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01:19-28 요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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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자 세례 요한을 향한 보수 종교 기득권자들은 그의 정체성에 대해 세례와 연관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요한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자신은 참 빛이 아님을 밝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곧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소명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는 참빛의 증인으로서 빛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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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구성
요한복음 1장 19-51절은 앞으로 등장할 증인들의 증언을 요약해 줍니다. 물론 증거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1-18절이 새 집 혹은 새 성전, 신방의 설계도였다면, 19-51절은 집을 지으시는 목수와 집을 홍보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장에서 살필 19-34절에서는 증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선두격인 세례 요한이 소개되고, 35-51절에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등장합니다._<예수님을 알아가는 요한복음>_박대영_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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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28절 유대지역(예루살렘)과 이방 지역(베다니)에서 세례요한은 증언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빛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러 온 사명을 따라 요한은 빛되신 주님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한의 증언과 메신저를 오해하여 오히려 요한이 누구인지 묻게 됩니다.
왜 이들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서 질문하고 있을까요? 유대인(바리새인과 서기관)-예루살렘-제사장-레위인들, 이 네가지 민족-지명-직분-지파명에서 보여주는 것은 보수-선민-종교-성전의 기득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현재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표현들입니다. 새로운 빛에 대한 증언이 이들을 흔든 것으로 보입니다. 참 선지자의 등장으로 그동안 가려지고 돌출되지 않은 자신들의 문제나 한계가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 그런 상황에서 고대하던 메시아의 도래가 이미 온 것이 아닌가에 대한 불안한 생각도 사람을 보내게 된 동기로 보여집니다.
지금 내가 믿고 따르고 살고 바라고 소망하며 확신하는 것은 과연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편견속에 고착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안일한 만족과 고착된 생각에 빛되신 주님의 말씀은 파장을 일으키고 우리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게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실존과 한계를 깨달은 후라야 비로소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참 빛되신 주의 말씀 앞에 우리가 날마다 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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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절 나는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아나, 종말적 선지자나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작 세례요한을 보고 흔들려 분별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서 긴가민가 확인해 보고 있습니다. 자신들 스스로 나설 용기도 없고, 언제든지 부인하거나 발을 뺄 수 있을만큼만 진실에 접근하려고 하는 비겁하고 비열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황입니다.
만일 분별력과 영적 감각이 있었다면, 그래서 정말 메시아가 온 것이라고 믿었다면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와서 물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보낸 것은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믿음도 없었을 뿐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합당한 반응도 부족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고, 자신의 역할도 알았으며, 이어 오실 그이가 누구인지도 알고 자신이 그 메시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추종하고 몰려올 때 수많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자신의 정체성과 지위를 망각하고 본분을 잃어버리고 말년에 흔들렸던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보고, 그들의 환호와 추앙과 권력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앙의 연륜과 교회의 직분의 무게가 더해 질수록 깊이 생각하고 예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며 높일 때, 내게 과분한 칭찬과 찬사가 쏟아질 때, 단호하게 ‘나는 아니다' 하고 말함으로써 증인의 자리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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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3절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요한은 이사야서의 포로 귀환 곧 새출애굽에 관한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길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 가는 길도 스스로 만들지 못하니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한다는 것은 어둠과 죄악과 죽음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직접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래서 다만 자신은 그 일에 대해서 말하고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 전하는 소리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 곧 불확실과 혼돈 속에 있는 땅이면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곳에서 메시아의 도래를 외치는 소리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분명하게 재확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우리에게도 주님은 부르시고 세우신 목적이 있음을 믿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 가운데 이 사명을 감당해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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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27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네 번째로 다시 요한에게 묻습니다.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라면 왜 세례를 베푸는지 말입니다. 여러번의 질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급기야 노골적으로 요한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은 분명하게 답변하지 않지만 자신의 사명을 따라서 자신은 물로 세례를 줄 뿐이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계심을 말하고, 자신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주님의 종일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다가 자칫 말씀의 자리를 넘보며 내가 한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사람들이 착각하게 만들고 있진 않는지 돌아봅니다. 소리요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용서받을 수 없는 교만의 자리에 설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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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부르신 주님
지금 우리가 가진 신앙과 삶의 의미와 방향과 목적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지 점검케 하시고,
나를 부르신 그 뜻에 대해서 사명을 완수하는 날까지
흔들리거나 미혹되지 않도록 하옵시고,
광야에서 주님을 만나고 예비하며 전파하는
증인의 삶에 대해서도 겸손히 잘 감당하게 하옵시고,
오신 주님 앞에 모든 교만을 버리고
다만 소리일 뿐임을 기억하며
겸손히 주어진 모든 삶과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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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01:29-42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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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은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아도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 이후에, 자신에게 오는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 자신보다 먼저 계신 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심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합니다. 또한 제자들 둘과 있다가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하며 제자들을 보내고, 이에 예수를 따르게 된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고, 그 중 안드레가 자신의 형제인 시몬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여 만나게 하고, 이에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시몬의 이름을 게바(베드로)로 바꿔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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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위치
요한복음의 서두 1~18절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요한복음 전체의 주제로서 서시형태로 선언됩니다. 곧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사실을 선언하고 이제 그러한 선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후에 펼쳐지는 장들에서 상세하게 다양한 증인들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과 강론을 통해서 증거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이 부분은 창세기 1장을 배경으로 기록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증거가 곧 재창조 사역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그림은 1~18절의 선언이후에 계속 ‘이튿날’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마지막 가나의 혼인잔치의 표적에까지(2:11) 7일동안 진행됩니다. 이것은 창조의 그림을 다시한번 재 창조의 한 주간으로 제시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1~18의 주제가 요한복음 전체의 주제로 보는데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19~34절은 증거자 세례 요한의 증거를 통해서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이 증거 됩니다. 특별히 다양한 표현 중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을 들어 사용합니다. 여기서 요한을 통해서 처음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케 하는 것은 당시까지 세례요한의 추종자들이 여전히 있었고 더불어 유대인과 유대교와의 갈등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추종했던 요한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을 증언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일 뿐이며 자신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일뿐이라는 요한의 고백을 중요하게 언급함과 동시에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케 했던 것입니다. 이어서 35~51절에는 세례요한의 제자들에 의해서(35~42)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게 했고(43~49) 마지막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셨습니다(51)(본문의 개략적인 줄거리)
더불어 첫째 날(19-28), 둘째 날(29-34), 셋째 날(35-36), 넷째 날(39), 다섯째 날(40-42), 그리고 예수께서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베다니(28)를 출발하여 갈릴리로 향하시기로 결정한 여섯째 날이 되었습니다. 이 날에 길 가에서 빌립을 만나시고 앞뒤 정황은 없이 “나를 따르라”고만 하십니다. 제자들이나 세례 요한이 아닌 예수께서 직접 자신을 소개하시는(전도) 장면입니다. 이렇게 본문을 7일 창조의 배경으로 본다면 6일째 되는 날에 사람을 만드신 것처럼 모든 기초를 만드신 후에 6일째에 교회 공동체를 만드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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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31절, 36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거듭 증언하는 말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를 표현입니다. 또한 그래서 이렇게 말하므로 두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따를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하여 우리는 두 가지 그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출애굽(12:3)의 유월절 어린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모든 압제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의 날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집은 죽음이 유월하게 해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의 어린양은 피를 통해 죽음을 유월하게 하는 어린양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돌아가신 것은 어린양의 모형을 그대로 성취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이사야(53:7)에 언급된 ‘도살할 양같이 우리의 죄를 감당하는 여호와의 종’을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우리의 죄를 도말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죄,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되는 이 죄, 하나님을 왕(주)으로 모시지 아니하고, 또한 그를 모르고 살아가며,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가며, 알면서도 영화롭게 하지 않았던 죄를 회개하고 다시금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철저하게 우리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회개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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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34절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세례요한은 또한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서 예수님 위에 머물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분이 이와 같이 성령이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라 하셨기에 요한은 마침내 보고 증언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에 대한 약속은 에스겔서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겠다는 약속과(겔 36:24-28), 만민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욜 2:28)의 말씀이 있는데, 요한은 지금 예수님께 이 말씀이 성취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령님의 역할은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바로 알고 믿게 하시는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며, 또한 구주 예수님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우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되심을 알고 믿고 그의 길을 따라 순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예수님께서 베푸신 성령세례는 그래서 오늘 우리고 거룩한 주님의 전으로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거룩한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미 받은 성령의 세례를 유지하며 성령 충만으로 살아가는 길은 매일 주님과의 사귐의 시간 곧 기도와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과, 주의 계시의 말씀을 듣고 만날 수 있는 예배의 자리 등을 지속적으로 신실하게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충만한 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며,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거룩한 백성으로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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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양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하시고
신실하신 주님의 은혜로 주의 자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요한의 증언과 주께서 보여주신대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어린양 되심과 그리스도되심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우리를 새사람되게 하신 분이심을 알고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 주신 분,
우리의 모든 것 되시며 우리를 다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땅에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이기와 욕심과 탐욕의 수단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않겠습니다.
주님의 영광이며 주님과의 교제와
주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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