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11-24 잠시 멈춰 선 하나님의 일 : 거짓 모함에 따른 세상 권력의 금지 조서와 소망의 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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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프라테스 강 서쪽에 있는 페르시아 관리들(대적들)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문을 보내,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읍을 재건하는 것은 반역을 꾀하는 행위이며, 성벽이 완공되면 조공과 세금을 거부하여 왕실의 국고 손실을 초래하고 결국 왕이 강 서쪽 지역을 잃게 될 것이라고 거짓으로 고발합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왕실 기록을 조사하여 예루살렘이 예로부터 반역을 일삼던 곳임을 확인하고, 재정적 손해와 반란의 위험을 염려하여 대적들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왕은 즉시 공사를 중단하라는 조서를 내렸고, 관리들은 예루살렘으로 급히 올라와 무력을 사용하여 유다 백성의 성전 공사를 강제로 멈추게 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성전 공사는 페르시아 왕 다리오 제이년(주전 520년)까지 중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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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6절 거짓된 충성 뒤에 숨겨진 악의적인 모함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목적을 방해하기 위해 세상의 권력과 재정적 논리를 이용하는 악인의 궤계를 간파하시며, 그들의 아첨 뒤에 숨겨진 시기심과 악의를 꿰뚫어 보시는 진실하시고 공의로우신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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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프라테스 강 서쪽에 있던 관리들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문을 올립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다 사람들이 '범죄와 반역을 일삼던 악한 성읍'인 예루살렘을 재건하며 기초를 다시 다지고 성벽을 쌓고 있다고 고발했습니다. 이들은 성읍 재건이 완성되면 유다 백성들이 왕에게 바쳐야 할 세금(조공, 관세, 통행세)을 내지 않아 왕실 국고에 큰 손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대적들은 자신들이 왕의 소금(녹)을 먹는 충신으로서 왕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 미칠 것을 참을 수 없어 상소문을 올린다고 주장하며, 과거의 기록을 조사하여 이 성읍이 예로부터 반역을 일삼던 곳이었음을 확인해 보라고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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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진실과 인간의 악의 : 대적들은 성전 건축이라는 종교적 행위를 정치적 반역 행위로 교묘하게 왜곡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수법은 침소봉대(誇張)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실제로 반란의 역사를 가진 성읍이었던 파편적 사실에, 재정 손실과 영토 상실이라는 과장되고 근거 없는 거짓을 교묘히 섞어 왕의 두려움과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결국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아첨의 말과 왜곡된 충성을 이용하는 인간의 악의적인 모습, 즉 자멸을 부르는 시기심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훼방함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방해가 따르는 것이 당연하며, 만약 우리 삶에 아무런 영적 저항이 없다면,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과 관련된 논쟁에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세속적인 이익을 거절하고 거룩한 정체성을 지키려는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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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시스템에서 이익과 권력을 얻기 위해 진실을 조작하거나 아첨을 일삼는 세속적인 관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사람의 평판이나 단기적인 이익보다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의 진실성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특히 직장이나 사회에서 성공을 위해 거짓 고발이나 비열한 꼼수를 사용하라는 유혹이 올 때, 이를 단호히 거절하는 윤리적인 용기가 필요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선한 의도가 시기심에 의해 왜곡되거나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지혜로운 언어로 응답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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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3절 왕의 권력에 의한 하나님의 일의 강제적 중단
하나님은 세속 권력의 시스템을 통해 당신의 백성에게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시지만, 궁극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통제하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는 시간을 정확하고 절묘하게 계획하시는 주권적인 통치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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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닥사스다 왕은 상소문을 읽고 조사해 본 결과, 예루살렘이 예로부터 왕실의 권위에 반기를 들어왔으며 강한 왕들이 그곳을 다스리면서 유프라테스 강 서쪽 지방을 장악하고 조공을 거두기도 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왕은 이 성읍이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의 소굴이었다고 판단하고, 왕실의 손해를 우려하여 공사를 중단시키고 다시 조서를 내릴 때까지 성읍을 건축하지 못하게 명령했습니다. 이에 르훔 사령관과 관리들은 예루살렘으로 급히 올라가 권력(무력)을 사용하여 유다 백성들을 억제하고 공사를 강제로 그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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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도구와 섭리의 역설 : 아닥사스다 왕은 유다의 대적들이 만들어낸 모함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보였지만, 왕실 기록 조사는 오히려 예루살렘이 과거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받았던 역사적 배경을 재확인시켜 줍니다. 예루살렘의 재건이 왕에게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과거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결과가 현실의 발목을 잡는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줍니다. 왕은 자신의 재정 손실과 통치 안정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과 인내를 시험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권력으로 억제하여' : 대적들은 왕의 공식적인 조서(권력)를 받아들고 유다 백성에게 무력을 동원하여(억제하여)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지역적인 비난을 넘어 제국의 최고 시스템을 동원하여 합법적이고 물리적인 압박을 가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 왕조 지도자들의 마음까지도 감동시키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세상을 움직이고 계심을 믿고 담대히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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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하나님의 사역은 언제나 대적의 위협과 방해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때도 대적의 지속적인 조롱과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위협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동시에 파수꾼을 세워 주야로 방비하는 지혜와 실천을 겸비했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기도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제적인 대책을 세우는 지혜를 모두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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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권세가 잠시 하나님의 일을 멈춰 세울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 중단이 궁극적인 포기를 의미하지 않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권력에 대항할 때, 혈기와 감정으로 맞서기보다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흔들림 없이 공의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불의한 일에 대해 좌절하거나 혹은 '불편하더라도 정의와 진리를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나의 정직한 행동이 불이익이나 오해를 낳아 내 일이 강제로 멈춰 서게 될 때, 우리는 그 상황을 낙심의 심연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이유로 삼아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비난과 권력의 압박 앞에서 거짓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말씀으로 분별하는 신중함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일상의 작고 평범한 일에서도 드러나므로, 그 손길을 민감하게 바라보며 더 큰 믿음의 걸음을 내딛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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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절 중단의 기간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
하나님은 대적의 모든 방해를 잠시 허용하사 백성의 인내를 훈련시키시지만, 결국 당신의 언약과 약속을 성취하는 절묘한 '하나님의 때'를 정확하게 이끌어 오시는 신실하고 미쁘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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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 모든 대적의 방해 공작과 왕의 금지 조서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공사는 페르시아 왕 다리오 제이년에 이르기까지 중단되었습니다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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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적 혼란 속의 신학적 메시지 : 에스라 4장 6-23절에 기록된 사건들은 아닥사스다 왕 시대(후대)에 일어난 성벽 건축 방해였는데, 이것이 성전 건축 이야기(고레스~다리오 시대) 중간에 삽입되었습니다. 4장 24절은 다리오 왕 제이년을 언급함으로써, 성전 공사가 방해를 받아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지만, 다리오 왕 때 다시 재개될 것임을 암시하며 이야기의 연속성을 확보합니다. 이처럼 시간적 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적들의 방해 공작 전체를 이 지점에 배치한 것은, 하나님의 일이 끊임없이 훼방을 받았음을 강조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은 세상의 어떤 권력이나 방해로도 완전히 꺾이지 않는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지체될 수 있을 뿐,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성전 재건을 미루고 자신의 생계에 집중했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미룬 결과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음'을 지적하시며 우선순위를 바로잡으라고 촉구하셨습니다. 축복은 미래의 보상이 아니라 오늘의 결단에 따라 시작됩니다. 멈춰 선 그 자리, 바로 그곳이 기도를 시작해야 할 자리이며, 하나님의 때는 정확하고 절묘함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비록 현재의 성전(혹은 우리 공동체)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열방을 이끄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거룩한 공동체로 서는 첫걸음으로 삼고, 성전 자체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갈망을 더욱 중요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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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이 요구하는 조급함에 빠져서 세상처럼 되어야 성공할 것 같다는 유혹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열정은 결국 무기력으로 끝나며 스스로 지치게 만드는 공회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환경과 상황을 탓하며 순종을 미루는 일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언젠가'의 각오가 아니라 '오늘'의 순종을 실천하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가정이나 공동체 안에서 선한 일이 방해를 받아 멈춤의 시간을 겪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인내를 훈련하시고 우선순위를 점검하게 하시는 시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룩함은 외적인 형식보다 내적인 마음의 방향에서 비롯되기에, 오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향합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권세와 재물은 결국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면 그 모든 것이 결국 우리의 유익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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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영원히 살아계셔서 역사의 모든 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에스라 4장의 기록을 통해 저희의 삶과 사역이
거짓 고발과 세상 권력의 억압으로 인해 잠시 멈춰 설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저희의 선한 일이 왜곡되거나 방해받을 때,
저희 손을 약하게 만드는 낙심의 영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대적의 궤계 뒤에서 조차 당신의 큰 그림을 이루어 가시는
주권적인 통치자이심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주님, 세상의 권력과 아첨의 유혹 앞에서
거룩한 정체성을 지키는 단호한 용기를 주십시오.
저희의 마음을 살펴,
세상의 거짓과 타협하려는 죄의 요소를 철저히 분리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스스로 판단하거나 인간적인 술수를 쓰기보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겸손히 인내하며 기다리게 하옵소서.
멈춰 선 듯 보이는 이 자리,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기도를 시작해야 할 자리임을 믿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하시고
결국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오늘의 순종을 실천하는 담대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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