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01-11 무너진 성벽 앞에서 부르는 언약의 노래

by 평화의길벗 posted Nov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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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01-11 무너진 성벽 앞에서 부르는 언약의 노래

우리의 무능과 죄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예루살렘의 소식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언약과 그분의 깊은 긍휼을 일깨우는 '기억의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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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폐허를 마주한 마음의 자리

느헤미야 1장의 첫 장면은 페르시아의 수도 수산 궁에서 시작합니다. 풍요와 안전의 정점, 왕의 술 관원이라는 안정된 지위. 느헤미야는 세속적인 관점에서 '성공'의 궤도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적인 삶은 유다에서 온 형제 하나니의 말을 통해 질펀한 삶의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 산산이 조각납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으며, 남아 있는 백성들은 큰 환난과 능욕 속에 있다는 비보.

성벽의 파괴는 단순히 물리적인 훼손을 넘어, 공동체의 정체성 상실이자 역사적 비극의 현재적 증명이었습니다. 견고해야 할 삶의 테두리가 무너지고, 외부의 조롱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의 반응은 깊은 공감(共感)의 윤리를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안락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외치는 대신, 먼저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이 슬픔은 단순한 감정의 동요가 아닙니다. 그것은 멀리 떨어져 있던 한 개인이 고난받는 공동체의 역사적 무게를 자기 영혼으로 짊어지는 성찰(省察)의 시간입니다. 무너진 성벽은 곧 우리의 무너진 마음, 관계의 파괴, 그리고 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은 궁정 생활 속에서 홀로 폐허의 소식을 붙들고 울었던 느헤미야의 모습은, 우리가 신앙을 회의하고 좌절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도 타인의 아픔을 통해 우리 자신의 소명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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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가 아닌, 그분의 신실하심으로

느헤미야의 기도는 깊은 인문학적 성찰과 가장 깊은 신학적 진리가 만나는 지점입니다(느 1:5-11). 그는 기도를 시작하며 하나님을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고백하지만, 이내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라며 언약과 긍휼을 호소합니다.

이 기도의 핵심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나와 나의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라며 자신과 공동체의 죄악을 숨기지 않고 철저히 자복합니다. 그들은 언약을 지키지 못했지만, 느헤미야는 도리어 그들이 어긴 그 언약의 내용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주께서 전에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기억하옵소서(느 1:8-9)."

이것이 바로 신앙의 위대한 역설이자,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분명하게 부각되는 순간입니다. 느헤미야는 "우리가 이렇게 했으니 도와주십시오"가 아니라, "우리는 실패했지만, 당신은 이렇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간구합니다. 우리의 회복은 우리 자신의 의로운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치 않는 언약을 기억하게 하시는 그분의 깊고 깊은 긍휼(Compassion)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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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혜의 길 위에서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거나, 삶의 무게로 지쳐 주저앉은 이들에게 이 느헤미야의 기도는 가장 강력한 위로이자 동기 부여가 됩니다. 우리는 늘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 익숙한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면서도 우리를 내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무너진 그 자리에서, 당신의 사랑에 기초한 열심(熱心)으로 우리를 다시 세우실 약속의 말씀을 꺼내 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열심히' 성벽을 쌓으라고 채찍질하시기 전에, 먼저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은혜를 붙들고 눈물로 엎드렸던 느헤미야는, 이제 조용히 행동할 준비를 합니다. 이 눈물의 기도는 단순히 감상적인 멈춤이 아니라, 다시 길을 걷기 위한 순례자(巡禮者)의 출발점이 됩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무너진 성벽과 같아 보이는 절망과 좌절의 순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너짐의 소식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얼마나 깊고 항구적인지를 깨닫게 하는 소명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위해 베풀어주신 언약과 은혜를 기억하며 고요히 걷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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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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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1-11 에세이: 무너진 성벽 앞에서, 헤세드를 붙들다

고향의 비보 앞에서 터져 나온 느헤미야의 탄식은,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언약을 기억하시고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애(헤세드)에 뿌리내린, 연약한 인간의 가장 진실한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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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 사무친 그리움

구약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러하듯이, 느헤미야의 서사 또한 슬픈 소식으로 시작됩니다. 페르시아의 수도 수산 궁, 어쩌면 화려함과 안락함 속에 가려져 있었을 느헤미야의 마음은 고향 예루살렘의 비보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성벽은 허물어졌고 성문들은 불탔다"(1:3). 포로기 이후 간신히 재건의 불씨를 살려가던 민족의 중심이 다시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 앞에서, 그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현실의 안녕을 뒤로하고 주저앉아 울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1:4).

느헤미야는 왕의 술 맡은 관원, 즉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었지만(1:11), 그의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예언자의 심정이었습니다. 진실을 붙들려는 이는 흔히 외롭고, 세속의 권력과 이익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다른 이들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무능함"이 악의 뿌리라고 일갈했던 한나 아렌트의 통찰을 뛰어넘어, 멀리 떨어진 고향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는 분주함 속에서, 세상의 고통과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을 잃어버리고, 삶의 주변에 자리한 이웃들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곤 합니다. '있음' 그 자체로 기쁨이 되는 생명의 신비 앞에 놀라고 기뻐하는 능력 대신, 돈과 욕망의 지배 속에서 주변을 황폐하게 만드는 데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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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눈물의 기도, 헤세드를 구하다

느헤미야가 보인 반응, 곧 울음과 기도는 연약한 인간이 다시금 하나님의 섭리 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그의 기도는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고,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시며 언약을 지키시며 인애를 베푸시는(헤세드) 주여"라고 간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1:5). 우리의 연약한 실상, 우리의 '얼룩진'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은 바로 하나님의 신적 집요성과 견고성, 즉 헤세드입니다.

느헤미야는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서 크게 죄를 지었나이다"(1:6).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나'의 죄가 아니라, '우리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고백한다는 점입니다(1:6). 개인의 덕성이나 윤리적 실천 너머,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을 등지고 제멋대로 살았던 역사적 실패 앞에 겸손히 엎드린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의 거미줄 위에서 몸을 뒤챌수록 더욱 부자유해지는 존재이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의 궁극적인 힘은 우리의 회개나 다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행하심과 베푸신 은혜에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과거 행위, 곧 이집트의 '쇠 풀무'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던 언약의 역사를 상기시킵니다(1:10). 이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스스로 맺으신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약속이 "우리 가운데서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는 신앙적 사건"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 막막하고, 신앙에 회의가 들 때가 있다면,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할 때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새로운 세상의 모퉁잇돌로 삼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행동해야 한다'고 명령하기 전에 먼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부족함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발현되는 "가장 적당한 순간"입니다. 절망의 심연 속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하고 숭고한 사랑의 숨결을 느끼고, 삶의 자리에서 평화의 태피스트리(tapestry)를 짜는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탄식이 하나님의 마음과 깊이 접속될 때, 무너진 성벽의 폐허 위에서도 새로운 역사의 여명이 밝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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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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