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3:01-13 예배의 기초를 다시 놓음 : 순종으로 시작된 회복과 찬양, 그리고 눈물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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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유다 각자의 성읍에 거주하다가, 칠월이 되자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주변 민족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성전 기초보다 먼저 제단을 그 터에 쌓고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며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귀환 후 2년 2월에 이르러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주도 아래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했고, 20세 이상 레위인들을 감독으로 세웠습니다. 성전 기초를 놓는 날,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다윗의 규례대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기쁨으로 환호하며 찬양했지만, 옛 솔로몬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통곡하여, 환호와 통곡 소리가 섞여 멀리서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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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절 두려움 속에서 회복하는 예배의 우선순위
하나님은 환경의 두려움보다 언약의 순종을 통해 당신과의 관계를 재확립하기를 원하시며, 거룩한 예배를 통해 무너진 삶의 기초를 다시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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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각 성읍에 거하다가 칠월이 되자 예루살렘에 한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제사장 예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를 드리기 위해 제단을 만들고 그 터에 세웠습니다. 특별히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성전의 기초는 아직 놓지 않았지만, 칠월 초하루부터 번제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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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대신 제단 :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주변 민족들, 곧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려움은 현실적인 위협이었지만, 백성들은 외적인 방어 수단인 성벽이나 성채를 쌓는 대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보호를 구하는 상징적인 행위, 곧 제단을 쌓는 일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이는 공동체의 모든 활동에 앞서 하나님 제일주의 정신을 가지고 예배를 회복하겠다는 확고한 신앙적 우선순위를 보여줍니다.
'초막절' : 7월은 유대인들에게 나팔절, 속죄일, 그리고 가장 큰 절기인 초막절이 있는 달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광야 40년 동안 지냈던 고난을 기억하고, 가나안에 정착한 후 풍성한 추수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귀환 백성들이 이 절기를 처음으로 지킨 것은, 지나간 70년 포로 생활의 고통을 기억하며 다시는 범죄함으로 그러한 고통을 자초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는 깊은 회개와 언약 갱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귀환 공동체는 성전 건축(형식)보다 예배(내용)의 회복을 우선시했습니다. 이는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 가르침과 상통합니다(마 6:33).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둘 때, 무너진 우리의 삶과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는 흔들림 없는 기초가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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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위기와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적인 방어막(돈, 스펙, 권력)을 쌓도록 강요하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된 우리는 세속적인 안정을 구하려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는 기도와 말씀, 예배라는 영적인 제단을 먼저 쌓아야 합니다. 안정을 얻으려는 계산적인 행동을 멈추고 순전한 예배를 삶의 기초로 선택하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백성으로서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개인의 삶에서 불안함이나 외적인 위협이 다가올 때, 성채를 쌓는 대신 제단을 쌓았던 귀환자들의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말씀과 기도를 중심에 둔 가정 예배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며, 이것이 세속의 물결 속에서 가정을 지키는 가장 견고한 성벽이 됩니다. 교회 공동체는 건물의 외형이나 프로그램을 확장하기 전에, 예배의 순수성과 말씀에 대한 충실한 순종을 통해 관계 회복을 이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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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절 조직적인 준비와 협력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목적과 건축을 이루기 위해 이방 왕의 칙령과 주변 민족의 도움까지도 주권적으로 사용하시며,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직분과 역할을 따라 합심하여 헌신하도록 조직적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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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은 성전 재건을 위해 건축 재료와 인력 확보에 나섰습니다. 석수와 목수에게 삯을 지불하고,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 마실 것, 기름을 주었습니다. 이는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을 따른 것으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2년 2월에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비롯한 모든 형제들과 귀환자들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20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함으로써, 레위 자손들이 일제히 일어나 일꾼들을 조직적으로 감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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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과 조직의 신성함 : 성전 건축은 국가적 재정 지원을 받았으며, 주변 민족과의 능동적인 경제 활동 (석수, 목수에게 삯을 주고 시돈/두로 사람에게 물품을 제공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모든 인류의 활동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통제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감독'과 '합심' : 성전 건축은 단순히 지도자들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 레위인들, 일반 백성 모두가 마음을 모아 합심, 합동, 협력한 결과였습니다. 특히 20세 이상의 레위인들이 성전 공사를 감독했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다한 헌신을 의미하며, 이들이 성전 건축의 중요한 일꾼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 시대 성벽 재건 때도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감 있게 참여했는데, 이는 공동체가 모든 구성원이 충실하게 직책을 담당할 때 비로소 건강하고 견고해진다는 원리를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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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백성의 합당한 자세 :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직분'이나 '특정 계층'의 일로 국한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은사와 능력, 그리고 맡겨진 재정적 책임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직책의 구분은 계급의 분리가 아니라 역할 분담과 조직적인 협력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나의 전문성(석수/목수)이 세상의 성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한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정직하게 일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구성원 각자의 역할이 존중되고 협력적인 관계를 통해 영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헌신은 '예물'만 바치는 것을 넘어, 레위인들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감독하고 독려하는 수고를 포함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시간과 물질, 재능을 어떤 방식으로 이 거룩한 건축에 자발적으로 사용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실제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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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3절 눈물의 헌신과 영원한 인자하심
하나님은 비록 초라한 시작일지라도 예배와 찬양을 기뻐 받으시며,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인생의 여정 속에서 당신의 인자하심(헤세드)이 영원히 지속됨을 약속하시는 신실한 구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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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지대가 놓이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레위인들은 제금을 들고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들은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라고 찬양하며 화답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찬송했습니다. 그러나 첫 성전을 보았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나이 많은 족장들은 이 기초를 보고 대성통곡했습니다. 그 결과, 백성이 크게 외치는 즐거운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가 섞여 멀리서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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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드의 찬양과 감정의 혼합 : 찬송가의 핵심 구절인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에서 '인자하심'은 히브리어로 헤세드(ḥeseḏ)입니다. 이는 언약을 깨뜨리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과 긍휼을 의미합니다. 성전 파괴와 포로 생활은 백성이 언약을 어긴 결과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인자를 거두지 않으시고 다시 기회를 주셨음을 이 찬양을 통해 고백한 것입니다. 이 찬송은 솔로몬 성전 봉헌 때도 불렸던 것인데, 역사의 비극 속에서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붙드는 이들의 믿음의 선언입니다.
통곡의 의미 : 노인들의 대성통곡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옛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과 현재 초라하게 시작된 성전 기초의 보잘것없음을 비교한 데서 오는 깊은 실망감입니다. 둘째, 과거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성전이 파괴되었던 역사적 반성과 회한에서 오는 눈물입니다. 이처럼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의 소리가 섞여 분간하기 어려운 모습은 성도의 삶의 실상이며, 고난과 절망의 소리(통곡) 속에서도 구원과 회복을 찬양하는 소리(즐거움)가 공존하는 영적인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일은 종종 시작은 미약하고 초라할지라도, 하나님께는 그 초라함이 거룩한 역사를 일으킬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당시에는 비탄의 통곡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영원한 구원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우리는 초라한 현실(학 2:3)에 흔들릴 때 비교 대신 감사를, 낙심 대신 믿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최종 해석은 인간의 절망에 있지 않고 영원한 인자하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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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외형적인 규모와 성공을 보고 역사의 가치를 판단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초라한 시작 속에서도 그 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이나 헌신이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노인들의 통곡'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소망의 관점을 붙들어야 합니다.
개인은 과거의 실패나 현재의 연약함(노인들의 통곡)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도 고난과 슬픔이 있을 때(통곡의 소리), 그 가운데서도 '주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찬양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공동체(교회)는 성도들의 눈물과 기쁨을 모두 포용하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성결함과 공의를 실현하며, 다윗의 규례대로 드리는 합당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기꺼이 헌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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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신실함의 하나님,
에스라 3장의 귀환 공동체가 두려움 속에서도 성채 대신 제단을 쌓고,
성전 건축이라는 대업에 앞서 순전한 예배를 회복했던
그 믿음의 걸음을 저희가 본받게 하옵소서.
저희의 삶이 혼란스럽고 불안할지라도,
예배의 회복이야말로 흔들림 없는 기초가 됨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합심하고 협력할 수 있는 헌신적인 마음을 주시어,
저희 각자가 가진 시간과 재능, 물질이 레위인과 족장들처럼
당신의 거룩한 건축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되게 하옵소서.
저희의 이웃과 가정, 교회와 직장에서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한 자원하는 마음으로 땀 흘리게 하옵소서.
성전 기초가 놓였을 때 즐거움과 통곡이 뒤섞였던 소리처럼,
저희 인생에 슬픔과 고난의 눈물이 멈추지 않는 날이 올지라도,
노인들의 실망에 머물지 않고
주의 인자하심(헤세드)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이 진리를 붙들고
소망의 찬양을 부르게 하옵소서.
초라한 시작도 거룩한 역사를 일으키는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오늘 하루도 겸손히 말씀을 따르고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영원한 성전이 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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