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7:01-10 준비된 지도자 에스라의 등장 : 하나님의 선한 손으로 시작된 말씀 중심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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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재건 후 약 50년의 시간이 흐른 뒤,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이 통치하던 때에, 아론의 16대 손이며 사독 계열의 제사장인 에스라가 등장합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학자였습니다. 왕은 에스라에게 요청하는 모든 것을 허락했는데, 이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칠년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이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안전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에스라의 사명의 핵심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데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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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준비된 지도자의 신앙적 계보와 권위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특정 시대에 가장 적절하고 권위 있는 지도자를 오랜 신앙의 전통 속에서 준비하시고 일으키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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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에스라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며, 그의 족보를 대제사장 아론까지 거슬러 올라가 상세히 기록합니다. 에스라의 아버지는 스라야이며, 아사랴, 힐기야, 사독 등 중요한 제사장 계보를 거쳐 최종적으로 대제사장 아론에게 연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완료한 후 상당한 기간(약 50년)이 지난 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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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의 신학적 역할 : 에스라의 족보를 자세히 기록한 것은 단순히 혈통을 기록한 것을 넘어 그의 정체성과 권위를 확립하려는 신학적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 가문(사독 계열) 출신이었으며, 이는 포로 후기 공동체가 무너진 왕국 재건(다윗 왕가)보다는 성전과 율법 중심의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학사(Scribe)' : 에스라 시대에 '학사'라는 개념은 발전하여, 그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이 직분은 페르시아의 법에 능통한 관리를 의미하기도 했지만, 에스라서의 편집자는 에스라를 정치가로서의 아닥사스다의 종보다는 제사장으로서 여호와의 종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의 등장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과제(율법 회복) 앞에 가장 적절한 인물을 신앙 전통의 축적을 통해 준비하셨음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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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 우리는 '준비된 지도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근본적인 정체성은 세상의 스펙이나 지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맺고 그 신앙의 계보를 이어가는 데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물려줄 가장 중요한 유산이 믿음의 전통임을 깨닫고, 레위인처럼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지도자를 세울 때 개인의 특출함보다는 신앙의 순수성과 말씀에 대한 깊은 권위를 갖추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처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축적된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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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절 하나님의 선한 손이 이끄시는 은혜로운 여정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종에게 선한 손의 도우심을 베푸시어, 이방 왕의 마음을 움직여 필요한 모든 것을 얻게 하시고, 사명의 길을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은혜로우시고 주권적인 통제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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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 소개됩니다. 그는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았는데, 이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칠 년에 바벨론을 떠나(첫째 달 초하루)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다섯째 달 초하루). 이 모든 여정은 "그의 하나님이 그를 잘 보살펴 주셔서" (혹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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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 : 에스라가 페르시아의 고위 관리로서 왕에게서 막대한 지원과 귀환 허락을 받은 것은, 그의 개인의 특출함 때문이라기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에스라서의 편집자는 이방 왕 아닥사스다를 대신하는 에스라의 세속적인 사명을 신학화하여, 독자들이 에스라의 귀환을 하나님의 회복 계획에 있는 두 번째 행동으로 보게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성공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간섭에 달려 있습니다.
지혜로운 처신과 섭리 : 에스라가 왕에게 요청한 것은 단지 허가뿐 아니라 (느헤미야처럼) 재정적 지원과 통행의 조서였을 것입니다. 위험할 수 있는 긴 여행과 이방 땅에서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은, 그가 모세의 율법과 페르시아의 법 모두에 능통했기에,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지혜롭게 대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를 도우신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안전이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느헤미야 역시 성벽 재건을 위해 왕에게 필요한 조서와 목재를 요청했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심으로 가능했음을 고백합니다. 신약 시대에도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 사역이 인간의 노력만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에 힘입어 이루어졌음을 고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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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직장, 학교, 사회에서 "내가 잘해서" 얻은 성과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공과 안녕은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위해 길을 내시고,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결과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로 한 걸음을 내디딜 때" 하나님이 이미 준비하신 길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사람의 조언과 세속적인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간절히 요청하는 기도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맡은 사명에 충실하되, 내 힘으로만 감당하려 했던 교만을 회개하고, 매 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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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절 영적 개혁의 기초: 율법을 향한 단호한 결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율법을 깊이 연구하고 자신이 먼저 준행하며 다음 세대에게 충실히 가르치는 결단된 삶을 통해 영적 개혁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거룩한 교육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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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는 바벨론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목적을 한 절로 요약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이 구절은 그의 생애를 율법 연구에 집중하고, 그것을 실행하며 가르치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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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세 단계 : 에스라 7:10은 포로 후기 공동체의 신앙적 본질을 담은 핵심 구절입니다. 에스라가 추구한 개혁은 단순히 외적인 성전 재건을 넘어선 영적 개혁이었습니다. 이 결심의 순서는 깊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연구 (Study) : 율법을 깊이 탐구하여 지적인 이해를 갖추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준행 (Practice) : 자신이 먼저 율법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식과 행동의 분리가 없어야 함을 의미하며, 위선이 없는 거룩한 삶을 의미합니다.
가르침 (Teach) : 자신이 연구하고 준행한 것을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에스라의 이 결심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선하신 도우심)을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따라 에스라에게 그런 마음을 먹고 행동하게 하신 결과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 유사 내용 제시)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지키게 하라'는 것은 가르침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참된 신앙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 실현되는 언약 관계로의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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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에스라처럼 '말씀이 공동체를 새롭게 한다'는 확신 아래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 말씀을 타인에게 전파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는 구태의연한 적용이 아니라, 말씀으로 삶의 근육을 단련하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결단입니다.
개인의 영적 삶에서 율법을 연구(묵상)하는 시간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직장과 학교에서는 율법의 정신인 공의와 정직을 삶으로 준행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말씀에 대한 지식과 개인의 거룩함을 바탕으로 이웃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사명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처럼 공중 예배의 설교뿐만 아니라 그룹 모임이나 심방에서도 말씀을 가르치고 나누는 일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율법 교육을 통한 개혁을 실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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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힘으로는 삶과 실천을 온전히 일치시킬 수 없음을 자각하고, 둘의 조화를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누리는 삶의 방식을 익혀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_김진혁 <신학의 슬픔과 기쁨>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려 할 때 여러가지 방해와 이유로 온전히 일치시킬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부족하다 할 수도 있겠고, 믿음이 부족하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언행일치의 온전함은 결국 그 간극에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져야만 마침내 온전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백하고, 더욱 겸손히 하늘의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가 변함없이 겸손함으로 채워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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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영원한 사랑과 신실함의 하나님,
저희를 향한 회복의 계획 속에
에스라와 같은 지도자를 준비하시고 일으켜 주셨듯이,
저희 공동체에도 말씀으로 무장된 능력 있는 일꾼들을 세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의 미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선한 손의 도우심을 베푸시어,
세상의 권력과 시스템 속에서도
당신의 사명을 당당하게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주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결심했던
에스라의 단호한 결심을 저희의 삶의 목표로 삼게 하옵소서.
저희의 신앙이 지식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말로만 가르치는 위선에 빠지지 않도록
먼저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의 증거를 보이게 하옵소서.
가정과 교회, 학교와 직장, 세상 모든 영역에서
저희의 시간과 열정이 하나님을 향하는 올바른 방향을 잡게 하시고,
안일함과 무기력을 벗어버리고
오늘의 순종을 실천하는 담대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저희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 때,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샬롬)를 이루어 가는
복의 통로가 되리라 확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