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43-54 보지 않고도 믿는 이의 복된 발걸음

by 평화의길벗 posted Feb 1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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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43-54 보지 않고도 믿는 이의 복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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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은 표징과 기적에 매몰되는 화려함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기대어 묵묵히 일상을 걸어가는 순명(順命)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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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가나에 다시 햇살이 내리쬡니다. 일찍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삶을 축제로 만드셨던 주님께서 그곳에 다시 발을 들이셨을 때, 한 고관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찾아옵니다. 가버나움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둔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권세라는 화려한 겉옷을 걸치고 있었으나,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그저 '파리하고 납작한 영혼'일 뿐이었습니다. 절박함에 가슴을 치는 그에게 예수는 뜻밖의 준엄한 사자후를 던지십니다. "너희는 표징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구나."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를 구하곤 합니다. 기적이 일어나야, 병이 나아야, 꼬인 문제가 풀려야 비로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고백하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거죽'이 아니라 '실체'에 집착하는 우리의 얄팍한 믿음을 수술 칼처럼 도려내십니다. 신앙은 내 욕망을 채워주는 '알리바바의 주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을 일치시키는 고통스러운 자기 부정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고관에게 "가거라, 네 아들이 살았다"는 단 한 마디만을 던지십니다. 어떤 안수도, 장엄한 의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그 말씀을 '믿고' 길을 떠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전율을 느낍니다. 기적이 일어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말씀 하나에 자기 생을 걸었습니다.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주님의 음성 속에서 그는 이미 아들의 살아남을 보았던 것입니다. 진정한 영성은 신령한 체험을 쫓는 들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말씀을 닻으로 삼아 거친 세상을 견디는 인내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삶이 곤고하여 하나님의 부재를 느낄 때가 있습니까? 혹은 기적 같은 반전을 기대하며 하늘만 바라보고 계십니까?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기적은 우리가 말씀을 믿고 발걸음을 뗄 때, 그 '순명'의 여정 위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안은 환경이 변해서가 아니라,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바닥 위에 우리가 새겨져 있음을 믿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거창한 표징이 없어도 좋습니다. 오늘 내게 주신 일상의 자리가 곧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임을 믿고 뚜벅뚜벅 걸어가십시오. 우리가 말씀의 빛 속을 거닐 때, 우리 삶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찬란한 축제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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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43-54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용기, 그 말씀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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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표적을 보여달라고 아우성치는 세상 속에서, “가라”는 주님의 말씀 한 마디를 등불 삼아, 여전히 결과가 보이지 않는 삶의 내리막길을 묵묵히 걸어 내려가는 ‘거룩한 모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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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시샘을 부려도 기어코 봄은 오고야 말듯, 우리네 팍팍한 일상에도 주님의 은총은 어김없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사연과 무게를 짊어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모호함 속에서 여전히 길을 찾고 계신 모든 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때로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아찔하고 막막합니다. 아무리 애써도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마주할 때, 우리는 무력감에 젖어들곤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4장의 왕의 신하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는 가버나움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며 살았지만,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그 권력도, 재물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가 계신 가나까지, 그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십시오. 그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요 4:47).

이 절박한 아버지의 외침은 단순한 요청이 아닙니다. 이 아버지의 부르짖음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인간 실존이 생명의 주인이신 분께 던지는 가장 처절하고도 원초적인 물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로 차갑게 느껴집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 즉 표적을 원합니다. 기적적인 치유나 문제 해결을 눈으로 확인해야 비로소 안심하고 하나님을 믿으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보는 것'에 의존하는 신앙을 넘어, '듣는 것' 곧 말씀에 생명을 거는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꾸중은 그를 밀어내려는 차가운 거절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진리로 승화시키려는 ‘뜨거운 사랑의 담금질’이었습니다.

신하는 물러서지 않고 다시 간청합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요 4:49). 그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요 4:50). 예수님은 그와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지 않으셨습니다. 병 고침의 현장을 보여주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말씀 한 마디만 허공에 던져주셨을 뿐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요 4:50)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눈에 아무 증거 보이지 않고, 귀에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아도,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하나를 움켜쥐고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묵상’의 삶입니다. 묵상은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Relationship)”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말씀을 나의 삶으로 ‘번역(Translation)’해 내는 과정입니다. 왕의 신하가 “가라”는 말씀을 듣고 발걸음을 옮긴 그 순간, 그는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번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나에서 가버나움까지 내려가는 그 길은 평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 나았을까?”, “가다가 부고를 듣지는 않을까?” 수많은 의심과 불안이 그를 괴롭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걸었습니다. 한동일 변호사는 “일어나 가자(Surgite, eamus)”라고 말하며,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은 내 의지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임을 역설합니다. 신하를 걷게 한 것은 자신의 확신이 아니라, 그를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의 말씀이 가진 ‘인력(引力)’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내려가는 길에서 종들을 만나 아이가 살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열기가 떨어진 때를 물으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각이었습니다(요 4:52-53). 예수님은 굳이 가버나움까지 몸을 움직이지 않으셨지만, 당신의 말씀과 마음은 이미 그 아픈 아이의 곁에, 그리고 애타는 아버지의 심정 속에 깊숙이 개입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왜 내게는 기적을 보여주지 않으시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매달리지 못하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자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기적을 보는 눈이 아니라,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가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귀입니다.

신앙은 증명된 결과를 손에 쥐고 떠나는 여행이 아닙니다. 약속의 말씀 하나를 지도 삼아, 여전히 모호하고 불안한 현실 속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용기입니다. 여러분이 걷는 그 고단한 길 위에 주님이 보이지 않는 동행자가 되어 함께 걷고 계십니다.

이제 불안의 짐을 내려놓고, 주님이 주신 말씀을 품고 여러분의 삶의 자리인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십시오. 우리가 말씀에 의지하여 걷는 그 걸음마다, 죽어가던 것들이 살아나고 식어졌던 열정이 다시 타오르는 ‘생명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신앙의 여정은 칠흑 같은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저 멀리 항구의 불빛은 보이지 않고 파도는 높지만, 선장은 오직 나침반의 바늘과 해도(海圖)를 믿고 키를 잡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그 나침반입니다. 당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반드시 생명의 항구에 닿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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