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7:01-24 역창조의 심연 위로 떠오른 자비의 방주, 생명의 보존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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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은 노아의 의로움을 인정하시고 그와 가족, 그리고 모든 생물을 방주로 불러들이십니다. 40일간의 기록적인 폭우와 샘들의 터짐으로 온 땅이 물에 잠기며 모든 육체가 숨을 거두는 심판이 집행되지만,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손수 닫으심으로 노아와 그와 함께한 생명들을 보존하십니다. 세상은 물의 혼돈으로 돌아갔으나, 방주라는 거룩한 성소 안에서 생명의 불씨는 사그러들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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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의 홍수 신화(길가메쉬 서사시 등)가 신들의 변덕과 소음 때문에 인류를 멸하려 했던 것과 달리, 창세기는 인류의 '도덕적 부패'와 '포악함'에 대한 인격적 공의를 심판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 신학적·정경적 배경 : 창세기 7장은 1장의 질서가 무너져 다시 1장 2절의 '물로 뒤덮인 혼돈'으로 회귀하는 '역창조'의 절정입니다. 이는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에서 세례를 통한 구원의 예표로 해석되며, 최후 심판 날에 임할 하나님의 공의를 예고합니다.
# 참고글 : 창세기의 홍수 서사는 단순한 파멸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무너진 창조 질서를 되돌리시는 하나님의 ‘역창조’(De-creation)와 남은 자를 통해 생명을 이어가시는 ‘재창조’(Re-creation)의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송민원 박사의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강조하는 ‘수평적 읽기’의 관점을 따라, 우리는 이 본문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과 맺으시는 깊은 연대와 그들의 고통을 대하는 하나님의 정념(Pathos)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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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방주로의 초대 : 의의 인정과 순종의 준비
하나님은 심판의 경고를 통해 생명을 구원할 구체적인 길을 예비하시고 초청하시는 자비로운 인도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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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노아에게 가족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하시며, 그가 당대에 의로웠음을 언급하십니다.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여 태우게 하시고, 7일 뒤에 40일 밤낮으로 비를 내려 모든 생물을 쓸어버릴 것을 예고하십니다. 노아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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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박사는 노아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을때 ‘의’를 단순한 도덕적 무결점이 아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정의합니다. 특히 정결한 짐승을 7쌍씩 태우게 하신 것은 심판 이후에 있을 ‘예배’를 위한 준비이자, 생명이 단지 생존을 넘어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합니다. 여기서 노아의 ‘준행’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응답입니다. 이는 히브리서 11장 7절의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한 믿음”과 연결됩니다.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 관점에서 보면, 노아는 단지 자기 가족만 구하는 이기적 생존자가 아니라, 모든 ‘종류’(min)를 보존하여 창조 세계 전체의 책임을 짊어진 청지기적 사명자로 격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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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일을 이루었는가’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에게 ‘어디에 있는가(관계의 자리)’를 물으십니다. 직장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는 것보다, 정직과 신의라는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녀 교육에서도 세상의 성공이라는 높은 산을 오르게 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방주 안에서 인격의 기초를 닦는 ‘의로운 세대’로 키워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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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6절 생명의 탑승과 주권적 봉인: 닫힌 문 너머의 안전
하나님은 구원의 기회를 충분히 주시되, 때가 되면 친히 문을 닫아 자기 백성을 책임지시는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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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600세 되던 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생물이 종류대로 방주에 탑승합니다. 모든 생명이 들어간 뒤, 성경은 짧지만 강력한 한 문장을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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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문을 닫으셨다”는 표현은 이 구원 드라마의 주권이 인간에게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송민원 박사는 방주를 ‘떠다니는 성소’로 봅니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신 행위는 심판으로부터 노아를 분리하는 동시에, 혼돈의 바다 위에서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하나님의 ‘봉인’이자 ‘책임’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배의 문을 닫는 것은 선장의 몫이었으나, 창세기는 하나님이 직접 그 문을 닫으셨다고 기록함으로써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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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한 재난과 사회적 불안이 만연한 오늘날, 한국인들은 각자도생의 ‘문’을 닫기에 급급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가 스스로 안전의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닫아주셔야 진정한 안식이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직장에서의 위기나 가정의 불화라는 거센 파도가 밀려올 때, 내가 문을 고치려 애쓰기보다 주권자 하나님의 손길 아래 머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소외된 이들이 하나님의 닫아주시는 은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열린 방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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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4절 물의 지배와 남은 자 : 역창조 속의 재창조
하나님은 죄에 대해 엄중히 심판하시나,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시어 생명의 씨앗(남은 자)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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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 40일 동안 계속되어 물이 산들을 덮고, 땅 위의 모든 생물—새, 가축, 들짐승, 기는 것, 사람—이 다 죽습니다. 오직 노아와 방주에 함께 있던 자들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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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온 산을 덮은 것은 창세기 1장 2절의 ‘깊음의 물’ 상태로 지구가 되돌아갔음을 뜻하는 ‘역창조’입니다. 송민원 박사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쓸어버리실 때 느끼신 ‘한탄’과 ‘비통함’(Pathos)을 강조합니다. 심판은 차가운 법정 선고가 아니라, 사랑하는 창조 세계가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아픈 사랑의 발로입니다. 여기서 ‘남은 자’ 사상이 태동합니다. 심판은 멸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거룩한 씨앗을 보존하기 위한 정화의 과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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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기후 위기는 창세기의 ‘역창조’를 연상시킵니다. 우리가 대지를 지배의 대상으로만 보았을 때, 땅은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탐욕적 흐름에 저항하는 ‘거룩한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소비 중심의 삶을 절제하고, 창조 세계의 생태적 가치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오늘날 노아가 지었던 ‘방주’의 실천적 모습입니다. 교회는 소멸해가는 가치들 속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끝까지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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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태초에 말씀을 통해 혼돈 속에서 질서를 빚으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포악함과 자기중심적인 욕망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혼돈으로 몰아넣었음을 자복합니다.
노아의 시대처럼 죄의 홍수가 범람하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세상의 물결을 따라 살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며 의의 길을 걷는 남은 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 삶의 폭풍우 속에서도 친히 방주의 문을 닫으시고
우리를 품어주시는 주님의 주권적인 손길을 신뢰합니다.
멸망이 아닌 구원을 위해,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그 큰 사랑에 의지하여 오늘 하루도 빛의 자녀답게 성실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방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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