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50:1-6 마지막 숨결까지, 삶은 축제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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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 그 자체가 이미 기적이며, 우리의 가쁜 호흡마저 하나님의 거대한 숨결에 잇대어질 때 비로소 삶은 온전한 찬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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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넘어 마침내 우리는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고, 탄식의 밤을 건너 당도한 시편 150편은 장엄한 피날레와 같습니다. 마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마지막 악장처럼, 온 우주가 웅장한 화음을 이루며 터져 나오는 환희의 송가입니다. 그런데 이 찬양의 자리는 고요하고 평온한 정원이 아닙니다. 나팔 소리, 비파와 수금, 소고와 춤, 현악과 퉁소, 그리고 제금을 치는 소리까지(3-5절), 온갖 악기들이 빚어내는 소리는 차라리 소란스러움에 가깝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은 정제된 아름다움만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팔처럼 드높은 기세도, 수금처럼 떨리는 연약함도, 제금처럼 날카로운 파열음도 모두 하나님의 오케스트라 안에서는 훌륭한 악기가 됩니다. 제철소에서 들려오는 육중한 기계음도, 항구의 거친 뱃고동 소리도, 그리고 오늘 하루를 살아내느라 지친 여러분의 거친 숨소리마저도 하나님께는 거룩한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내 형편이 좀 더 피면 찬양하겠다"고 유보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6절)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호흡'은 히브리어로 '네샤마', 즉 하나님이 흙으로 빚은 인간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입니다. 숨을 쉰다는 것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을 들이마시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찬양은 의무가 아니라, 내 생명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기억해내는 가장 정직한 반응입니다.
신앙에 회의를 느끼거나, 삶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때로는 그 '신음'조차 기도가 되고 찬양이 됩니다. 곡조 있는 노래만이 찬양이 아닙니다. 아침에 눈을 뜨며 마주하는 햇살에 감사하고,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에 눈길을 주며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는 것, 타인의 아픔에 공명하며 함께 울어주는 그 마음의 떨림이 곧 '현악'과 '퉁소'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지고 상한 우리 존재를 있는 그대로 품으사, 당신의 거룩한 숨결로 채우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너무 애쓰며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십시오. 살아있음, 견뎌냄, 그리고 다시 사랑함. 이 모든 일상이 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춤이자 축제입니다. 마지막 구절인 "할렐루야"는 명령이 아니라, 비루한 우리 삶을 영원과 잇대어 주시는 주님을 향한 벅찬 감탄사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호흡이 닿는 모든 곳이 성소가 되기를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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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50:1-6 생의 마지막 숨이 빚어내는 장엄한 찬가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바칠 수 있는 가장 귀한 제물은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호흡하는 모든 순간이 주님의 선물이었음을 고백하며 존재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리는 ‘아슬아슬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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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신산(辛酸 삶이나 처지가 몹시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고생스럽다는 뜻)스러운 한 해였습니다. 2025년이라는 시간의 씨실과 날실이 엮어낸 우리 삶의 무늬를 돌아보니, 아름다운 문양보다는 엉킨 실타래와 얼룩진 자국이 더 많이 보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성공’이라는 사다리를 오르느라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정작 우리 영혼은 부박(浮薄)한 소음 속에 유폐되어 ‘이게 아닌데’ 하는 탄식 속에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매듭을 묶는 오늘, 시편 150편은 우리를 절망의 자리가 아닌 장엄한 찬양의 축제로 초대합니다.
시인은 나팔과 비파, 수금과 소고, 현악과 퉁소, 그리고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주님을 찬양하라고 외칩니다(3-5절).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연주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 다른 음색을 지닌 악기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화음을 이루듯, 우리 삶의 다양한 굴곡과 상처조차 하나님의 거대한 선율 속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존재의 조율’에 대한 요청입니다. 철학자 마틴 부버는 인간이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타락이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찬양은 하나님을 객체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임재 안에서 내 삶의 부서진 조각들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올 한 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무력감에 짓눌려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유능함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주님은 깨진 가슴 조각들을 모아 성소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부력(浮力)에 우리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 신비에 눈을 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단순히 글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사자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 말씀을 온몸으로 씹어 소화하는 치열한 과정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마음이라는 기준음에 우리 영혼을 조율할 때, 비로소 우리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마지막 명령에 온 존재로 화답하게 됩니다(6절). 호흡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내가 ‘없지 않고 있다’는 이 경이로운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바쳐야 할 가장 본질적인 찬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갑니다. 이제는 성취의 강박을 내려놓고, 우리 앞서 길을 여시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갑시다. 우리의 작음과 고독이 우주의 거대한 찬양에 합류할 때, 무너진 폐허 위로 생명의 파랑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의 새해를 포근하게 감싸 안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