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0:1-13 악인의 올무와 공의의 승리 : 악한 강포와 은밀한 올무로부터의 구원을 호소하며 공의를 확신하는 기도
*
다윗은 악인들과 강포한 자들이 마음속으로 해로운 계획을 꾸미고, 독사의 독과 같이 파괴적인 말로 자신을 괴롭히며, 발걸음을 넘어뜨리려 교활하게 함정(올무, 그물, 줄)을 놓는 상황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구원을 간구합니다. 시인은 과거 하나님께서 전쟁의 날에 자신을 보호하셨던 경험을 상기하며 현재의 구원을 확신하고, 악인들의 사악한 소원과 계획이 좌절되고 그들이 심판받기를 적극적으로 간청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께서 고난당하는 자와 궁핍한 자를 반드시 신원하시고 공의를 베푸시어, 정직한 자가 주의 면전에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임을 확신하며 마무리합니다.
*
역사적/정경적 배경 : 시편 140편은 다윗의 시로 표제된 개인 비탄시 (혹은 탄식시) 중 하나로, 다윗이 사울 왕과 그 추종자들의 박해를 피해 약 10년간 유랑 생활을 하던 절박한 시기(B.C. 1020-1010년경)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편은 시편 제5권(107-150편)에 속하며, 앞선 시편 139편(하나님의 전지와 편재)이 하나님 속성에 대한 심오한 묵상으로 채워진 반면, 본시는 곧바로 현실의 악에 대한 구체적인 고발과 탄원으로 전환됩니다. 이 시편에서 악인에 대한 탄원은 시편 141-143편으로 이어지는 다윗 비탄시 모음의 첫머리로서 그 무게를 더합니다.
문화적 배경 : 시인이 악인들의 말을 "독사의 독"에 비유한 것은 치명적인 악담과 중상모략이 고대 사회에서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악인들이 파놓은 "올무, 줄, 그물, 함정"은 시인을 제거하려는 교묘하고 은밀한 모략을 상징하는데, 이는 다윗이 사울과 그 무리에게 당했던 실제적인 위협들을 반영합니다.
신학적 배경 : 이 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확실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시인은 악인들이 자신의 죄악을 통해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하나님께서 고난 당하는 의인의 변호자이자 재판장이 되시어 그들의 억울함을 갚아주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이 저주 기도는 개인적인 복수가 아닌 하나님의 정의 실현을 위한 탄원입니다.
*
# 1-5절 악인들의 폭력과 교활한 음모로부터의 구원을 호소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노리는 악한 계획과 폭력을 간과하지 않으시는 보호자이시다.
.
시인은 악한 사람(악인)과 폭력적인 사람(강포한 자)에게서 자신을 건져내고 보호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합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해를 꾀하며 매일 싸우기 위해 모이고, 뱀처럼 혀를 날카롭게 하고 입술 아래에 독사의 독을 품습니다. 이들은 시인의 삶의 행보(나의 걸음)를 넘어뜨리려(밀치려) 하고, 교만한 태도로 올무와 함정을 길 곁에 숨겨 놓았습니다.
.
시인이 사용하는 악인(라솨)과 강포한 자(이쉬 하마심)라는 용어는 단순히 개인적인 적을 넘어, 법과 권력을 남용하여 약자를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적인 악의 세력을 지칭합니다. 그들의 '악한 꾀'는 치밀하게 계획된 사악한 모략을 의미하며, '독사의 독'에 비유된 그들의 말은 치명적인 중상모략이나 악담을 뜻합니다. 이는 그들의 공격이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언어적인 파괴력을 동반했음을 보여줍니다. '나의 걸음을 밀치려 하나이다'에서 걸음(페아마이)은 시인의 인생 행보나 의로운 삶을 상징합니다. 악인들은 그를 핍박하는 것을 넘어, 그가 의의 길에서 벗어나 파멸의 길로 접어들도록 신앙 자체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를 가졌습니다. 올무, 줄, 그물, 함정과 같은 중언법적 표현은 시인의 일상생활 반경에까지 은밀하고 집요하게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이 시는 성도가 겪는 고난이 단순히 외적 어려움이 아니라, 경건한 삶을 무너뜨리려는 사탄적 공격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신약 성도에게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외에 구원이 없다는 진리를 거부하고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도록 유도하는 세속주의와 종교다원주의의 유혹은 사단의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역사'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공격이 때로는 '독사의 독'처럼 남을 깎아내리거나 비방하는 말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을 살리고 위로하는 말을 사용해야 하며, 악인의 말에 동조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 예를 들어 불화나 경제적 어려움 등이 단순히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밀치려 하는 걸음'일 수 있음을 인지하고, 믿음안에서 깨어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 지도층(강포한 자)이나 권세 있는 조직이 법과 권력을 남용하여 약자들을 억압하거나 헛된 가치(샤웨, 우상)를 좇아 사회를 이끌 때,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이 악한 세력에 대항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합당한 반응을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부정직한 행위나 악한 음모가 결국 파멸로 귀결될 허탄한 것임을 선포하고, 하나님만이 참된 안전과 구원의 근원임을 증거해야 합니다.
*
# 6-7절 과거 구원의 경험을 상기하며 현재의 구원을 확신하다
하나님은 간절히 부르짖는 자의 목소리를 들으시며, 전쟁의 날에도 피난처가 되어 머리를 가리우시는 능력이시다.
.
다윗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간절한 탄원(간구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는 과거 "전쟁의 날"에 주님께서 자신의 "머리를 가리우셨나이다"라고 회상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의 능력(오즈)이 되심을 확신합니다.
.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라는 고백은 다윗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언약 관계를 나타내며, 그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담대한 간구를 드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간구하는 소리'(콜 타하누나이)는 단순히 소리가 아니라 간절한 탄원(은혜와 긍휼을 구함)을 의미하며, 동사 '귀를 기울이소서'(하아지나, 강세 명령)와 함께 시인이 처한 위기의 긴박함을 강조합니다. '구원의 능력'(오즈 예슈아티)은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위험에 처한 자를 구원할 힘을 지니신 분임을 선언하며, '전쟁의 날에 내 머리를 가리우셨나이다'는 하나님이 마치 큰 방패나 안전한 투구처럼 자신을 사망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지키셨다는 과거의 체험적 증언입니다. 이러한 회상은 현재의 고난을 이길 흔들리지 않는 신뢰의 근거가 됩니다.
성도에게 고난은 하나님께 더 간절히 기도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과거의 구원 경험은 현재의 믿음을 지탱하는 강력한 에너지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제거하시기보다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시며, 우리의 영혼에 힘을 북돋우시어 강하게 하십니다. 이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우리의 머리를 가리우신 (구원하신) 사실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
우리가 '지뢰밭을 걷는 형국'처럼 불안한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다윗처럼 '주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신앙 고백을 먼저 선포해야 합니다. 영적 침체(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시 143:7 참조)에 빠질 때, 우리는 과거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기도 응답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회상하고 묵상함으로써 참된 안식과 힘을 얻어야 합니다. 가정의 문제나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할 때, 인간적인 수고(수고의 떡)만으로는 헛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겸손한 삶은 잠자는 동안에도 평안(잠)을 주시는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교회는 세상의 억압과 고난 속에서 신앙적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모든 능력과 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회가 극심한 혼란이나 재앙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과거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구속사적 구원(출애굽, 홍해 도하 등)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분이 지금도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고통 속에 있는 약자들의 편에 서 계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
# 8-11절 악인들의 교만한 소원이 좌절되고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기를 간구하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교만과 사악한 욕망을 허락지 않으시며, 당신의 공의로 그들의 악을 보응하시는 심판자이시다.
.
시인은 하나님께 악인의 소원(욕망)과 악한 꾀를 허락지 마소서라고 청합니다. 그는 악인들이 이로 인해 교만(자고할까)해질까 염려합니다. 이어서 시인은 뜨거운 숯불이 악인들에게 떨어지고, 그들이 불 가운데와 깊은 웅덩이에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저주합니다. 그는 악담하는 자(혀의 사람)는 세상에서 굳게 서지 못하며, 재앙이 강포한 자를 뒤쫓아 패망에 이르게 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
이 단락은 저주 기원문의 성격을 띠며, 시인의 기도는 악인들의 파멸(패망)과 소멸(다시 일어나지 못하게)에 대한 간구에 초점을 맞춥니다. 악인의 소원(마아와이예,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만사(萬事)가 하나님의 허락(승인) 아래 이루어진다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에 근거합니다. 악인이 '자고할까'(룸) 염려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간섭 없이 성공할 경우 교만해져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하게 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숯불'과 '깊은 웅덩이'는 심판과 영원한 파멸을 상징하는 비유이며, 이는 악인들이 이스라엘에게 행했던 잔혹한 행위에 대한 합당한 보응 (인과응보)이 하나님의 공의(미쉬파트)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열망입니다. 악인들이 '굳게 서지 못하며' (이콘) 파멸되리라는 확신은, 악한 꾀나 행동이 결국 허무한 것(샤웨)으로 소멸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이치를 반영합니다.
이 저주 기도는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복수는 오직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정하고, 그분의 공의로운 보응을 기도하는 성숙한 신앙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신약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이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모든 악행과 불의는 결국 주의 진노의 날에 심판받을 것이며 (롬 12:19), 성도는 이를 인내와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
내 삶의 모든 욕망과 계획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을 통해 '자고할' 유혹을 경계하고, 만일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분노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악인들을 저주하기보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확신 속에서 겸손히 인내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죄로부터 자신을 보존하는 길입니다.
사회가 폭력과 교만을 미화하거나 악인의 헛된 꾀에 희망을 걸 때, 교회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선포해야 합니다. 악인의 성공은 일시적이며, 결국 공의로운 재앙이 그들을 따라잡을 것임을 경고함으로써, 정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책임 (약자 보호 등)에 동참해야 합니다.
*
# 12-13절 고난당하는 자를 위해 공의를 실현하시어 의인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의 변호자로서 공의를 행하시고, 의인들을 당신의 면전에 거하게 하시는 최종 승리의 주권자이시다.
.
시인은 "내가 알거니와"라는 확신에 찬 고백으로, 여호와께서 고난 당하는 자(아니)를 신원하시며(딘, 소송) 궁핍한 자(에브요님)에게 공의(미쉬파트)를 베푸시리라고 선언합니다. 최종적으로 의인(차디킴)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예샤림)가 주의 앞에(파네카)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내가 알거니와'(야다타)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체험과 친밀한 관계에 기초한 확신입니다. '고난당하는 자’와 '궁핍한 자'는 억압받고 사회적으로 취약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한 모든 사람을 포괄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변호자(딘)이자 재판관(미쉬파트)이 되시어 공의를 실현하실 것입니다. 이 의로운 판결은 억울함을 당한 의인에게 보상을 약속하며, 이 보상은 현세적 축복을 넘어 영원한 축복을 포함합니다. 시인은 악인의 파멸 이후의 의인들의 궁극적인 운명을 선언합니다. '주의 앞에 거하리이다'(예쉐부 에트 파네카)는 단순히 땅에 사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면전에서 동행하며 영원히 예배하는 최고의 영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시인은 현실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이미 하나님 앞에서 이 모든 고통을 초극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궁극적인 공의의 실현자이자, 고난 받는 성도의 유일한 변호자(보혜사)이십니다. 신약 성도는 환난의 크기와 복음의 능력에 대한 올바른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 나라의 영원성을 바라보며 현재의 억울함을 기쁨으로 감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실하게 간구할 때, 그분은 우리를 가까이 하시고, 최종 승리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실 것입니다.
.
개인적으로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내가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의 신원자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인과응보의 원리를 가르쳐, 세상의 불의한 이득을 좇지 않고 정직한 길을 걷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가정의 예배는 세상의 어떤 권세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주의 면전(파네카)에서 살아가는 영원한 소망을 품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회적 약자(고난당하는 자, 궁핍한 자)의 억울함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변호인으로서 공의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오늘날 돈과 권력, 명예를 숭배하며 교만한 길을 걷는 세상의 모습에 맞서, 참된 복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에게만 있으며,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과의 동행(주의 앞에 거함)에 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
# 거둠의 기도
공의와 구원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악인들의 악한 계획과 독한 혀,
그리고 파멸의 함정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저희를 파멸시키고자 모의하는 모든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저희의 걸음을 지키시고,
저희의 마음을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저희의 간절한 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과거 전쟁의 날에 저희의 머리를 가리우셨던
그 구원의 능력을 지금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악인들의 교만한 소원과 꾀를 허락지 마시고,
그들의 악행이 뜨거운 숯불과 깊은 웅덩이에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주의 공의를 신속히 행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은 고난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는
참 재판장이심을 저희가 알고 믿사오니,
저희를 정직한 자의 길로 인도하사,
마침내 주의 면전에 영원히 거하는 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할 그 날을 바라보며,
지금의 모든 환난을 믿음으로 초극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