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서 1:01-16 거룩한 산을 밟으시는 하나님의 발걸음과 무너지는 세상의 요새

by 평화의길벗 posted Dec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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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1:01-16 거룩한 산을 밟으시는 하나님의 발걸음과 무너지는 세상의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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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1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 성전에서 나오셔서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시는 장엄한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가 우상 숭배로 인해 먼저 무너지고, 그 심판의 상처는 치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남유다의 심장부인 예루살렘 성문까지 미치게 됩니다. 선지자 미가는 이 비극을 바라보며 벌거벗은 몸으로 통곡하고, 유다의 성읍들이 차례로 무너지는 현실을 안타까운 언어유희를 통해 애곡하며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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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배경 : 주전 8세기 후반,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당시 신앗수르 제국의 팽창으로 북이스라엘이 멸망(주전 722년)하고 남유다 역시 산헤립의 침공(주전 701년)으로 국가적 위기를 겪던 시기입니다.

# 문화적 배경 : 가나안의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만연했으며, 지도층의 탐욕과 사회적 불의로 인해 가난한 자들이 억압받던 도덕적 암흑기였습니다.

# 신학적 배경 : 하나님은 언약의 수호자로서 공의를 실현하시는 재판장이시며, 동시에 자기 백성의 고통을 아파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 정경적 배경 : 미가는 이사야와 동시대 인물로, 그의 예언은 예레미야 26장 18절에서 인용될 만큼 권위 있는 말씀으로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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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언약 법정의 개회와 하나님의 강림

하나님은 우리가 쌓아 올린 교만의 높은 곳을 밟으시며, 역사의 주관자로서 불의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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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이 미가에게 임하여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가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처소에서 나오셔서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시며, 그 위엄 앞에 산들이 녹고 골짜기가 갈라집니다. 이 장엄한 심판의 원인은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우상 숭배 때문이라고 밝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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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 나오신다"는 묘사는 하나님이 관망자가 아니라 인간 역사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시편 18편이나 50편에서 보이는 신현현의 언어는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을 시각화합니다.

'높은 곳'은 지리적 산맥인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자만과 우상 숭배의 장소를 상징합니다. '야곱의 허물'은 언약 관계를 의도적으로 파기한 반역을 뜻합니다.

히브리서 12:26-29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위해 만물을 진동시키시는 하나님을 묘사하며, 미가가 본 심판이 최종적인 정화의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높게 여기는 자존심과 우상을 무너뜨리시며, 그분 앞에 겸손히 서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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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과 가정 안에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높은 곳'(학벌, 재산, 자녀의 성공)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만이 진정한 안식임을 깨닫고 그분 앞에 마음을 낮추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현대 교회가 물량주의나 권력의 산당을 짓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를 대변하는 파수꾼으로서,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성령에 충만하여 죄악을 지적하는 용기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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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절 사마리아의 파멸과 번져가는 죄의 상처

하나님은 죄의 불치병을 치료하시기 위해 때로는 뼈아픈 파괴를 허락하시며, 우리와 함께 고통을 나누시는 긍휼의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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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상 숭배의 본거지인 사마리아를 돌무더기로 만드시고 그 우상들을 파쇄하십니다. 사마리아가 입은 상처는 고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 영향이 유다를 거쳐 예루살렘 성문까지 도달했습니다. 선지자 미가는 이 비극을 보며 벌거벗은 몸으로 들개와 타조처럼 애곡하며 슬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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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 수 없는 상처"는 심판이 확정된 불치병을 의미하며, 이는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기생의 값'은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이 결국 헛되게 사라질 것을 풍자합니다.

미가는 객관적인 선포를 넘어 민족의 아픔을 자기 몸의 고통으로 느끼는 제사장적 연민을 보여 줍니다.

마태복음 23:37에서 예루살렘을 보며 우신 예수님의 눈물은 미가의 애통과 맞닿아 있으며,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비통한 사랑을 상징합니다.

죄는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키며, 하나님은 심판이라는 수술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백성을 살리고자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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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영적 나태함이나 도덕적 불감증이 '불치병'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술받기를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죄가 공동체 전체로 번지지 않도록 날마다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소중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아픔을 보며 '들개와 타조'처럼 함께 울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패한 사회 구조와 불신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교회는 방관자가 아닌,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애통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중보자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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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6절 성읍들의 파멸 앞에 선 선지자의 통곡

하나님은 우리가 신뢰하던 세상의 이름과 요새를 무너뜨려, 오직 여호와만이 우리의 참된 피난처이심을 알게 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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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는 가드, 베들레아브라, 사빌 등 유다의 여러 성읍이 대적의 침략으로 파멸될 것을 예고합니다. 라기스는 죄의 근본이 되었고, 마레사는 다른 소유주에게 넘겨집니다. 백성들은 기뻐하는 자식들이 포로로 잡혀감으로 인해 독수리처럼 머리를 밀며 슬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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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들을 활용한 언어유희는 인간이 추구하는 안정과 명예가 얼마나 허망한지 고발합니다. 예를 들어, '사빌'(아름다움) 주민이 수치스럽게 벗은 몸이 되는 대조는 인간 영광의 덧없음을 보여 줍니다.

'라기스'(준마의 성읍)가 죄의 시작이 된 것은 하나님 대신 군사력과 병거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아둘람'은 다윗의 피난처였으나 이제는 지도자들의 수치스러운 도피처가 됩니다.

누가복음 21:20-24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주님의 말씀은 미가의 예언이 역사를 통해 반복되는 하나님의 경고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세상의 어떤 견고한 요새나 세력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으며, 인간의 영광은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비참함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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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녀를 위해 쌓아 둔 '라기스'(재산, 배경)가 혹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자녀들을 우상으로 삼지 말고,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하며 주님의 지팡이 아래 맡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사빌'이나 기만적인 '악십'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상 풍조 속에서, 교회는 정직함과 신실함이라는 본연의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세상의 안정된 울타리가 무너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망대이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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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거룩한 처소에서 강림하시어 우리의 삶을 굽어살피시는 여호와 하나님, 

오늘 미가 선지자의 아픈 통곡을 통해 

우리의 무뎌진 영혼을 일깨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높은 곳을 밟으며 스스로 왕 노릇 하려 했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기생의 값처럼 탐욕스럽게 모아 왔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세운 견고한 성읍들이 무너지고, 

믿었던 이웃과 친구마저 멀어지는 고난의 시간을 지날 때,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진노가 아니라 

우리를 다시 거룩하게 빚으시려는 사랑의 손길임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의 상처가 예루살렘 성문까지 미치기 전에, 

스스로 머리털을 밀고 낮은 마음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겸손을 주옵소서.

기뻐하는 자녀들을 세상의 포로로 내어주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인도하시는 푸른 초장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를 흑암에서 건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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