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01-27 : 몸에 새긴 언약, 한 사람을 넘어 열방의 아버지가 되는 길

by 평화의길벗 posted Jan 2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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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01-27 : 몸에 새긴 언약, 한 사람을 넘어 열방의 아버지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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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을 낳은 지 13년 후,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 여호와께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으로 계시하며 아브람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열국의 어미)'로 바꾸어 주시며, 언약의 영원한 표징으로 모든 남자의 '할례'를 명령하십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의 나이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에 웃으며 이스마엘이나 잘 살기를 바랐으나,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 태어날 '이삭'과 언약을 세울 것을 확언하십니다. 그날에 아브라함은 집안의 모든 남자와 함께 할례를 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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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과 운명을 상징합니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주권자가 바뀌었음과 새로운 사명이 부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할례는 당시 다른 민족(이집트 등)에게도 있었으나, 하나님은 이 의식을 성인식이나 위생 목적이 아닌, '언약의 배타적 표징'으로 재해석하여 부여하셨습니다.

# 신학적 배경 : 13년의 침묵(16:16과 17:1 사이)은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이라는 '인간적 대안'에 머물러 있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 침묵을 깨고 인간의 불가능성(99세, 죽은 몸) 위에 하나님의 전능성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언약을 갱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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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절 엘 샤다이의 현현과 정체성의 확장 (17:1-8): 한 개인의 성공을 넘어 열방의 아버지로 부르시는 관계적 정체성의 변화.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를 현재의 한계 속에 가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전능하심(엘 샤다이) 안에서 '열방'을 품는 존재로 확장시키시는 비전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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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세의 아브람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하십니다. 이어 그의 이름을 '존귀한 아버지(아브람)'에서 '열국의 아버지(아브라함)'로 바꾸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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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관점으로 볼 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명령은 도덕적 무결점보다는 '관계적 온전함(integrity)'을 요구합니다. 16장에서 하갈을 취했던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한 신뢰 관계가 깨진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 관계를 회복하자고 초청하십니다. 이름의 변화는 '수직적 상승'(나의 명예)에서 '수평적 확장'(이웃과 열방을 위한 존재)으로의 전환입니다. 아브람은 한 부족 족장의 명예에 갇혀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수많은 민족과 왕들이 나오는 생명의 근원으로 재규정하십니다. 이것은 나 혼자 잘 사는 복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복의 통로로서의 정체성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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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나의 스펙', '나의 성공'이라는 좁은 아브람의 이름에 갇혀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가정과 직장, 사회 속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적 아비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승진이 나만의 영광이 아니라, 그 위치를 통해 동료와 부하 직원들을 살리는 '수평적 영향력'의 기회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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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4절 살에 새긴 언약, 할례 : 육체의 신뢰를 끊어내고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확인하는 몸의 표식.

하나님은 언약이 마음의 다짐으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의 가장 은밀한 육체에 새겨져 삶의 모든 순간에 기억되기를 원하시는 거룩한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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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언약의 표징으로 집안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을 것을 명하십니다. 난 지 8일 만에, 돈으로 산 이방인까지 모두 포함되며, 이를 어길 시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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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는 남성 생식기의 표피를 잘라내는 행위로, 생명 전달의 능력이 인간의 육체적 힘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몸에 새기는 의식입니다. 수평적 관점에서 주목할 점은 '포괄성'입니다. 아브라함의 혈통뿐만 아니라 '집에서 난 자나 돈으로 산 이방 사람'(12-13절)까지 모두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는 언약 공동체가 혈연을 넘어선 '믿음의 공동체'임을 보여줍니다. 언약은 폐쇄적인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 내의 가장 낮은 자(종)까지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시키는 평등한 은혜의 장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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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에게 육체의 할례는 없으나 '마음의 할례'(세례)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육신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우리 공동체(교회, 가정)는 외적인 조건(학력, 재산)으로 사람을 구별합니까,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를 형제로 받아들이는 할례의 정신을 실천합니까? 교회 안에서 소외된 이방인이나 약자들까지도 한 몸으로 품어내는 것이 진정한 언약 백성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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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절 사라의 축복과 동등한 언약 파트너 : 주변부로 밀려났던 여인을 언약의 중심(열국의 어미)으로 세우시는 회복.

하나님은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도 여성을 언약 성취의 필수적이고 동등한 파트너로 세우시며 복 주시는 세심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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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시고, 그에게 복을 주어 아들을 낳게 하며, 그가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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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6장에서 사래는 불임이라는 수치와 하갈과의 갈등으로 인해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조차 이스마엘을 대안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를 언약의 '필수 불가결한 파트너'로 다시 세우십니다. 수평적 시각에서 이는 남성 중심 서사 속에 감추어진 여성의 주체성을 하나님이 직접 복원시키시는 장면입니다. 약속의 자손은 아브라함의 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의 태를 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부부 관계를 수직적 종속이 아닌, 언약을 함께 이루어가는 수평적 동역 관계로 회복시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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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돌아봅니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열국의 부모'로 부르셨습니다. 부부는 서로를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언약의 파트너로 존중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공동체 안에 실패감이나 열등감으로 인해 뒤로 물러나 있는 지체들을 향해 "당신은 열국의 어머니/아버지입니다"라고 축복하며 그들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는 사역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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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2 아브라함의 웃음과 이스마엘을 위한 간구 : 인간의 합리적 의심과 현실 안주를 넘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

하나님은 우리의 냉소적인 웃음과 현실적인 타협(이스마엘)조차 들으시지만, 결국 당신의 약속(이삭)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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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엎드려 웃으며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구십 세인 사라가 어찌 출산하리요"라고 속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청합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시며 이삭을 약속하시지만,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어 번성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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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웃음은 비웃음이라기보다 현실의 벽 앞에서 터져 나온 '허탈한 합리성'입니다. 그는 13년간 이스마엘을 키우며 현실에 안주했습니다. "이스마엘이나 잘 살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꿈을 포기한 자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수평적 읽기는 여기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현실 감각(웃음)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 웃음을 기쁨(이삭의 이름 뜻)으로 바꾸시는 과정에 주목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품은 이스마엘에 대한 인간적인 정(情)도 무시하지 않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언약의 계보는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삭)로만 가능함을 명확히 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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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기도하면서 속으로 웃을 때가 있습니다. "이 나이에 뭘...", "내 형편에 무슨..." 하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스마엘' 수준(현실적 안주)으로 낮추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No)"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이성적 판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작은 성취(이스마엘)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실 불가능한 기적(이삭)을 기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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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7절 즉각적인 순종과 언약 공동체의 출범 :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앞에서도 지체 없이 공동체와 함께 순종하는 리더십.

하나님은 가장의 결단과 순종을 통해 가정과 공동체 전체가 거룩한 언약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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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말씀을 마치고 올라가시자, 아브라함은 '당일에' 이스마엘과 집안의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포피를 베어 할례를 행합니다. 아브라함은 99세, 이스마엘은 13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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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의 핵심은 '당일에(that very day)' 이루어진 순종입니다. 99세의 노인이, 그리고 13세의 아들이, 수많은 종들이 고통스러운 수술을 감행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더 이상 웃거나 의심하지 않고 즉각 행동으로 옮깁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가장의 결단으로 온 가족과 공동체가 동시에 언약의 표징을 받음으로써, 그들은 이제 혈연 공동체를 넘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공동체'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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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가장 좋은 순종의 타이밍은 '바로 오늘'입니다. 머뭇거림은 불순종의 씨앗이 됩니다. 또한 가장과 리더의 영적 결단은 공동체 전체를 거룩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영적 리더로서, 내가 먼저 결단하고 끊어내야 할 세상의 습관(마음의 표피)은 무엇입니까? 오늘이 바로 우리 가정과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새롭게 언약을 갱신하는 '그날'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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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전능하신 엘 샤다이 하나님 아버지.

13년의 침묵을 깨고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굳어진 그의 현실 안주를 깨뜨리시고 

열방의 아버지라는 새로운 꿈을 심어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현실의 한계와 나이, 

상황을 핑계로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으며 

"이스마엘이나 잘되게 해주십시오"라고 안주하려 했음을 고백합니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내 이성과 경험의 테두리 안에 

하나님을 가두려 했던 저희의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제 우리 마음에 할례를 행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힘을 의지하던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언약 백성임을 

우리 몸과 삶에 새기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혈연과 이해관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언약으로 하나 된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신 엄중한 명령을 기억하며, 

세상 속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며, 우리의 냉소적인 웃음을 참된 기쁨으로 바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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