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22-34 빼앗긴 우물 곁에서 심는 에셀 나무 : 세상과 대등하게 마주하는 평화와 영원의 신앙

by 평화의길벗 posted Jan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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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1:22-34 빼앗긴 우물 곁에서 심는 에셀 나무 : 세상과 대등하게 마주하는 평화와 영원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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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이삭 출생 후, 아브라함의 위상은 높아졌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고 인정하며 불가침 조약을 제안합니다(22-24절). 아브라함은 맹세하기에 앞서,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해 당당히 책망하고 소유권을 확정 짓습니다(25-30절). 두 사람은 맹세하여 그곳을 '브엘세바'라 칭하고, 아브라함은 에셀 나무를 심으며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31-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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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에서 물(우물)은 생존과 직결된 자원이자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유목민에게 우물 소유권 분쟁은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맹세'(쉐바)와 '일곱'(쉐바)은 히브리어 어원이 같습니다. 일곱 암양 새끼를 주는 행위는 맹세의 확증이자 소유권 등기와 같은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 신학적 배경 : 20장에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 앞에서 두려워 떨며 아내를 누이라 속였던 비굴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21장 후반부의 아브라함은 이방 왕을 책망하고 조약을 주도하는 존귀한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임마누엘)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목격되었기 때문입니다.

#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 : 이 본문은 단순히 아브라함이 잘되었다는 성공담이 아닙니다. 이방인과 섞여 살아야 하는 성도가 부당한 대우(우물 탈취)를 받았을 때,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잘못을 지적(책망)하고, 평화의 경계를 확정 짓는 '수평적 지혜'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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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4절 세상의 인정과 평화의 제안 : 세상의 권력자가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두려워하여 먼저 손을 내미는 영적 권위의 회복.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 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영적 위엄을 입히시고 그들이 먼저 평화를 청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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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말합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않기를 맹세하라고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맹세하리라"고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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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는 이삭이 태어나고 이스마엘이 떠난 후, 아브라함의 가정이 정돈되고 하나님의 복이 가시화된 시점입니다. 창세기 20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두려워합니다. 송민원 박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관계의 역전'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결과)'를 보고 평가합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도덕성 때문이 아니라, 그의 배후에 있는 신적 능력 때문에 조약을 요청합니다. 성도는 세상과 분리된 섬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해 보이는 '증거의 돌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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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직장과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무시당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보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가 희미해졌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당신을 보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 같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의 방식(거짓, 편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원칙을 고수할 때, 처음에는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 세상은 그 거룩한 권위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비굴하게 세상의 인정을 구걸하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세상이 우리를 주목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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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30절 갈등의 직면과 우물 소유권 확정 : 부당한 현실을 묵인하지 않고 바로잡으며, 명확한 증거를 통해 평화의 토대를 놓는 용기.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의 관계에서 억울함을 덮어두는 거짓 평화가 아니라,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함으로써 얻는 참된 평화와 권리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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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맹세하기 전에,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해 아비멜렉을 '책망(야카흐)'합니다. 아비멜렉이 몰랐다고 발뺌하자,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주어 언약을 맺고, 별도로 암양 새끼 일곱을 주어 이 우물을 판 증거물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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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평화 조약을 맺자는 왕의 제안에 덥석 응하지 않고, 과거의 억울한 일(우물 탈취)을 끄집어내어 따집니다. 여기서 '책망하다(야카흐)'는 법적 논쟁을 통해 시비를 가린다는 뜻입니다.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는 이 지점을 주목합니다. 진정한 평화(샬롬)는 갈등을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정의(Justice)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아브라함은 20장의 비겁함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당당한 협상가가 되었습니다. '암양 일곱'은 당시 관습에 따른 확실한 소유권 이전의 증표(영수증)입니다. 그는 영적인 사람이면서 동시에 매우 현실적이고 치밀한 생활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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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문화는 종종 "은혜로 넘어가자"며 불의나 갈등을 덮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곪은 상처를 덮어두면 결코 치유되지 않습니다. 가정 내의 갈등, 직장에서의 부당한 대우, 금전 관계의 문제 등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명확하게 '책망'하고 '증거'를 남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관계를 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이고 건강한 관계(브엘세바의 언약)를 맺는 기초가 됩니다. 착한 척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지혜롭게 권리를 지키고 질서를 세우는 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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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34절 브엘세바의 언약과 영원하신 하나님(엘 올람) : 나그네 길에 영생의 뿌리(에셀 나무)를 내리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의 정착.

하나님은 일시적인 세상의 조약 너머에 있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며,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는 '영원하신 하나님(El Olam)'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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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맹세한 곳을 '브엘세바(맹세의 우물, 일곱의 우물)'라 부릅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아브라함은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El Olam)'의 이름을 불렀으며 블레셋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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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언약 체결 후 '에셀 나무'를 심습니다. 에셀 나무는 잎이 깃털 같고 뿌리가 깊어 사막에서도 잘 자라며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상록수입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나그네는 보통 나무를 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이제 약속의 땅에서 '뿌리를 내리겠다'는 믿음의 선포이자, 후대에게 이 증거를 남기겠다는 장기적인 비전입니다. 그가 부른 하나님의 이름은 '엘 올람(The Everlasting God)'입니다. 눈앞의 아비멜렉과의 평화 조약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은 영원함을 고백한 것입니다. 수평적 평화(이웃과의 화평)를 이룬 후에야 비로소 수직적 예배(여호와의 이름을 부름)가 온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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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당장 내일의 안위를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척박한 현실(블레셋 땅) 한복판에 '에셀 나무'를 심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신앙 교육일 수도 있고, 변하지 않는 가치에 투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정세는 급변하고 사람과의 약속은 변할지라도, '영원하신 하나님(엘 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장의 생존을 넘어 영원을 바라보십시오. 오늘 내가 심어야 할 믿음의 에셀 나무, 기도의 에셀 나무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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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엘 올람(El Olam) 하나님 아버지.

이삭을 주신 기쁨에 머물지 않고, 

세상 한복판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증명해 낸 아브라함의 당당함을 배웁니다. 

비겁했던 과거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먼저 찾아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고 인정할 만큼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관계의 어려움이나 손해 보는 상황 앞에서 

적당히 타협하거나 덮어두려 할 때가 많았습니다.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부당한 것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책망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셔서, 

우리 삶의 현장에 공의에 기초한 

참된 평화(브엘세바)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세상은 변하고 사람의 약속은 흔들려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변함없음을 믿습니다. 

나그네와 같은 인생길이지만, 

오늘 믿음의 에셀 나무를 심으며 

영원하신 주님의 이름을 높여 부르는 예배자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시며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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