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2:01-20 기도와 준비로 열린 사명의 문 : 느헤미야의 왕 앞에서의 고백과 단호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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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가 기도 응답을 받아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에게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한 허락과 지원을 얻어내는 과정과,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은밀히 상황을 점검하고 백성을 설득하며, 대적들의 조롱에 단호하게 하나님의 권위를 선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느헤미야가 안락한 왕궁 생활을 뒤로하고, 사명자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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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과 상황 : 이 사건은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니산월에 발생했습니다(느 2:1). 이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을 들은 기슬르월(느 1:1)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시점입니다. 이 시기는 주전 445년경으로 추정되며, 이미 성전 재건(스룹바벨, 에스라)은 이루어졌으나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져 유다 백성이 큰 환난과 능욕 가운데 있었습니다.
문화적 배경 :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의 술 관원이라는 고위 관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직책은 왕에게 특별한 신임을 받는 위치였으며, 느헤미야는 이 지위를 활용하여 성벽 재건이라는 중차대한 청원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왕에게 사적인 요청을 하는 것은 당시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느헤미야는 믿음으로 이를 행했습니다.
신학적 배경 : 본문은 느헤미야의 사역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아래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을 증언하는 것은, 그의 비전과 계획이 인간적인 능력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감화되어 시작되었고, 하나님이 그 일의 끝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방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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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절 은혜를 구하는 담대한 청원과 왕의 허락
하나님은 당신의 종의 지속적인 기도에 응답하시며, 세상의 최고 권력자의 마음까지 움직여 당신의 구속사적 계획이 형통하도록 길을 여시는 주권적인 통치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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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닥사스다 왕 제20년 니산월, 느헤미야는 왕에게 포도주를 드렸는데, 이전에는 수심(愁心)이 없었으나 그날은 얼굴에 수심이 있었습니다(2:1-2). 왕이 그 이유를 묻자,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하며, 예루살렘의 황폐함과 성벽의 훼파로 인한 조상들의 묘실의 수치를 고하며 휴가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기도를 멈추지 않고, 청원할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왕은 느헤미야의 기간 요청에 대해 허락했으며, 느헤미야는 왕에게 필요한 조서와 목재를 요청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형통하게 되었습니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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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응답과 때의 섭리 :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은 기슬르월(느 1:1)부터 왕에게 청원한 니산월(느 2:1)까지는 4개월의 간격이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느헤미야는 산발적인 기도가 아닌 지속적인 기도로 사역을 시작하고 진행시켰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우연처럼 왕이 느헤미야의 안색을 살피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왕이 술 관원의 안색에 수심이 있음을 간파한 것은 느헤미야에게는 위기였지만, 하나님께는 지혜를 발휘하여 청원할 때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권력 구조의 활용 : 느헤미야는 '술 관원'이라는 자신의 고위 직위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왕이 성벽 재건을 위한 조서를 내려준 것은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제국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하나님의 주권이 이방 왕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의 뜻을 성취하고 있음을 신학적으로 입증합니다. 느헤미야는 이 비전을 '하나님의 역사로 형통케 하시도록'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가 휴가를 얻고 지원을 받은 것은 단순히 정치적 처세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아래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는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빌립보서 1장 6절의 믿음의 원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아래 모든 역사가 구속사의 전개를 위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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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우리의 환경과 조건을 무시한 채 추상적인 기대만을 가집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기도와 함께 구체적인 전략(휴가 기간, 통행 조서, 목재 공급처)을 요청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속한 환경(직장, 가정, 지역 사회) 내의 권위와 자원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인식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느헤미야처럼 4개월 동안의 지속적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막연한 도움 대신 "이 프로젝트를 위한 재정적 지원과 인력을 얻을 수 있도록" 왕 앞에서 은혜를 구하듯 구체적인 '형통'을 간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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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6절 신중한 리더십 : 은밀한 현장 조사와 전략 구상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일을 추진하는 지도자에게 섣부른 행동을 막는 신중함과, 냉철한 현실 진단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행동 계획을 세우도록 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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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3일 동안 쉬었습니다(2:11). 그리고 밤에 믿을 만한 두어 사람만 데리고 은밀하게 예루살렘 성벽을 시찰했습니다(2:12, 16). 그는 성벽의 허물어진 정도와 성문이 불탄 상태를 골짜기 문, 용 샘, 거름 문 등을 지나며 자세히 살펴 보았습니다(2:13-15). 그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감화와 미래 계획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 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습니다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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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신중함 :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3일 동안 아무런 특별한 행동 없이 거했던 것은 단순히 휴식의 시간을 넘어, 기도하며, 계획을 재점검하고, 모든 일을 전폭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결단과 순종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은 외적인 개혁 착수 전에 내적인 영적 재정비를 하는 시간이자, 필요한 동역자나 자원들을 조용히 구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전문적 현장 진단 : 느헤미야가 밤중에 두어 사람만 대동하고 성벽을 조사한 것은 반대자들(산발랏과 도비야 등)을 의식한 철저한 보안 유지와 더불어, 일을 그르치지 않으려는 신중한 지도력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살펴본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는 '어떤 것을 아주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는 뜻으로,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상처를 진찰하듯 엄밀하게 조사하는 의학용어적 의미를 가집니다. 느헤미야는 단순히 '파괴되었구나'가 아니라, 복구에 필요한 구체적인 전략과 행동 계획을 세우기 위해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했습니다.
비전과 전략의 조화 :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받은 비전('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성취하기 위해 영적인 확신(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체적인 전략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황폐함 속에서도 미래의 소망의 비전을 가지는 데서 나오며, 이 비전은 철저한 준비와 신중한 행동을 통해 성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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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영적인 열심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철저한 계산만 하고 기도를 잊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기도와 준비의 상호 보완 관계를 보여줍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새로운 사역이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3일이라는 시간을 구별하 (영적 정결 의식)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특히, '의사가 환자의 상처를 진찰하듯' 냉철하게 객관적 현실(재정, 인력, 내부 갈등의 심각성)을 분석하여, 감정적인 호소가 아닌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전략을 먼저 수립하는 것이 오늘날 필요한 리더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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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0절 백성의 결단과 대적에 대한 단호한 선포
하나님은 당신의 종의 권면을 통해 백성의 마음을 결단하게 하시고, 인간적이거나 정치적인 힘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앞세워 대적자들의 헛된 비방과 권리를 단호히 부정하시는 거룩한 방패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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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마침내 유다 사람들과 지도층에게 "우리가 당한 곤경"을 상기시키며, 성벽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고 호소했습니다(2:17). 그는 이어서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증언했습니다. 백성들은 이에 "일어나 건축하자"고 힘을 내어 결단했습니다(2:18). 이 소식을 들은 산발랏,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은 느헤미야 일행을 업신여기고 비웃으며, 예루살렘 재건을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는 정치적 반역으로 몰아세웠습니다(2:19). 이에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라고 응답하며, 대적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고 단호히 선포했습니다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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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적 책임과 동기 부여 :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호소할 때 '우리의 당한 곤경'이라고 자신을 포함시켜, 지도자로서 연대적 책임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황폐한 상태를 국가적 위기이자 수치로 규정하고, 이 수치를 씻기 위해 백성들을 고무시켰습니다. 동기 부여의 핵심은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이미 역사하고 있다는 신적 보증과 왕의 공적인 후원(조서)이었습니다. 백성의 결단은 이 신적 권위를 믿고 힘을 내어(힘써) 순종하겠다는 자발적 반응이었습니다.
대적의 공격과 느헤미야의 방어 : 느헤미야의 대적들(산발랏, 도비야, 게셈)은 조롱과 멸시 그리고 모함과 협박을 상투적인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성벽 재건을 페르시아 왕에 대한 반란죄로 단정하여 법적 구속력을 가하려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대처 방식은 물리적인 방어나 일일이 맞대응하는 대신, 신적인 도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단호한 신앙적 선포 : 느헤미야의 선포(2:20)는 단순한 거절이 아닌, 예루살렘 재건의 권한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신학적인 선언입니다. 여기서 대적들에게 없다고 선언한 세 가지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기업' (חֵלֶק, ḥēleq) : 정치적인 분리/소유권; 둘째, '권리' (צְדָקָה, ṣĕdāqâ) : 사법권을 행사할 법적인 권리; 셋째, '명록' (זִכָּרוֹן, zikārôn) : 기념/추억, 즉 예루살렘 제의에 참여할 제의적 권한. 느헤미야는 대적들에게 이 도시에서의 시민적, 법적, 제의적 권리가 없음을 분명히 선포함으로써, 유다의 독립된 정체성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인간적이거나 정치적인 힘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앞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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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추진할 때, 조롱과 멸시(비웃음과 모함)는 언제나 따르는 상투적인 수단입니다. 공동체와 개인은 세상적인 조롱에 감정적으로 말려들지 않고,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확신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가장 구체적인 적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내부적 결단 : 가정이나 공동체의 영적 침체 상황을 느헤미야처럼 '우리가 당한 곤경'으로 받아들이고, 수치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일에 착수해야 합니다. ② 외부적 대처 : 사명을 방해하는 자들(직장이나 사회에서 부정한 압력을 가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사명은 오직 하나님의 선한 손길에 의해 진행되며, 그들은 이 거룩한 사업에 아무런 간섭할 권리나 자격이 없다는 신앙적 경계를 단호히 선포해야 합니다. 그 간극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마침내 이 일을 이루어 간다는 것을 겸손히 바라며 나아가야 합니다. 계획의 성취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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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하늘의 하나님,
저희의 삶과 공동체를 향한 주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저희를 사용하시는 주권적인 통치자이심을 찬양합니다.
안락한 자리에 머무르려는 저희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무너진 예루살렘의 수치를 깨닫고 애통하며 기도하게 하셨듯이,
이 시대의 황폐함 앞에서 진정한 사명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주님, 저희의 지속적인 기도에 응답하시어,
세상 권력자들의 마음까지도 주장하사
저희가 형통함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옵소서.
느헤미야처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3일의 신중함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하게 하시고,
저희의 계획과 전략이 오직 주께로부터 오는
지혜와 확신에 근거하게 하옵소서.
저희의 결단을 조롱하고 모함하는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모든 대적들 앞에서
하늘의 하나님만이 저희의 힘이심을 담대히 선포하게 하옵소서.
인간의 힘이나 정치적 논리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앞세우는 견고한 믿음으로,
맡겨진 모든 선한 일을 완수하는 충성된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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