양팀, 좋은 프로그램, 묵상 등은 모두 '등불'일 뿐입니다. 등불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 빛이 비추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면 헛된 것입니다. 우리 광양사랑의교회는 등불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등불이 가리키는 참 빛,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세상 속에서 나를 태워 예수님을 비추는 작은 등불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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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38절 더 큰 증거, 아버지의 역사 :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인 '아버지의 역사(일)'와 '아버지의 음성'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증명하시는 권능의 하나님.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증언합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해 증언하셨으나, 너희는 그 음성을 듣지 못했고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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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증언은 말뿐이었지만, 예수님의 증거는 '역사(일들)'입니다. 이는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기적뿐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실 구원 사역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 사역들은 인간이 할 수 없는 하나님 고유의 일이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가장 확실한 도장(인증)이 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 속에 '말씀이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38절). 그들은 말씀을 지식으로만 소유했지, 인격적인 거처로 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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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의 '열매'와 '능력'입니다. 제철소에서 용광로가 뜨거운 불을 내뿜듯, 성도의 삶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내가 행하는 선한 일, 용서, 희생이 내가 예수님께 속한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또한, 말씀을 귀로만 듣고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말씀이 내 인격 안에 '거하게' 하십시오. 말씀이 내 안에 머물러 나를 주장할 때, 우리는 세상이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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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40절 성경이 증언하는 분 : 성경이 곧 예수님 자신에 대한 증언임을 밝히시며, 성경 지식에 머물지 않고 생명의 주체인 자신에게 나아오기를 촉구하시는 생명의 주님.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지만,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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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연구하다'는 샅샅이 뒤지고 조사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성경 텍스트 자체에 마술적인 생명이 있다고 믿고 랍비들의 해석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습니다. 성경은 목적지가 아니라 표지판입니다. 모든 구약 성경은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표지판(성경)을 붙들고 연구하면서, 정작 표지판이 가리키는 목적지(예수님)에게로 오는 것을 의지적으로 거부했습니다("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것은 지적 무지가 아니라 의지적 불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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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도 '성경 공부'나 ‘묵상’ 그 자체에 만족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성경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 곧 신앙의 성장은 아닙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 속에서 나를 사랑하사 죽으신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큐티를 하고 설교를 듣는 목적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나아가 그분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성경 읽기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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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47절 사람의 영광 vs 하나님의 영광 :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탐욕과 하나님 사랑의 부재를 책망하시며, 모세의 글(율법)을 통해 불신앙을 고발하시는 심판의 주님.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않습니다. 다만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되 영접하지 않으나,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할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하나님의 영광은 구하지 않으니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모세가 너희를 고발할 것입니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다면 나를 믿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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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근본 원인이 밝혀집니다. 그것은 증거 부족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부재(42절) : 그들은 율법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영광 추구(44절) : 그들은 '서로' 영광을 주고받았습니다. 사람들의 평판, 사회적 지위, 종교적 명예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의 영광에 눈이 멀면 하늘의 영광(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세의 고발(45-47절) : 그들이 굳게 믿었던 변호인 모세가 도리어 검사가 되어 그들을 고발합니다. 모세오경은 결국 예수님을 예표하는 그림자였기 때문입니다. 실체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그림자인 모세의 글조차 믿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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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뼈아픈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누구의 인정을 바라고 사십니까?" 직장에서의 승진, 사람들의 칭찬, 자녀의 성공을 통한 대리 만족...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영광'에 목매달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십시오.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 즉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칭찬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광양 땅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비굴하지 않고 당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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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수많은 증거를 보여주신 주님의 열심과 사랑을 깨닫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유대인들처럼 성경 지식은 쌓으면서도
정작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식어있지 않았는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주님, 이제는 등불에 불과한 사람이나 환경에 시선을 두지 않고,
참 빛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우리의 지식이 머리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내려와
삶의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서로 영광을 취하려는 세상의 헛된 욕망을 버리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칭찬과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하는 광양사랑의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참된 증거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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