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2:01-23 환상적인 호흡 : 충성된 왕의 신뢰와 하늘 군대의 압도적인 구원
*
히스기야 왕이 충성되게 종교 개혁(대하 29-31장)을 이행한 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여 견고한 성읍들을 점령하려 합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과 지혜롭게 의논하여 성읍을 방비하고 물 근원을 차단하는 등 철저히 물리적 대비를 하는 동시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백성들을 담대하게 격려합니다. 이에 산헤립은 사신들을 보내 하나님을 다른 이방 신들과 동일시하며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을 조롱하고 기만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와 선지자 이사야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대를 전멸시키셨고, 산헤립은 수치를 당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자신의 아들들에게 살해당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히스기야는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는 전능한 구원자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
# 1-8절 위기 속의 지혜로운 대비와 담대한 격려
하나님은 당신께 충성된 백성이 믿음과 지혜로 위기에 철저히 대비할 때, 그 노력을 승리의 통로로 사용하시며 함께하시는 신실한 보호자이십니다.
.
히스기야가 종교 개혁 등 모든 '충성된 일'을 행한 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고자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침공 소식을 듣고 방백들과 용사들과 상의했습니다. 그들은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아, 앗수르 군대가 물을 얻지 못하게 했으며, 퇴락한 성을 중수하고 망대까지 높이 쌓고 외성을 추가로 쌓았으며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병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군대 장관들을 세우고 백성들을 모아 힘 있는 말로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는 앗수르 왕의 교만한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니 담대하라고 선포했습니다.
.
역대기 기자는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 (대하 29-31장) 직후에 이 위기가 닥쳤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충성된 사람의 삶이 위기가 면제된 삶이 아니라, 위기를 이겨내는 삶임을 보여줍니다. 역대기 사가는 열왕기하에서 언급된 유다 성읍들의 정복이나 히스기야가 산헤립에게 조공을 바쳤던 내용(왕하 18:14-16)을 의도적으로 생략하는데, 이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찾은 자에게 주시는 축복과 승리를 이상적인 왕 히스기야를 통해 부각시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대비의 의미 : 히스기야의 조치들은 단순히 인간적인 전략을 넘어 믿음에 근거한 순종의 외적 형태로 해석됩니다. 그는 기도만 하거나 기적만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물 근원 차단 : 기혼 샘에서 실로암 못까지 지하 수로를 건설한 것 (히스기야의 터널)은 전쟁 시 적의 보급로를 끊기 위한 지혜로운 조치였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건축 사업은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의 표식으로도 평가됩니다.
성벽 중수와 무기 제작 : 이는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는 신앙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신앙과 위기 대비를 위한 지혜는 별개가 아니며, 성실한 대비는 불신앙이 아니라 할 도리를 다하는 책임감 있는 모습입니다.
격려의 말씀 : 히스기야는 군사력을 의지하지 말라면서도, 백성에게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사 우리를 돕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싸움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확신하는 성전(聖戰) 연설의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0:16). 이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지혜와 처세를 활용하되, 그 지혜가 하나님의 진리를 훼손하지 않도록 거룩함을 잃지 않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히스기야의 모습은 영적 결단(종교개혁)과 현실적 준비(물리적 대비)가 결합될 때, 하나님이 그 노력을 축복하신다는 교훈을 강조합니다.
.
우리의 삶에 예기치 않은 위협(재정적 어려움, 건강 문제)이 닥쳤을 때, 먼저 하나님께 낯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대비와 지혜로운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개인은 게으름을 버리고 주어진 재능과 자원을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어려움 앞에서 가장이 불안을 조장하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담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도록 격려하는 겸손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재정, 행정, 다음 세대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질서와 견고함을 세우는 일(성벽 중수)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고한 기준(진리)을 통해 세상의 복잡한 현상들을 분석하고, 세상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는 공의와 정의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는 강대국의 힘(앗수르)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이 평안을 바탕으로 위기 앞에서 동요하지 않고 담대히 대처하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
# 9-19절 대적의 교만한 비방과 믿음의 시련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대적의 모든 비방과 조롱을 들으시며, 교만하여 당신의 주권을 보지 못하는 자들의 행위를 공의로 심판하시는 엄위하신 왕이십니다.
.
산헤립은 사신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유다 백성들에게 다시 위협적인 말을 전했습니다. 그는 유다 백성들이 포위된 예루살렘에서 무엇을 의뢰하느냐고 조롱하며, 히스기야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져내시리라"고 꾀는 것이 기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한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고 명령하며 산당과 제단들을 제거한 일을 언급하며, 이방 모든 백성의 신들이 앗수르의 손에서 그들의 땅을 건져내지 못했으니 유다의 하나님도 건져내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산헤립의 신하들은 이 말을 유다 방언으로 큰 소리로 외쳐, 백성들이 히스기야와 그들의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 했고, 그들의 하나님을 다른 이방 민족의 신들처럼 비방했습니다.
.
산헤립의 교만과 신학적 도전 : 산헤립의 연설은 단순한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 신학적인 공갈이었습니다. 그는 앗수르가 승리한 역사를 근거로 여호와를 여러 민족신 중 하나로 격하시켰습니다.
산당 제거에 대한 왜곡 :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산당들을 제거하고 예루살렘 제단만 남긴 것(왕하 18:4)을 오히려 백성들의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행위로 비난했습니다. 이는 앗수르 왕에게 여호와 신앙의 중앙 집중화가 이해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역대기 저자의 관점에서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은 충성된 행위였으나, 대적의 입장에서는 그 행위가 공격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영적 전쟁의 본질 : 산헤립의 조롱은 히스기야가 1) 여호와를 신뢰하고, 2) 예배의 중앙 집중화를 추구하며, 3)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 자임을 역설적으로 증거해 줍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가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하고 대항하는 것은 교만의 극치이며, 그들은 눈이 멀어 하나님의 크심을 보지 못합니다. 이들은 죽은 신을 믿으면서 산 신을 비방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싸우는 것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합니다 (엡 6:12). 산헤립의 심리전은 곧 악한 영들의 미혹과 같습니다. 믿음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눈앞이 캄캄한 순간에도 여전히 하나님이 선하시고 언약에 신실하심을 붙드는 자세를 말합니다.
.
우리의 삶에서 세상의 힘(물질, 권력, 건강)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커 보일 때, 우리는 산헤립의 조롱과 같은 냉소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세상의 공갈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거나 타협하지 않도록 영적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가정의 신앙 교육은 세상의 가치관(경쟁, 성공 만능주의)이 하나님을 비하하거나 대체하려는 유혹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 중심의 확고한 신앙 의지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거대한 권력(정치적 체제, 자본주의 논리)이 하나님을 도구화하거나 비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적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논리는 인간의 성취와 성공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왕권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된 우리는 세상의 비판과 조롱에 맞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신실한 삶으로 복음의 탁월함을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실함은 주변 이웃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는 영향력을 끼치고 사회에 평안(샬롬)을 가져오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
# 20-23절 기도와 하나님의 압도적인 구원
하나님은 당신께 낯을 향하여 부르짖는 충성된 백성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며, 당신의 능력으로 친히 싸우사 구원과 존귀를 베푸시는 전능하신 구원자이십니다.
.
히스기야 왕과 선지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고,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셨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수치를 당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고, 그의 신의 전에서 그의 몸에서 난 자들(아들들)에게 칼로 살해당했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사면으로 보호하셨습니다. 그 결과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예물과 보물을 히스기야에게 가져왔으며,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
기도와 응답의 능력 : 역대기 기자는 이 위기 속에서 히스기야가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는 겸손한 기도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지도자의 신뢰와 백성의 기도가 합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끌었음을 보여줍니다. 히스기야는 국가적인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으며, 그의 믿음이 시험 가운데서 빛을 발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사야의 중재적 역할보다는 왕과 선지자의 직접적인 간구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 하나님은 유다 군대의 힘이나 무기(1-8절에서 준비한)가 아닌, 한 천사라는 하늘의 군대를 동원하여 앗수르를 멸하셨습니다. 이는 승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신학적 강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신다는 교훈을 열방에 드러내시며, 고난을 통해 믿음은 더욱 깊어지게 하십니다.
산헤립의 최후 : 산헤립이 자신의 신의 전에서 살해당한 것은 그가 여호와를 이방신들과 동일시하며 모독했던 죄에 대한 공의로운 보응입니다. 세상의 권세자(산헤립)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 아래 있음을 역사가 증명한 것입니다.
결과적인 영광 :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된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때문입니다. 이는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형통(샬라흐)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마 12:42). 히스기야가 경험한 구원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훨씬 더 크고 완전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함을 확신하며, 이 은혜에 합당하게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
우리의 삶에 해결되지 않는 고난이나 절망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해결책을 찾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낯을 향하여 부르짖는 겸손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무력함을 솔직히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근거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싸움에 친히 개입하십니다. 가정에서도 위기가 닥치면 인간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풀려 하기보다,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고난을 축복의 소재로 바꾸는 영적 힘을 길러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모든 권세자들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서 희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의 비관적인 전망이나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일에 헌신하는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역은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이 땅의 모든 지도자들이 하나님과의 동행을 구하는 겸손한 리더십을 보여주도록 중보해야 합니다. 진정한 승리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한마음의 신뢰가 결합될 때 이루어집니다.
*
# 거둠의 기도
사랑과 전능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역대하 32장의 말씀을 통해,
저희가 충성된 왕 히스기야와 더불어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역사를 주관하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당신의 신실하심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눈에 보이는 세상의 힘과 조롱(산헤립)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인간적인 지혜만을 의지하려 했던 교만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간구하오니, 저희에게 지혜로운 대비와 철저한 준비를 다하는
순종의 성실함을 허락하시고,
동시에 모든 승리가 오직 당신의 능력과 은혜에 달려 있음을 믿고
전심으로 기도하는 겸손함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저희가
가정과 교회, 세상 속에서 거룩한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처신하게 하소서.
세상의 유혹과 악한 길을 단호히 거절하고,
말씀과 공의를 실현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저희의 삶의 모든 싸움이 당신께 속하였음을 믿고,
평안과 소망 가운데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이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