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0:01-32 흩어짐은 형벌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
하나님이 꿈꾸시는 세상은 힘으로 쌓아 올린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 아니라, 서로 다른 빛깔과 언어로 땅을 가득 채우는 다채로운 생명의 숲입니다.
*
성경을 읽다가 창세기 10장에 이르면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게 됩니다. 낯설고 발음하기조차 힘든 이름들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족보의 숲이기 때문입니다. 야벳의 아들, 함의 아들, 셈의 아들들이 낳은 수많은 이름들. 우리는 대개 이 목록을 건성으로 읽어 넘기지만, 성서학자 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이 족보야말로 하나님의 숨겨진 섭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도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인류가 언어가 갈라지고 뿔뿔이 흩어진 것을 바벨탑 사건의 결과, 즉 ‘죄에 대한 형벌’로만 이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10장은 그 사건 이전에 이미 인류가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나뉘어 땅에 퍼져 나갔음을 담담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흩어짐과 다양성은 저주가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성취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획일화된 하나의 집단이 되어 누군가의 통제 아래 놓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들꽃처럼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온 땅을 수놓으며,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확장의 역사 속에 불길한 징조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 함의 자손 ‘니므롯’입니다. 성경은 그를 “세상의 첫 용사”요 “특이한 사냥꾼”이라 소개합니다. 그는 시날 땅에 ‘바벨’이라는 나라를 세웁니다. ‘용사’와 ‘사냥꾼’이라는 단어는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실상 그것은 힘으로 타인을 제압하고 약육강식의 질서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니므롯은 흩어져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거대한 제국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중심’을 만들고, 힘을 집중시켜, 자신만의 ‘이름’을 내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추구하는 ‘수직적 욕망’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알게 모르게 니므롯의 꿈을 꿉니다.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가지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어 합니다. 흩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작아지는 것을 패배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므롯의 제국이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가문이 묵묵히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그 ‘수평적 흩어짐’ 속에 계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때로 초라해 보이고, 내 삶이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진 변방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자리, 가정과 일터와 소소한 일상은 밀려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파송하신 거룩한 선교지입니다. 획일화된 성공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고유한 빛깔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가장 아름답게 완수하는 길입니다. 흩어지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꽃을 피우십시오. 하나님은 그 다양함 속에서 홀로 영광 받으십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0:01-32 이름 없는 별들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은하수, 그 다양성의 축복
.
창세기 10장의 족보는 지루한 이름의 나열이 아니라, 인류를 획일적인 제국의 부속품이 아닌 다채로운 생명의 숲으로 ‘흩어지게’ 하여 땅을 가득 채우시려는 하나님의 장엄한 축복의 파노라마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계절의 순환 속에서 저마다의 보폭으로 오늘을 걷고 계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펼쳐 든 창세기 10장은 언뜻 보기에 낯선 이름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건조한 사막처럼 보입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로 이어지는 이 지루한 족보 앞에서, 우리는 종종 “이 오래된 이름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회의에 잠기곤 합니다. 하지만 이 메마른 이름들의 행간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인간의 역사 속에 스며든 하나님의 ‘곡진기정(曲盡其情, 사정을 자세히 헤아림)’하신 마음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흔히 우리는 인류가 흩어진 것을 바벨탑 사건 이후에 주어진 형벌로만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송민원 교수는 창세기 10장을 전혀 새로운 시선, 즉 ‘수평적 읽기’로 안내합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여러 나라와 언어로 나뉘어 흩어지는 이 장면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는 하나님의 명령이 성취되는 ‘축복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획일적인 하나의 색깔로 통일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제국은 사람들을 하나의 틀에 가두려 하지만, 하나님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존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채롭게 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이 족보에 기록된 이름 하나하나는 그저 흘러간 과거의 파편이 아닙니다. 한동일 선생은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정해진 시간을 다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의 유일한 한 획을 긋는 셈”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기록된 수많은 이름들은 저마다의 치열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라는 거대한 캔버스에 고유한 붓질을 남긴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수많은 민족과 개인들에게 당신의 영원한 시간을 건네주셨고, 그들의 삶을 통해 역사를 이어오셨습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이 낯선 이름들을 대할 때 우리는 이 건조한 족보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그 속에서 나 한 사람의 인생도 결코 우연히 던져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드라마 속에 배역을 맡은 존엄한 존재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내 삶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이고, 세상의 거대한 흐름 속에 묻혀버린 것 같은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강한 자들의 영웅담만이 아니라,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인생들을 당신의 기억 속에 촘촘히 새겨 놓으셨습니다. 창세기 10장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다양성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그리고 각 사람을 얼마나 고유한 존재로 대우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은총의 지도’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릅니다. 생각도 다르고, 기질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요로움입니다. 이제 무거운 종교적 의무감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기보다,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시는 하나님의 너른 품에 안기십시오. 그리고 나와 다른 이웃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신비한 존재로 바라보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삭막한 세상 속에서도 서로의 다름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화음(Harmony)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팀파니 등 서로 다른 악기들이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지만, 지휘자이신 하나님의 손길 아래서 그 소리들이 어우러질 때, 단 하나의 악기로는 결코 낼 수 없는 장엄하고 풍성한 생명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법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