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4:1-13 폐허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우리의 연약함과 부서진 삶의 터전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시작되며, 그분의 은혜는 우리의 가장 깊은 폐허를 성전으로 다시 세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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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때로 정교하게 무너져 내리는 폐허와 같습니다. 시간의 풍파 속에서 마음의 벽은 금이 가고, 일상의 먼지는 소복이 쌓여 우리가 본래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잊게 만듭니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 한구석에 방치된 성전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곳은 한때 거룩한 꿈과 순전한 열망이 깃들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세속의 욕망과 무관심이라는 잡초가 무성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그 폐허 속에서도 그는 위대했다"고 노래했지만, 스스로 폐허가 되어버린 이의 절망은 쉽게 위로받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유다의 왕 요시야를 만납니다.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소년. 그가 물려받은 나라는 영적으로 황폐해진 땅이었습니다. 선조들의 우상숭배로 성전은 더럽혀졌고, 신앙의 기강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거대한 절망의 한복판에서,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가 왕이 된 지 8년, 겨우 열여섯이 되던 해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기 시작했다"(3절)고 증언합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폐허가 된 나라를 보며 좌절하거나, 거대한 악의 구조에 순응하는 대신, 근원을 향한 '그리움'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하나님, 그 순전한 신앙의 원형을 갈망한 것입니다.
이 '찾음'은 놀라운 힘을 가집니다. 그의 연약한 갈망은 곧 정화의 행동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스물여섯이 되던 해, 그는 무너진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합니다(8절).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수리'가 요시야 한 사람의 영웅적 결단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제사장들이 돈을 모았고, 감독들이 일꾼들을 독려했으며, 목수와 건축하는 자, 석수들이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망치질과 정질을 합니다(11-12절). 심지어 "음악에 익숙한 레위 사람들"은 그 노동의 현장을 감독합니다(12절).
이것이 은혜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한 '찾음'과 '갈망'을 귀하게 보시고, 그 작은 불씨를 통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성전 수리는 '우리가 이만큼 해냈으니 복을 주십시오'라는 교훈적 강요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우리는 이렇게 부서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을 갈망합니다'라는 폐허 속의 고백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 길 위의 벗들이여. 어쩌면 우리의 마음도 요시야 시대의 성전처럼 먼지 쌓이고 금이 가 있을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의 열심이 식어버린 자신을 보며 자책하고 있을지도, 혹은 신앙이란 것이 과연 이 공허한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연약한 손길을 기다리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당신의 거처를 삼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일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오늘 내 마음의 성전에 쌓인 먼지를 조금 닦아내고, 깨진 틈새를 메우려는 작은 '갈망'을 회복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 연약한 손을 내밀 때, 하나님은 이미 우리 안에서 가장 위대한 복원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은혜가 우리의 폐허를 가장 아름다운 성전으로 빚어가실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역대하 34:1-13 묵은 땅을 갈아엎을 때: 요시야 개혁의 결단과 시작
주님의 은총과 통찰이 가득한 하루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구약성경 역대하 34장 1-13절은 젊은 왕 요시야가 유다 사회를 정화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단행한 개혁의 서막을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참된 지도력의 본질과, 타락한 사회가 회복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 개혁의 시작, 어린 왕 요시야의 결단
역대하 34장은 요시야 왕이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31년 동안 예루살렘을 다스렸음을 밝히며 시작합니다(1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에 행하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는 기록입니다(2절). 이는 이전의 많은 왕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자기 멋대로 행하여 백성을 혼란 속에 밀어 넣었던 역사와 대비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요시야는 통치 제8년(16세)에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제12년(20세)에는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대대적인 우상 숭배의 흔적을 제거하는 정화 작업을 단행했습니다(3절). 이 개혁은 단순히 행정적인 조치가 아니라, 잘못된 신뢰와 교만으로 얼룩진 사회의 근본을 뒤엎는 행위였습니다.
# 우상 숭배와 탐욕의 제거
요시야 시대의 개혁이 시급했던 이유는 유다 사회가 하나님을 등지고 풍요와 안락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우상들, 즉 바알을 섬기는 죄악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예언자의 진단처럼, 이스라엘의 문제는 병거와 많은 수의 군인을 믿고 마음을 놓은 데 있었으며, 이는 자기 힘에 대한 과신과 오만으로 귀결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저버린 유다의 교만은 결국 멸망을 자초할 뿐입니다.
요시야는 이러한 잘못된 신뢰의 상징들을 제거합니다. 그는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목상, 아로새긴 우상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파괴하고, 그것들을 가루로 만들어 우상에게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 위에 뿌렸습니다 (4-5절). 이러한 우상들은 대개 불안의 숙명을 타고난 인간이 가시적인 존재물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려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며, 결국 그 속에는 생기가 없는 거짓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에서 우상 숭배는 단순히 종교적인 타락을 넘어 사회적 약자들의 살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것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기에, 요시야의 정화 작업은 하나님의 질서, 즉 정의와 공의를 회복하려는 정치적 결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심지어 납달리 지경까지 다니며 이스라엘 온 땅에서 이 일을 행했습니다(6-7절).
# 성전 보수와 새로운 역사의 창조
요시야의 개혁은 파괴에서 끝나지 않고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땅을 정화한 후, 그는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냅니다(8절). 이는 호세아가 외쳤던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는 명령을 실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개혁과 회복은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필요로 하며, 이 작업을 통해 공동체는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세워나갔습니다.
요시야는 성전 보수 작업을 위해 돈을 거두고(9절), 숙련된 기술자들을 고용하며(10-13절), 공정한 감독자를 세웠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전 수리하는 일에 성실하게 임했습니다(12절). 성실함, 즉 히브리어 '에무나'는 우리가 어떠한 불이익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성실하고 진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시야의 이야기는 타락과 심판의 역사가 반복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세상의 건설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에 놓고 우리 생각과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는 치열한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우리 또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여 황폐한 땅에 생명과 평화의 씨를 심는 일에 헌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의 본분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섬기는 것이듯, 우리의 본분은 맡겨진 역할에 성심껏 임하여 이웃에게 축복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