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2:01-09 비록 지금은 작아 보일지라도 더 큰 영광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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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2:1-9은 성전 재건을 시작한 지 약 한 달 후(1:15과 비교), 백성들이 새로 짓는 성전의 초라한 모습에 낙심하자 주신 하나님의 두 번째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을 기억하는 자들에게 현재의 모습이 "보잘것없지 아니하냐"고 물으시며 그들의 실망감을 아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곧바로 "굳세게 할지어다"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 명하시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임재의 약속과 출애굽 언약(내 영이 머물러 있다)을 재확인시키십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조금 있으면" 하늘과 땅과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혹은 '열방의 사모하는 이')가 이르러 이 성전에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이 가득하게 될 것이며, 그곳에 평강(샬롬)을 주시리라는 장엄한 약속으로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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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 : 첫 번째 메시지(1장) 이후 백성들이 순종하여 공사를 재개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2:1)입니다. 일곱째 달은 이스라엘 절기력에서 가장 중요한 달로, 나팔절, 대속죄일, 그리고 '초막절'(장막절)이 있는 때입니다. 특히 초막절은 광야 생활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풍성한 수확을 감사하는 가장 기쁜 명절이었습니다. 바로 이 기쁨의 절기에, 백성들은 새로 짓는 성전의 초라함을 보며 과거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떠올리고 깊은 낙심에 빠졌습니다(에스라 3:12 참조).
문화적 배경 : 당시 백성들 중에는 BC 586년 예루살렘 멸망 이전에 솔로몬 성전을 직접 보았던 노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억 속 '첫 번째 집'은 엄청난 금과 백향목으로 지어진, 고대 세계의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에 비해, 이제 막 기초를 놓고 벽을 올리는 '두 번째 집'은 포로 귀환민들의 빈약한 재정 형편을 반영하듯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초라함' 사이의 극명한 비교가 공동체 전체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었습니다.
신학적 배경 : 백성들은 성전의 '영광'을 눈에 보이는 '규모'와 '화려함'으로 측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광'의 개념을 재정의하십니다. 성전의 진정한 영광은 건물의 크기나 재료가 아니라, 그곳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언약'에 있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나아가 이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클 것이라는 예언은, 단순히 이 성전이 미래에 더 화려해질 것이라는 의미를 넘어, 장차 이 성전(혹은 성전이 상징하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임하실 궁극적인 영광, 즉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영원한 '평강'(샬롬)을 가리키는 심오한 신학적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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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낙심한 백성을 향한 위로와 언약의 재확인 ; 인간적인 비교와 낙심, 그리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임재의 약속
하나님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초라함을 비교하며 낙심에 빠진 당신의 백성들에게, "굳세게 일하라, 두려워 말라, 내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다"고 말씀하시며,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변함없는 당신의 임재'에 소망을 두도록 격려하시는 분이십니다.
백성들이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초라함을 비교하며 낙심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감정을 아신다고 공감하시며, 그들의 힘의 근원이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머무시는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영'임을 상기시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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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달 21일(초막절 끝 무렵),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남아 있는 백성'에게 물으십니다. "너희 가운데 첫 번째 성전의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3절) 그들의 낙심을 정확히 짚어내신 후, 하나님은 지도자들과 백성 모두에게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시며 "일을 할지어다"라고 명하십니다. 그 이유는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4절)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맺은 언약, 즉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5절)라는 약속을 다시금 확증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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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뻐야 할 초막절에 백성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솔로몬 성전)을 기억하는 노인들의 탄식이(에스라 3:12) 공동체 전체를 낙심케 했습니다. '비교의식'은 이처럼 강력한 사탄의 무기입니다. 그것은 현재의 거룩한 순종을 '보잘것없는 일'로 전락시키고, 감사의 자리를 불평의 자리로 바꾸어 놓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낙심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먼저 "어떻게 보이느냐?"고 물으시며 공감하십니다.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하십니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이 명령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들었던 바로 그 말씀입니다(여호수아 1:6-9).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굳셈'의 근거는 백성들의 능력이나 자원이 아닙니다. 오직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하나님의 임재 약속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그 약속의 역사적 뿌리를 상기시키십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5절)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의 영(루아흐)이, 지금 이 초라한 공사 현장에도 '여전히', '계속하여' 머물러 계시다는 선포입니다. 성전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들은 건물을 짓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에게 이는 더욱 놀라운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약속하셨고,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보잘것없음'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결코 가로막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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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자주 '비교의 덫'에 빠집니까? 다른 사람의 화려한 성공, 남의 집 자녀의 성취, 혹은 나 자신의 '왕년'을 떠올리며 현재 나의 삶, 나의 가정, 나의 수고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며 낙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그 낙심의 자리에 찾아와 "굳세게 네 일을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 영이 너와 함께 머물러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적용은 더 화려한 성과를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시선을 '비교 대상'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초라해 보일지라도, 주님이 맡기신 나의 '오늘'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이 곧 하나님의 집을 짓는 위대한 일임을 신뢰하는 '관점의 변화'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첫 번째 성전의 영광'(과거의 부흥기, 혹은 이웃의 대형교회)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며 무기력에 빠지곤 합니다. 다음 세대가 줄고, 재정은 어려워지며, 사회적 영향력은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건물의 크기나 교인 수로 교회의 영광을 측정하지 않으십니다. 그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 계시는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거룩한 순종의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진정한 부흥은 외적인 성장이 아니라, 우리의 초라함 속에서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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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의 약속 ;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나중 영광'의 약속
하나님은 지금의 초라한 성전이 인류 역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며, 장차 온 세상을 진동시키시고 모든 나라의 보배를 가져와, 비교할 수 없는 '나중 영광'과 궁극적인 '평강(샬롬)'으로 이 집을 채우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 너머의 거대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당신의 때에 온 세상을 움직여 지금의 초라함을 상상할 수 없는 '더 큰 영광'과 '참된 평강'으로 바꾸어 완성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신실하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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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 선포하시며 엄청난 예언을 주십니다. "조금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실 것입니다(6절). 그리고 모든 나라를 '진동'시키실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7절). 하나님은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8절)고 하시며, 그 결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9절)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9절)고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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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금과 은이 부족하여 낙심하고 있을 때(8절), 하나님은 그들의 스케일을 우주적으로 확장시키십니다. '진동'시킨다는 말은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처럼(출 19:18),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과 새 창조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페르시아 제국도, 앞으로 일어날 헬라와 로마 제국도, 이 모든 역사의 격변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혹은 '열방의 사모하는 이')가 이른다는 말씀(7절)은 이중적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는, 문자 그대로 모든 나라의 귀한 보물들이 이 성전으로 오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이사야 60:5-7). "은도 금도 다 내 것"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면 세상의 모든 재물로 이 성전을 채우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빈약한 재정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위로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신학적, 문학적 의미는 둘째, 이 '보배'를 '인격'(메시아)으로 보는 것입니다. 열방이 진정으로 사모하고 기다려온 그분,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9절)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스룹바벨의 성전(나중에 헤롯이 증축한 성전)의 '나중 영광'이 솔로몬 성전의 '이전 영광'보다 큰 이유는, 그 건물이 더 화려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그 '나중 성전'에, 하늘의 영광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요 1:14) 직접 발을 들이시고, 가르치시고, 자신을 제물로 드려 성전의 참 의미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의 절정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9절)입니다. '평강'(샬롬)은 단순한 평화가 아닌, 하나님과의 완전한 회복, 충만함,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엡 2:14-17), 우리에게 참된 '샬롬'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학개의 '진동' 예언을 인용하며, 우리가 받은 나라는 '진동하지 못할 나라'(unshakable kingdom)라고 선포합니다(히 12: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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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진동'하는 세상 한가운데 있습니다. 경제 위기, 건강 문제, 관계의 갈등, 자녀의 방황 등, 우리가 의지하던 '땅'과 '바다'가 흔들리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는 "은도 금도 내 것이라"는 주님의 주권을 신뢰해야 합니다. 나의 안정감이 내가 가진 '은과 금'에 있지 않고,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나의 '나중 영광'은 세상적인 성공에 있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삶이 이전보다 더 큰 영광으로, 궁극적인 '샬롬'으로 채워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소망'입니다.
세상은 '진동'하고 있습니다. 가치관이 흔들리고, 정의가 무너지며, 불안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교회는 이 '진동하는 세상' 속에서 '진동하지 않는 나라'를 증거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영광은 세상의 '금과 은'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참된 영광은 '열방의 사모하는 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이 주시는 참된 '샬롬'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흔들림에 두려워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조금 있으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오늘 '보잘것없는' 이 자리에서 굳세게 '하나님의 집'을 세워가는 소망의 사람들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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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온 역사를 주관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오늘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 찾아와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초라함을 비교하며
"보잘것없다" 낙심하던 저희의 연약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굳세게 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느니라."
오늘 이 위로의 약속을 굳게 붙잡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눈에 보이는 '비교 대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으나 '함께 하시는 주님'께로 향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의 근원이신 주님,
주님이 '조금 있으면' 온 세상을 진동시키시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나중 영광'으로 우리를 채우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참된 보배이시며 '열방의 사모하는 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샬롬'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비록 지금 우리의 섬김과 수고가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진동하지 않는 나라'를 소망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집을 세워가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참된 영광이요 평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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