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3:01-14 느헤미야의 재개혁 : 타협된 공동체의 정화와 예배 질서의 회복

by 평화의길벗 posted Dec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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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3:01-14 느헤미야의 재개혁 : 타협된 공동체의 정화와 예배 질서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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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3:1-14은 느헤미야가 총독으로서의 첫 임기를 마치고 페르시아 왕궁으로 돌아갔다가, 얼마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공동체가 영적으로 타락하고 이완된 것을 발견하고 단행한 개혁 중 첫 두 가지 사안을 다룹니다. 첫째,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 낭독을 통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을 총회에 들이지 말라는 규정을 듣고, 이방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중에서 분리시켰습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성전의 중요한 곳간을 성벽 재건의 대적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에게 내주어 사적으로 사용하게 한 악한 행위를 발견하고, 격분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내던지고 그 방을 정결케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백성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 레위인과 노래하는 자들이 생계를 위해 직무를 버리고 밭으로 도망했던 문제를 해결하고자, 느헤미야는 관리들을 꾸짖고 십일조 제도를 회복시켜 충직한 관리들을 임명하여 재정을 투명하게 분배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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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 배경 :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20년부터 32년까지(주전 445년-433년) 12년 동안 유다 총독으로 재임했습니다. 13장의 사건은 느헤미야가 이 12년의 임기를 마치고 바벨론 왕에게 돌아갔다가, 며칠 후에 말미를 얻어 예루살렘에 재임했을 때 발생한 일입니다.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짧은 기간 동안, 공동체는 이전에 약속했던 개혁(느 10장)을 저버리고 혼합주의와 안일주의로 급속히 퇴보했습니다. 13장은 느헤미야서의 결론이자, 이상적인 율법-성전 공동체 완성을 위한 지속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 문화적 배경 : 암몬 사람 도비야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을 방해했던 주된 대적 중 하나였으며, 그가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개인적인 유대 관계(혼인 관계 등)를 맺고 있었던 것은 당시 유다 귀족 계층 내에 느헤미야의 원수들과 결탁한 이들이 많았음을 시사합니다. 성전의 곳간(골방)은 소제물, 유향, 기명,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십일조를 보관하는 거룩하고 필수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이 공간이 사적으로 사용된 것은 성전의 거룩함(신성)이 훼손된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 신학적 배경 : 이 개혁은 하나님의 율법을 절대적인 권위로 삼는 느헤미야의 신앙을 반영합니다. 율법 준수는 포로 후기 공동체의 신앙적 정체성을 보존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율법에 따라 이방인(암몬/모압)을 총회에서 분리하고, 성전의 거룩성을 회복하며, 성전 봉사자들의 생계를 위한 십일조 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은, 유다 공동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하나님 중심의 질서를 재확립하려는 신학적 노력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사역은 단순히 물리적 재건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으로 회복시키려는 영적 개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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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말씀에 근거한 공동체의 순수성 회복

하나님은 당신의 변하지 않는 말씀(율법)을 통해 거룩함의 경계를 명확히 세우시고, 그 말씀을 따르는 백성에게 지속적인 정화를 요구하시는 언약의 신실한 주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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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는데, 율법서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기록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방 민족들이 과거에 이스라엘 자손을 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했으나, 하나님께서 그 저주를 복이 되게 하셨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즉시 순종하여, 섞여서 사는 이방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두 분리시키는 희생적 행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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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내용은 공동체의 신앙적 순수성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느헤미야가 없는 사이 느슨해졌던 공동체의 기준이 율법 낭독을 통해 급진적으로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율법과 정체성 : 느헤미야의 개혁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외적인 성벽 재건뿐 아니라, 내적인 거룩함의 유지에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분리된 '섞인 무리'(에레브)는 유대인과 주변 국가 사람들 사이에 태어난 자손을 포함하며, 이들을 분리(바달)한 것은 공동체를 정화시키려는 희생적 행위였습니다. 이러한 철저하고 분명한 태도(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성격)는 선택된 민족으로서 여호와 신앙 중심의 국가로 발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의 역동성 : 백성들은 말씀을 들음과 동시에 순종으로 반응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능력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포로기 이후 율법 교육의 강화는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불순종 때문이었음을 깊이 자각한 결과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만일 눈이나 손발이 죄를 범하게 하면 과감하게 찍어 버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18:8-9). 이는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모든 원인으로부터 접근을 금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후회가 아니라, 삶의 방향의 전환을 반드시 수반해야 합니다(눅 19:8, 9).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을 잘라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정욕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거룩함을 지키는 엄밀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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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삶에서 말씀이 제시하는 거룩함의 기준을 희생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단순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나 세상적인 가치관(예: 불의한 이익 추구, 왜곡된 미디어 중독)과의 '섞임'을 거부하고 분리의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가정 내에서도 신앙의 순수성을 해치는 문화적, 영적 암초가 무엇인지 점검하고, 온 가족이 함께 '정화'하는 실천을 해나가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거룩'의 사명을 유지해야 하며, 말씀에 근거하여 그 순수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섞인 무리' 분리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공동체의 경계를 설정하고 정체성을 강화하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사회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는 '정의'와 '진리'의 혼합입니다. 명확한 윤리적 기준 없이 이익과 타협하는 행위(느헤미야의 대적들이 행한 것)를 보면서, 우리는 성경적인 진리를 사회에 선포하고, 정치적, 경제적 타협이 공동체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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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4절 성전 내 부패 제거와 예배 사역의 재정비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집이 세속적인 이익과 부패로 더럽혀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역자가 충직한 청지기를 통해 정당한 몫을 받아 사명에 전념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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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성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은 느헤미야의 대적인 도비야와 가까이 지내며, 본래 소제물, 십일조, 성전 기명을 두던 큰 방을 도비야에게 사적인 거처로 내주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이 사실을 알고 심히 분노하여, 도비야의 모든 세간을 방 밖으로 내던지고 그 방을 정결하게 한 후,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헌물을 제자리에 다시 들여놓았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받을 몫(십일조)을 받지 못하여, 직무를 버리고 밭으로 도망했음을 알고 관리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는 곧 레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그들의 처소에 세우고, 온 유다가 곡식, 포도주, 기름의 십일조를 곳간에 들여놓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 셀레먀, 서기관 사독, 레위 사람 브다야, 그리고 하난 등 충직한 자들을 창고지기로 임명하여, 동료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이 모든 개혁을 마친 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이 행한 선한 일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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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개혁의 지속성이 지도자의 부재 시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내부 부패가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전 타락의 상징성 :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성전의 신성함을 관리할 책임이 있었음에도, 개인적인 친분(도비야와의 연락)과 타협으로 인해, 성전의 곳간을 사적인 용도로 전용했습니다. 이는 도덕적 결여와 지도력 부족의 결과였습니다. 성전 곳간은 하나님의 백성이 드린 거룩한 헌물이 모이는 곳이며, 레위인들의 생명줄이었습니다. 이 공간의 오염은 곧 공동체의 예배와 영적 기능의 붕괴를 상징합니다. 느헤미야가 방을 정결케 한 행위는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을 다시 세우는 종교 의식적 정화였습니다.

예배의 경제적 기반 : 십일조가 멈추자 레위인들이 생계를 위해 흩어졌습니다. 레위인들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어 전적으로 십일조에 의존했으므로, 이들의 이탈은 예배와 제사의 중단을 의미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민장(관리들)의 책임과 백성의 헌신 부족(십일조 불이행) 모두를 꾸짖어 해결했습니다. 이는 성직자가 사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동체가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율법의 질서를 재확립한 것입니다.

충직한 리더십과 느헤미야의 기도 : 느헤미야는 개혁의 지속성을 위해 충직한 관리인들을 세우는 구체적인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선한 일(토브)로 규정하며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는 인간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목과 개입을 통해 자신이 행한 언약적 개혁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지도자의 신앙적 태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돈 바꾸는 자들의 탁자를 엎으신 사건(마 21:12-13; 요 2:14-16)은 느헤미야가 도비야의 세간을 내던진 것과 유사하게, 하나님의 집을 세속화하고 상업화하는 행위를 단호하게 거부하신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기는 종의 모습을 본으로 보이시며 (요 13:15), 지도자는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막 10:42-45). 느헤미야의 공정하고 충직한 분배 시스템은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이 구제 문제를 위해 일곱 집사를 세워 (행 6:1-7) 재정을 공평하게 다루려 했던 모습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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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생활에서 감정적 동기가 사라지면 곧바로 옛 습관으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예배의 감격(느 12장) 이후에도 지속적인 순종과 헌신을 통해 예배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정 관리에 있어서 충직한 청지기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물질의 사용 목적을 분명히 하고 사적인 욕심으로 공적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는 느헤미야의 꾸짖음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 내의 재정 관리와 지도자의 윤리는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는 데 있어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지도자는 엘리아십처럼 개인적 이익이나 친분 때문에 공동체의 거룩을 타협해서는 안 되며, 권리보다 책임을 더 무겁게 여기는 느헤미야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사회 현상에 적용할 때, 공직자나 관리(느헤미야 시대의 민장)들이 공적 시스템을 사적인 목적(도비야에게 곳간을 내어주는 것)이나 정실(情實)에 따라 이용하거나, 혹은 직무 태만(십일조 관리 소홀)으로 인해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악을 경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은 정치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공익을 위한 공정한 거버넌스지도자의 도덕성이 한 공동체의 영적, 물리적 건강을 좌우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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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공의와 사랑으로 당신의 백성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저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쉽게 타협하고 

옛 죄악으로 뒷걸음질쳤던 이스라엘처럼, 

저희 역시 순간의 감격보다 지속적인 순종에 실패합니다. 

말씀의 칼을 허락하시어, 

저희 삶 속에서 거룩함을 잃게 하는 

모든 섞인 무리이익을 탐하는 도비야를 

단호히 분리시키고 내어쫓는 용기를 주옵소서. 

특별히 저희가 세운 공동체와 교회에서, 

섬기는 자들이 생계의 염려 없이 사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충직한 헌신공정한 질서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저희의 노력이나 사람들의 인정이 아닌, 

오직 주님께서 저희의 선한 행위를 기억하사 

저희 공동체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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