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서 3:01-12 무너진 정의의 파수꾼들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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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3장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의 총체적인 타락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정의를 행해야 할 본분을 잊고 백성을 잔인하게 착취하며, 선지자들은 돈에 따라 축복과 저주를 남발하는 위선을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에 침묵하시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폐허로 만드실 것을 선포하시지만, 그 가운데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한 미가만이 참된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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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배경 : 주전 8세기 후반, 유다 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당시 신앗수르 제국의 팽창으로 북이스라엘이 멸망(주전 722년)하는 과정을 목격하며 남유다 역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 문화적 배경 : 상업 경제의 발달로 빈부 격차가 심화되었고, 권력자들은 율법이 보장한 가난한 자들의 토지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종교는 형식적인 제사만 남은 채 지도층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 신학적 배경 : 하나님은 언약의 수호자로서 제사보다 '정의'와 '인자'를 원하십니다. 불의한 자에게는 침묵하시나, 성령 충만한 종을 통해 죄를 지적하고 정결을 요구하십니다.
# 정경적 배경 : 미가의 예언 중 성전 파괴 선언(3:12)은 100년 후 예레미야 시대에 인용되어 그의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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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지도자들의 가혹한 압제와 하나님의 거절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그대로 보응하시며,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기 위해 불의한 권력을 외면하시는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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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는 야곱의 우두머리들에게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며, 백성을 마치 도살장의 짐승처럼 대하며 착취합니다. 결국 재앙이 닥칠 때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고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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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삶에서 공의를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꺾는다는 잔혹한 은유는 지도자들이 백성의 생존권을 얼마나 철저히 유린했는지를 고발하는 선지자의 격정적인 파토스(Pathos)입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신다"는 것은 언약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며, 이는 약자의 울부짖음을 외면한 자들에게 내리는 가장 무서운 형벌입니다. 이는 야고보서 2:13의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아모스 5:15 또한 선을 사랑하고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 것을 명령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권리에 무감각할 때 하나님도 우리의 기도에 무감각해지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애와 정의를 행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할 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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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정 안에서 부모나 연장자라는 권위로 자녀나 배우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가진 작은 힘이라도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될 때 하나님의 미소가 우리를 향할 것입니다.
교회 내의 직분은 명예가 아니라 섬김의 직무입니다. 세상의 힘의 논리가 교회 안에 들어와 약한 지체를 소외시키지 않도록, 우리 공동체가 정의를 아는 것을 넘어 정의를 사랑하는 자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도 공평과 정의, 사랑과 거룩 위에 세워져야 무너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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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절 거짓 선지자들의 탐욕과 참 선지자의 사명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팔아 배를 채우는 거짓된 목소리를 침묵시키시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한 진실한 증인을 통해 당신의 뜻을 밝히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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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지자들은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평강"을 외치고, 주지 않으면 "전쟁"을 준비한다고 협박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이상과 점괘를 끊어 어둠 속에 가두실 것입니다. 반면 미가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담대히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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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물면"이라는 표현은 거짓 선지자들을 탐욕스러운 개에 비유한 신랄한 풍자입니다. "밤"과 "흑암"은 계시의 단절을 뜻하며,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긴 종교 지도자의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미가의 "성령 충만"은 자신의 유익이 아닌 공동체의 죄를 지적하고 공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능력입니다. 디모데후서 4:3은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는 시대를 경고하는데, 이는 미가 당시의 영적 암흑기와 닿아 있습니다. 참된 영성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달콤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게 하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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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줄 때보다, 나의 허물을 사랑으로 지적해 줄 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갈구해야 할 것은 물질적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인한 분별력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성도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포도주와 독주" (2:11)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교회는 세상이 듣고 싶어 하는 평강이 아니라, 세상이 반드시 들어야 할 하나님의 정의를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주님은 그 일도, 그 사람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미혹하는 자들만 탁하지 말고, 미혹당하지 않도록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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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2절 예루살렘의 총체적 부패와 성전의 황폐화
하나님은 인간이 쌓아 올린 가식적인 성전을 허무시더라도, 진실함이 없는 신앙의 맹신을 깨뜨려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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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들은 피와 죄악으로 시온을 건축하면서도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며 스스로를 속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식적인 종교의 중심지인 시온을 갈아엎은 밭이 되게 하고 예루살렘을 돌무더기로 만드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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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건축한다"는 것은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한 성공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한다"는 표현은 여기서 진심 어린 신뢰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한 방패로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는 반어적 표현입니다. 성전이 있는 산이 "수풀의 높은 곳"이 된다는 예언은 종교적 특권이 결코 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외식하는 서기관들을 보시며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 24:2). 이 메시지는 훗날 히스기야 왕을 회개하게 하여 유다의 멸망을 백 년이나 늦추는 위대한 신앙의 힘이 되었습니다(렘 26: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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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들여 세우고 있는 '가문'이나 '성공'의 기초가 혹시 누군가의 눈물이나 정직하지 못한 방법 위에 서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겠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성은 결국 무너지기에, 우리는 매일 기도로 공의로운 터를 닦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사회가 기틀로 삼는 것은 오직 공ㅍ여과 정의, 사랑과 거룩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 안전하다"는 믿음이 혹시 우리의 영적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건물의 크기나 전통을 자랑하기보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살아 숨 쉬고 있는지를 더 고민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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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정의와 공의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
오늘 미가 선지자의 아픈 외침을 통해
우리의 무뎌진 마음을 비추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도자들의 타락과 백성의 고통이 가득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의 거울이 됨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가 선을 사랑하기보다 욕심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 죄를 가리는 방패로 삼았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우리 마음이 악한 일에 치우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높은 곳을 밟으시는 주님 앞에 겸손히 낮아지게 하시고,
세상의 헛된 평강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참된 정의의 길을 걷게 하소서.
무너져 가는 예루살렘을 보며 눈물 흘린 선지자의 마음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시어,
아파하는 이웃과 함께 울며 공의를 행하는 남은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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