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6:1-12 먼지 쌓인 두루마리, 잊히지 않은 약속

by 평화의길벗 posted Nov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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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6:1-12 먼지 쌓인 두루마리, 잊히지 않은 약속

하나님은 역사의 가장 뜻밖의 순간과 예상치 못한 인물을 통해서도 당신의 신실하신 사랑을 기어코 이루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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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종종 거대한 망각과 싸우는 기억의 투쟁입니다. 시간의 더께 속에 묻힌 진실 하나가 거대한 제국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잊힌 약속 하나가 절망에 빠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문서 보관소, 그 방대한 기록의 바다를 뒤지는 다리우스 왕의 명령(에스라 6:1)은 어쩌면 그저 행정적인 확인 절차에 불과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들려 나온 '메대도 악메다 궁'(에스라 6:2)의 먼지 쌓인 두루마리 하나는, 멈춰 섰던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다시 굴러가게 하는 거대한 바퀴였습니다.

바벨론 포로기라는 기나긴 겨울을 지나 고향에 돌아온 이들의 손은 작고 연약했습니다. 그들이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을 때, 사마리아의 총독 닷드내와 그의 관리들은 차가운 현실 논리로 그들을 가로막았습니다(에스라 5장).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라고 하였느냐?" 그들의 물음은 날카로웠고, 돌아온 이들의 희망은 무너질 듯 위태로웠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근거는 '고레스 왕의 조서'라는 아스라한 기억뿐이었습니다.

여기, 우리 신앙의 심오한 역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절망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막힌 듯한 그 순간에, 역사의 무대 뒤편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잊힌 것 같았던 고레스의 조서가 ‘발견’됩니다(에스라 6:3-5). 이것은 단순한 행정적 발견이 아니라,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증표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리우스 왕의 반응입니다. 그는 이교도의 왕입니다. 그는 유다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그 두루마리에 적힌 대로 조서를 내립니다. "너희는... 그들의 공사를 막지 말라"(에스라 6:6-7).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조서에 명을 더합니다. "왕의 재산 곧 강 건너편 세금 중에서 경비를 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어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에스라 6:8). 심지어 제사에 필요한 제물들, 즉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어"(에스라 6:9)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리며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에스라 6:10)고 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늘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만 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 편협한 시각을 깨뜨립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의 헌신이 아니라, 이방 왕의 금고에서 나온 재물로 지어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세상 권세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광양사랑의교회를 향한, 그리고 오늘을 사는 모든 연약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혹시 우리의 삶이 닷드내의 방해 앞에 멈춰선 성전 건축처럼 느껴지십니까? 신앙에 대해 회의가 들고, 나의 연약함이 버겁게 느껴지십니까? 혹은 더 적극적인 신앙을 갈망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십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을 할까'를 강조하는 교훈적 다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상관없이, 아니 바로 그 연약함 속에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그 순간에도, 페르시아의 문서고에서 당신의 약속을 찾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이방 왕 다리우스의 손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며, 당신의 집을 세우십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먼지 쌓인 두루마리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사랑, 그 잊히지 않은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가장 뜻밖의 손길을 통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하신 일을 이미 시작하셨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이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 짓는 든든한 토대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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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6:1-12 잊혀진 기록이 다시 울려 퍼질 때의 은총

절망의 멈춤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하나님의 오래된 약속이 권력의 심장부에서 다시 발견됨으로써, 우리의 재건은 오직 그분의 은혜로 지속됨을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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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성찰(省察)의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 채 파시스트적인 속도로 내달리는 시대 속에 갇혀 허청거리고 있습니다. 삶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익과 권력, 명성에 대한 동경이라는 욕망의 잔뿌리에 의지해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의 여정 역시 때로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낙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구약성경 에스라 6:1-12은 유다 백성들이 강제적인 멈춤을 당하고(4:21, 23)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하늘로부터 예기치 않은 반전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은총의 서사입니다. 앞서 백성들은 대적들의 모함과 왕의 조서로 인해 성전 건축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4:24). 그러나 유브라데 건너편 총독 닷드나이의 보고를 받은 다리오 왕은(5:6-17) 옛 기록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6:1).

여기서 우리는 진실의 힘을 목도합니다. 다리오 왕의 명령으로 고레스 왕궁 서고에서, 결국 엑바타나 요새에서 고레스의 조서가 발견됩니다(6:1-2). 이 조서는 성전 재건을 허락하고 그 규모와 비용까지 명시한, 잊혔던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기록 속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6:3-5).

권력의 눈치정치적 음모 앞에서 쉽게 휘둘렸던 유다 백성들의 연약한 믿음(4:4)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제국의 가장 강력한 권력을 움직여 당신의 뜻을 확고부동하게 만드셨습니다. 역사는 강자들의 기록이며, 왕의 조서(텍스트)는 종종 탐욕과 편견을 공적으로 위장하여 악을 시스템적으로 수행하는 도구가 되곤 합니다. 그러나 다리오 왕의 칙령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중심(中)을 붙잡고, 흩어졌던 백성들의 재건의 당위성을 법적으로 확정해주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단지 건축을 허락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총독들에게 "간섭하지 말라"고 명하고(6:7), 심지어 국고에서 비용을 대고(6:4, 8), 제사에 필요한 물품까지 공급하도록 지시합니다(6:9). 이 모든 것은 유다 백성들의 열심이나 공로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멸망당했던 당신의 백성을 향해 베푸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헤세드(인애, 변함없는 사랑)의 구체적인 현현(顯現)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연약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있음을 이 역사적 사건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벼랑 끝에서 신앙을 회의하는 모든 이들이여. 우리가 세상의 모함지연 속에서 무너진 듯 느껴질 때(4:4), 혹은 스스로의 죄성(罪性)과 어두운 욕망 때문에 깊은 물 속에 빠진 듯할 때, 이 다리오 왕의 조서를 기억합시다. 우리가 버릴 것을 버리고, 욕망의 쇠항아리를 벗어 던질 때, 하나님은 당신의 권능의 손 아래로 자기를 낮추는 우리를, 아침마다 새롭고 끝이 없는 긍휼로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튼튼하게 기초를 놓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다 골라 간 것 같아도 남은 몫이 의외로 실속 있을 수 있다는 엣 어른들의 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초라한 재건의 현장이라 할지라도, 그곳은 이미 하늘과 땅이 내통하는 지구의 중심, 곧 성스러운 땅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홀로 서는 용기진리에 대한 집중(執中)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생명과 평화의 태피스트리를 짜는 덜의 삶을 살아낼 때, 우리는 멈춤을 뚫고 흐르는 하나님의 은총을 비로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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