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9:23-38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께 드리는 역사적 회고와 견고한 서약의 결단
*
본문은 레위인들이 백성들을 대신하여 드린 긴 역사 회고 및 고백 기도의 후반부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시어 풍요를 누리게 하신 은혜로운 역사를 회고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9:23-25). 그러나 백성들은 그 땅에서 순종하지 않고 교만하여 선지자들을 죽이는 등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9:26-3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크신 긍휼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여러 번 구원하셨습니다(9:31). 기도는 현재의 비참한 상황으로 전환되어, 앗수르 왕 때부터 당한 모든 환난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때문이며, 그 결과 약속의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음을 통렬히 고백합니다(9:32-37).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은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지도자들이 인봉하는 결단을 촉구합니다(9:38).
*
역사/문화적 배경 : 이 기도는 예루살렘 성벽 완공(느 6:15)과 초막절(느 8장)을 마친 후, 칠월 이십사일에 금식하며 통회하는 성회 중에 이루어졌습니다. 느헤미야 9:36-37에 반영된 바와 같이, 당시 포로 귀환 공동체는 비록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이방 왕들에게 몸과 가축, 소산을 임의로 관할당하는 사실상의 종살이(피정복민) 상태에 있었습니다.
신학적 배경 : 느헤미야 9장의 기도는 신명기 신학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를 언약에 대한 순종/불순종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현재의 고난(종살이)을 조상들의 반복된 죄와 불순종의 결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핵심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변치 않는 긍휼(헤세드)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이 구원의 근거임을 확인하고 새로운 언약을 갱신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 기도는 백성들의 죄에 대해 연대감을 인정하고 강조하는 기능을 합니다.
*
# 23-25절 언약의 풍요로운 성취
하나님은 당신의 크고 선한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시어, 당신의 백성에게 땅과 자손과 풍요로운 소산을 예비하시고 누리게 하시는 언약의 성취자이시다.
.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셨고, 그들의 조상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주민들을 복종시켜,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우물, 포도원, 감람원 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배불리 먹고 살이 찌며, 주님의 큰 복을 즐겼습니다.
.
이 구절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두 가지 핵심 요소, 즉 자손의 번성(창 15:5)과 땅의 상속을 하나님이 완전히 이루셨음을 확인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이 축복의 역사를 회고하는 것은, 현재 포로 귀환민들이 겪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안에 있는 백성임을 재확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은혜가 최고의 풍요를 의미했으며, 그들의 실패가 은혜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교만 때문에 발생했음을 다음 단락에서 부각하기 위한 대조적 기능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이후 가나안 땅에서의 풍요는 하나님의 전적인 공급과 섭리의 결과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노력 이전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있었다는 신학적 진리를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라지 비유를 통해 세상이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밭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풍요로운 땅(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역의 열매(가라지)를 맺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좋은 씨앗)을 받았으나, 그 축복 속에서 자칫 영적 나태함에 빠져 타락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정체성 상실의 이유가 아니라, 더 큰 순종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현재 누리고 있는 물질적 안정과 풍요(건강, 직업, 가족의 평안 등)가 우리 조상에게 주신 가나안 땅처럼 하나님의 언약적 은혜의 결과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구태의연하게 이 축복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개인의 능력으로만 돌리는 교만을 삼가야 합니다. 대신, 이 풍요로운 자원들을 이웃과 공동체를 섬기는 데 기쁨으로 사용하며(고후 9:5-7 참고), 우리가 '하나님의 집을 아름답게 할 뜻'(스 7:27)을 가진 도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느헤미야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역사 간섭과 섭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세워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경제적 풍요 속에서 탐욕과 사회적 약자 착취라는 죄악에 젖어 살찌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세상의 불의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공동체의 거룩한 목적 (정의와 긍휼)을 위해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말씀의 표준을 회복해야 합니다.
*
# 26-31절 반역의 순환과 긍휼의 중단 없음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너그러우시고 사랑이 많으신(헤세드) 분으로서, 당신의 말씀을 등지고 선지자들을 죽이며 끝없이 반역하는 백성일지라도, 인내와 긍휼로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자를 주어 당신의 언약을 보존하시는 구속주이시다.
.
이스라엘 자손은 순종하지 않고 주를 거역하며 율법을 등지고, 주께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은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시어 곤고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부르짖을 때, 주님은 하늘에서 들으시고 크신 긍휼로 구원자들을 주어 건져내셨습니다. 그러나 평강을 얻은 후에도 다시 악을 행하여 원수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경계하시고 주의 계명(삶을 얻는)을 복종하게 하려 했으나, 그들은 교만하여 목을 굳게 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여러 해 동안 참으시며 선한 영(예언자들)을 보내 타이르셨지만, 결국 그들을 이방 나라 백성에게 넘기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멸망시키지도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
이 단락은 하나님의 인자함(헤세드)과 백성의 완악함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구속 역사를 조망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불순종(선지자 살해 등) -> 징계(대적에게 넘어감) -> 회개(부르짖음) -> 구원(사사) -> 안일(다시 악행)의 반복적인 순환 구조를 가졌습니다. 이는 죄의 결과로 징계는 불가피하지만, 징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파멸이 아닌 교훈과 회복(가르침)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9:30은 하나님께서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주의 영으로" 경고하셨음을 강조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고,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인내를 동반했음을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이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거부한 것은, 생명 대신 죽음을 택한 패역이었습니다.
백성이 반복적으로 거역하고 선지자를 죽이는 죄악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로 보내졌으나 악한 소작인들(백성)이 그를 죽였다는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패역한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렘 31:31-34).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제사(히 9:11-12) 덕분에, 우리는 조상들의 반복적인 죄의 저주에서 벗어나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얻게 되었습니다.
.
우리가 삶의 환난이나 고난에 처할 때(개인의 "곤고"의 순간), 구태의연하게 환경 탓이나 불운 탓을 하는 것을 멈추고, 말씀 앞에 교만하지 않았는지(고집하는 어깨를 내밀지 않았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징계하시지만, 그 징계는 사랑의 도구이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긍휼의 증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회복의 열쇠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진실한 기도로 회개하는 것)과, 죄된 행동에서 구체적인 결단 (단호히 끊어냄)을 통해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는 데 있습니다.
교회는 사회의 선지자적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심지어 그들을 죽였던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교회는 시대의 경고(예: 사회 정의의 붕괴, 불공정, 탐욕)를 주는 목소리를 존중하고 경청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말씀을 통해 공의와 자비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종교적 열심을 보여도 위선자로 전락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23:23).
*
# 32-38절 공의로운 심판에 대한 고백과 결단
하나님은 위대하고 강하고 두려우신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시며, 당신의 징계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이 주께 돌아와 견고한 언약을 세울 때, 충성을 다짐하는 그들의 헌신을 받으시는 성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
백성들은 하나님을 위대하고 강하고 두려우신 분이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분으로 인정하며 간구합니다. 그들은 앗수르 왕 때부터 당한 모든 환난을 작게 여기지 마시고, 이 모든 일이 주님께서는 공의로우시고(진실하시고) 우리는 악을 행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현재의 상태는, 조상들에게 주신 바로 그 땅에서 종이 되었으며, 이방 왕들이 땅의 소산과 백성의 몸과 가축을 마음대로 관할하는 심한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은 견고한 언약(아마나)을 세워 기록하고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인봉합니다 (9:38).
.
이 단락은 '공의(의로움)의 신학'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고난이 운명이나 억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처분임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9:33)라는 고백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멸망당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언약을 기억하셨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소망을 구하는 역설입니다. 그들이 종살이를 하고 있다는 자각은, 물리적 회복(성벽 완공)이 영적 회복(율법 순종) 없이는 불완전하며, 외세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의 통치(왕권)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견고한 언약(אמנה, amanah) : 9:38에 사용된 '언약'(amanah)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베리트'(ברית)가 아니라 '충실함' 또는 '계약'을 의미하는 독특한 용어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충실함(אמן)을 기억하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성실할 것을 다짐하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 결론적인 행동은 단순히 회개가 아닌, 영적 갱신을 제도화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결속시키기 위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서약이었습니다.
.
우리가 삶에서 심각한 어려움(환난)을 겪을 때, 그 원인을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구태의연한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백성들처럼, 우리의 악행은 인정하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적 결단입니다. 이처럼 죄를 고백하는 것은 개인적인 감정에 그치지 않고, 견고한 서약(실천 가능한 계획)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면 무분별한 소비나 부채 증가와 절교하고, 재정 관리 규율(율법)에 충실하겠다는 구체적인 서약(재정 문서 작성 및 지키기)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사회가 직면한 문제(예: 부패, 사회 정의의 결여)에 대해 공동체적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백성들이 "종살이"를 고백하며 외세에 의한 착취를 탄식했듯이(9:37), 현대 사회의 빈부 격차와 기득권층의 불의한 압류(느 5:7 참고) 현상을 하나님의 공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견고한 언약 (9:38)은 오늘날의 교회에게 이방 문화와의 혼합을 끊고,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제도적 결심(예: 안식일 준수, 이웃에게 빚 탕감, 성전 봉사자 지원)을 요구합니다. 교회 지도자들(방백, 제사장, 레위인)이 먼저 모범을 보이고, 이 서약에 서명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인간의 현실 속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 거둠의 기도
위대하고 강하고 두려우신,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땅과 풍요로운 축복을 주셨으나,
저희 조상들처럼 교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지자를 죽였던
저희의 모든 허물을 자복합니다.
저희를 향한 주님의 인자하심과 인내가 없었다면,
저희는 진작 멸망당하고 버려졌을 것입니다.
저희가 오늘날 누리는 이 땅에서
영적인 종살이를 하고 있음은
주님의 공의로우신 심판 때문임을 인정합니다.
이 모든 환난을 통해 저희의 죄를 깨닫게 하셨으니,
이제 저희가 견고한 언약을 세워,
저희의 삶과 공동체에서 죄와 단호히 절교하고,
주의 계명에 충성하며 살 것을 맹세합니다.
저희의 눈물의 회개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시고,
세상의 통치 원리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저희의 삶의 표준으로 삼게 하옵소서.
저희를 붙드시고 인도하사,
저희의 서약이 삶을 통해 열매 맺게 하실 줄 믿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