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7:11-28 뜻밖의 손길, 은혜의 조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권력과 시스템 속에서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당신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길을 엽니다.
*
거대한 힘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도무지 흔들릴 것 같지 않은 견고한 제국의 논리, 혹은 우리 삶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버린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임을 고백할 뿐입니다. 포로기를 지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페르시아 제국은 바로 그런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은 이방 왕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제국의 심장부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납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보낸 조서는, 단순히 귀환을 허락하는 문서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전적인 후원과 지지의 약속이었습니다.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14절), "너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더 쓸 것이 있거든... 왕의 내탕고에서 가져다가 주라"(20절). 은과 금, 밀과 포도주, 기름과 소금이 왕의 창고에서 아낌없이 흘러나옵니다.
역사가의 눈은 여기서 페르시아의 고등 통치술을 읽어낼지 모릅니다. 피지배 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여 제국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정치적 계산이었겠지요. 그러나 신앙의 눈은 그 이면을 꿰뚫어 봅니다. 에스라는 이 놀라운 조서를 받아들고 왕을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엎드려 고백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27절).
이것이 바로 은혜의 신비입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관대함 뒤에서, 그 왕의 마음에 선한 뜻을 심으신 '보이지 않는 손'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는 자신이 역사의 주역이라 믿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그들조차 당신의 구원 경륜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편협한 신앙 세계를 무너뜨리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혹은 '교회 안에서'만 일하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한복판'에서, 심지어 신앙을 갖지 않은 '왕의 마음'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막막함 앞에서 길을 묻는 이웃 여러분. 혹시 우리를 짓누르는 거대한 '아닥사스다' 앞에서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직장의 논리일 수도, 냉혹한 현실의 장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장벽이 무너지기만을 기도하지만, 때로 하나님은 그 장벽을 통해서, 혹은 그 장벽을 움직여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가장 연약한 우리를 위해, 가장 뜻밖의 손길을 준비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불가능한 현실을 억지로 바꾸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그 현실 속에서 이미 일하고 계신 '여호와의 선한 손'(28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도우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오늘도 가장 뜻밖의 자리에서 우리를 향한 은혜의 조서를 쓰고 계십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에스라 7:11-28 제국의 문서에 새겨진 긍휼의 서명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무관하게, 거대한 제국의 권력을 움직여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삶의 여정은 오직 그분의 끈질긴 은총으로 지탱됨을 증언하십니다.
*
우리는 지금 경탄의 능력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고, 소유나 지위를 통해 자기 존재를 치환하려는 세상의 논리에 길들여져 영혼을 잃은 좀비 같은 이들이 거리를 헤매는 비참한 현실입니다. 헛헛한 느낌 때문에 위안거리를 찾지만 참된 위안은 늘 저만치에서 가물거리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립감과 공허감 속에서 방황합니다.
구약성경 에스라 7:11-28은 이처럼 영적으로 파리해진 공동체를 향해 놀랍도록 압도적인 은혜가 어떻게 당도했는지를 증언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초라한 성전을 겨우 완공했으나, 아직 율법과 제도를 회복하지 못해 허청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에스라라는 학자이자 제사장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닥사스다 왕의 전폭적인 조서 덕분이었습니다(7:11-26).
이 조서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왕은 에스라에게 왕의 궁정에 있던 금과 은(에스라 7:15), 그리고 바벨론 지역에서 거둔 모든 헌금을 성전 봉헌을 위해 사용하도록 허락합니다(에스라 7:16). 심지어 재정적인 지원을 아낌없이 약속하며(에스라 7:20), 제물을 드릴 때 필요한 모든 물품을 공급하도록 명령합니다(에스라 7:21-22).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심이나 능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제국의 최고 권력을 움직여 당신의 백성에게 풍요로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은총의 역설을 발견합니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망 위에 세워진 제국의 시스템은 늘 폭력과 지배를 당연하게 여기고, 타자를 배척하며, 거짓의 텍스트를 생산하는 도구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권력의 심장부에서 발원한 조서(왕의 문서)를 당신의 백성을 돕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에스라 7:21).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한다는 교훈적 압박 앞에서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쉽게 무너지고 낙심할지라도, 우리의 의지와 노력 이전에 이미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에스라는 이 모든 일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그의 위에 있으므로" 가능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에스라 7:28). 이 고백은 재건의 성공이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행하신 은혜임을 뚜렷하게 증언합니다.
왕이 에스라에게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재판관으로 삼아 율법을 가르치라”고 위임한 것은(에스라 7:25-26), 단순히 성전 봉헌을 넘어 공동체의 영적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단순하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갈망하며, 자기부인을 통해 욕망의 쇠항아리를 벗어던지는 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받는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생명과 평화의 태피스트리를 짜는 일에 동참할 때, 우리의 연약함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담는 질그릇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이나 초라한 시작은 마치 바울이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했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은총의 매개물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