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9:23-38 곤핍한 풍요 속에서 다시 부르는 희망의 노래

by 평화의길벗 posted Nov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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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9:23-38 곤핍한 풍요 속에서 다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신앙은 우리의 끈질긴 배반보다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 언제나 더 크다는 사실을, 그 아픈 기억 속에서 다시 건져 올리는 일입니다.

*

어느 철학자는 "역사는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차라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끈질긴 망각의 역사'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느헤미야 9장의 후반부(23-38절)는 바로 그 서글픈 인간의 자화상을 고통스럽게, 그러나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광야의 시간을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풍요로웠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파지 않은 우물을 얻었고, 심지어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원까지 차지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다"(25절)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배부름'과 '살찜'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결핍의 때에 그토록 간절했던 하나님을, 풍요의 때가 되자 헌신짝처럼 등 뒤로 던져버렸습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니 영혼의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그 옛날 이스라엘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오늘날 물질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영혼의 빈곤을 겪고 있는, '곤핍한 풍요'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저지른 배반과 하나님이 베푸신 긍휼 사이의 지루한 반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평안하면 하나님을 떠나고, 고난이 닥치면 그제야 비명을 지르며 하나님을 찾습니다. 참으로 염치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등을 돌리고 율법을 무시하며, 심지어 당신이 보낸 선지자들을 죽이기까지 한 그 패역한 백성들을 향해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30절),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다"(31절)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무게에 눌려 신앙의 자리에 회의를 느끼는 벗들이여. 우리의 희망은 '우리가 얼마나 성실한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실패하는가'와 상관없이,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에 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스스로 '종'이 되었다고 탄식합니다(36절).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취해 선물 주신 분을 잊어버린 대가는, 풍요 속의 노예살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비참한 종의 자리에서도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의지가 아니라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Hesed)'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맹세하고 다짐해도 돌아서면 넘어지는 갈대와 같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은 우리의 완벽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에 기대어 우리의 깨어진 조각들을 맞추어가는 여정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환난과 곤고함조차도 우리를 당신 품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아픈 사랑의 손짓일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죄보다 크신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합시다. 그 기억만이 우리를 참된 자유인으로 살게 할 것입니다. 비록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우리의 삶은 고단할지라도, 우리를 붙들고 계신 그 따뜻한 손길을 신뢰하며, 오늘이라는 척박한 땅 위에 다시 한번 감사의 제단을 쌓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느헤미야 9:23-38 우리의 긴 반역, 하나님의 끈질긴 은총

우리의 영적 번영이 우리를 교만에 빠지게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한 긍휼을 거두지 않으시고, 우리가 그 은혜의 깊이를 깨닫도록 인도하십니다.

*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주님의 고요한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느헤미야 9장의 후반부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들은 후 역사를 되돌아보며 드린 깊은 참회의 서사입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으로(9:6), 광야에서 만나와 물과 율법이라는 생존의 모든 조건을 어떻게 베푸셨는지 고백했습니다(9:15). 그리고 오늘 우리가 주목할 본문(9:23-38)은 그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 "튼튼한 성읍과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9:25) 그분의 선물을 한껏 누리던 풍요의 시대를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하셨고, 그들은 땅의 소산물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했습니다(9:25). 그런데 이 놀라운 축복과 번영이 도리어 그들을 죄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역설이 발생했습니다. 인간은 흔히 지혜나 힘이나 재산과 같은 ‘전리품’을 얻을 때, 그것을 자랑하며 타자들보다 우월한 자리에 서려고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풍요로워지자 그들은 "목이 뻣뻣해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했고(9:29), 심지어는 하나님께 진실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9:26). 그들의 마음은 완악하게 굳어졌습니다.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힌 사람은 마치 쇠 항아리 속에 갇힌 것처럼 다른 세계를 보지 못하며, 부드러움을 잃고 굳어짐이라는 죽음의 친구에게 길들여지는 법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끈질긴 반역 앞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속성 중 '인애(仁愛), 곧 헤세드'가 얼마나 끈질긴지를 증언합니다. 백성들이 끊임없이 당신을 거역하고, 돌아설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괴롭히는 이들(대적)의 손에 넘기셨지만, 그들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을 때마다 "크신 긍휼을 따라"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9:27-28).

이것이 바로 우리 연약한 존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입니다. 만일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윤리적 성실성이나 완벽한 경건에 달려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절망의 심연에서 난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당신의 선물을 잊고 방종했을지라도, 당신의 '측은한 마음'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자녀가 아버지께 돌아올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피할 수 없는 '종노릇'이라고 고백합니다(9:36). 그들이 지금 겪는 환난과 고통은 비록 괴롭지만, 이는 오직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기 때문이며(9:33),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의 결과임을 인정합니다.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역사는 때때로 정의가 실종된 듯 보이고, 불의한 자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심판자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십니다. 우리가 이 어둠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나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은 우리가 쥐고 있는 무언가에 있지 않고, 오직 우리를 붙드시는 하늘의 인력(引力)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신앙생활은, 우리가 가진 지혜나 힘을 자랑하는 대신, 고통받는 이웃의 아픔에 반응하며, 우리의 삶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하나님의 은총의 깊이를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길의 사람들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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