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02:01-17 종말을 사는 교회를 향한 권면 1

by 평화의길벗 posted Sep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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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02:01-17 종말을 사는 교회를 향한 권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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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2장 1-17절은 ‘주의 날’(재림)에 대한 오해로 혼란에 빠진 데살로니가 교회를 바로잡기 위한 바울 사도의 목회적 권면입니다. 바울은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하며, 재림 전에 반드시 ‘배교하는 일’과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임을 명확한 징조로 제시합니다. 이 불법의 사람은 사탄의 능력으로 거짓 기적을 행하며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을 미혹할 것이나, 결국 주 예수께서 그의 입의 기운으로 멸하실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전통)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위로와 소망 안에서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히 서야 함을 간절한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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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후 2:3b-12의 ‘배교’와 ‘불법의 사람’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틀

1) 교회를(성도들을) 핍박하는 로마 황제와 그 제국이라는 틀로 바라본다. - 불법의 사람을 로마 황제로 보는 경우 : 환난 로마제국의 대대적 핍박으로 볼 수 있다.

2) 율법(가르침)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사람과 세력 - 첫 번째 경우는 교회를 핍박하는 로마황제(처음에는 유대교가 핍박하지만 로마로 넘어간다) - 가르침은 로마보다 유대교가 율법에 대해서 교회의 가르침을 대대적으로 반대하고 있기에

3) 로마 제국의 적절한 질서와 통치를 절대적으로 무너뜨리는 자와 세력 - 당시 기본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로마제국을 통해서 세상이 안정되어 있는데 이 질서와 통치를 무너뜨리는 세력이다. 2:7에 있는 ‘막는 자’를 로마 제국으로 보는 것이다. 이 제국이 기본 질서를 유지해 주는데 이것을 막는 세력.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이로 말미암아 망하게 되는 것을 초래한다.

4) 교회를(그 체제와 질서를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사람과 세력

5) 교회의 가르침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사람과 세력

6) 일반 체제와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사람과 세력 : 3)번째를 확대한 것이다. 교회 안 뿐 아니라 온 세상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들

7) 교회의 가르침과 질서, 일반 체제와 질서 모두를 무너뜨리는 사람과 세력

- 이런 틀을 따라 본문을 해석할 때 지시 대상이 다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이 일곱가지 경우를 혼용해서 구절마다 해석하는 것을 난잡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 본 묵상에서는 ‘주의 날’을 예루살렘 멸망으로 보고, 위의 배교와 불법의 사람은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사람과 세력으로 적용해 보려한다. 특히나 오늘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을 사는 교회의 모습으로 적용해 보려고 한다. 본 서신이 예루살렘 멸망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면 이제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까운 상황에서 바울사도가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의 가르침(마24장, 막13장, 눅21장)을 따라 순종해 갈 것을 권면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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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종말을 사는 교회는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주의 날은 심판과 구원의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이 이러한 종말의 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림에 대한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기대한대로 믿으려 하고 세상이 흉흉해 질수록 여러가지 요소에 미혹될 가능성이 커지니 바울사도는 이들에게 분명하게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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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예루살렘 멸망에 대해서 주의 재림과 혼돈하여 임박한 재림에 대해서 이미 재림했다거나 아니면 임박했다고 선동하거나 미혹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성령을 통해 예언받았다고 주장하거나 여러가지 말이 와전되어 소문이 증폭되고 오해되거나, 심지어 바울이 이전에 쓴 편지를 잘못 해석해서 주의 날이 이미 이르렀다고 동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영, 말, 편지로 누가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도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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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과 성경을 잘 모르면 신비적 현상이나 말쟁이나 우리가 모르는 것을 잘 아는 이들에게 수비게 미혹되거나 동요됩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공부하고 신학적으로 탄탄하게 세워졌다고 해도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덤비는 이들 앞에서는 늘 동요와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니 분명한 확신도 가져야 하지만 한편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에 대해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섰다 하나 넘어질까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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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유튜브, 소셜미디어, 각종 단체 메시지를 통해 수많은 종말론적 예측과 음모론, 확인되지 않은 영적 계시들이 유포됩니다. 이러한 정보들은 성도들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신앙의 본질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놓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다음의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_말씀 중심의 분별력 : 모든 가르침과 주장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 기준에 비추어 분별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개인의 경건한 말씀 묵상과 더불어, 건강한 지역 교회의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신학적 체계를 세워가야 합니다.

_겸손한 탐구 자세 : 자신의 해석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회사 2000년 동안 수많은 성도와 신학자들이 씨름해 온 종말론과 같은 난해한 주제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배워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_ 일상의 성실함 : 종말에 대한 바른 인식은 우리를 현실 도피적이거나 광신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이라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17절)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종말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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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에도, 성경을 아는 것에도 늘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계시해 주신 것 외에 우리가 알 수 없고, 우리가 성경을 많이 보고 공부하고 안다고 해도 일평생 하나님앞에서 성령의 조명을 통해 겸손하게 주의 말씀을 상고해야 합니다. 성경은 온전하나 내가 가진 지식이 완전하다 할 순 없습니다. 늘 부족함, 연약함을 고백하고 겸손하게 주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성경을 꿰었다거나 통달했다거나 정리해다고 하더나고 분별력 있는 지혜를 갖고 봐야 합니다. 특히나 확신과 신념으로 뭉쳐 자신의 해석만이 유일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경계해야 할 사람입니다. 이것을 분별하고 바른 길로 행하며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고 배우며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허탄하고 부질없는 온갖 감언이설로 성경을 오역 오용 오해하게 하는 모든 가르침들을 분별하고 바른 믿음의 길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겸손히 주의 말씀앞에 섭니다. 약속하신 주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며 순종할 수 있게 해 주심을 믿고 흔들리지 말고 두려워말며 담대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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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절 종말을 사는 교회는 불법의 사람들에게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모든 불법과 교만의 세력을 그의 정하신 때에 심판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최종적인 승리를 이루시는 공의의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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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두 가지 명확한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배교하는 일(apostasy)'이고, 둘째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the man of lawlessness, the son of destruction)'의 출현입니다. 이 '불법의 사람'은 모든 신적인 존재를 대적하고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극도의 교만한 존재입니다. 바울은 이 불법의 세력이 이미 활동하고 있으나, 현재는 '막는 자(the restrainer)'에 의해 저지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막는 자가 옮겨지면 불법한 자가 나타날 것이며, 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의 입의 기운으로 그를 멸하시고 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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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수선하고 여러모로 어려울 때에도 별일이 없다 하는  때에도 늘 이렇게 불법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만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분별력이 없는 성도들을 미혹하여 자신들과 같이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멸망의 길인 것을 가리면서 철저하게 통제하고 주도하면서 따르는 무리들을 생각하거나 눈을 뜨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악한 세력들이 강해질수록 그들의 멸망을 더욱 가까워집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발악하면서 어떻게든 믿는 사람들을 미혹하고 넘어지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밤이 깊어지면 결국 아침이 가까움을 알고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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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불법의 사람'의 그림자를 봅니다.

_사회/문화적 차원 :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부하고 인간의 욕망과 자기결정권을 절대시하는 사상들이 사회의 법과 제도를 바꾸려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분별하고, 사랑과 지혜로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선포해야 합니다.

_교회 내적 차원 : 교회 안에서도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인간적인 성공과 번영을 복음의 핵심인 것처럼 가르치거나,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자신을 신격화하여 성도들을 착취하는 이단적 행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화려한 외양이나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위에 굳게 서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_개인적 차원: 우리 내면에도 스스로를 삶의 주인으로 삼으려는 '작은 불법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매일 말씀과 기도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영적 훈련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교만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악의 세력의 득세를 보며 낙심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 그리스도의 최종 승리를 확신하며 인내와 소망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악인의 길은 필경 망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온갖 감언이설과 논리와 실력으로 미혹하고 위협해도 결코 흔들리거나 넘어지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별력과 지혜가 부족하여 넘어지거나 이단에 빠지는 이들이 허다합니다. 불법의 사람, 멸망의 사람, 대적하는 자, 자칭 하나님 모두 광명의 천사로 바뀌어 분별하기가 여간 어렵습니다. 이러한 자들 모두에게 미혹당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깨어 있는 것과 더불어 주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고 배우며 체계를 잡아가고, 그것이 다시 일상에 어떻게 녹아 내일지 늘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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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4절 종말을 사는 교회는 끝까지 진리를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백성을 진리로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거짓을 사랑하는 자는 공의로 심판하시는 구원과 심판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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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하는 자 곧 악인들도 능력과 거짓 기적과 불의 모든 속임을 통해서 믿는 자들을 미혹하여 거짓 것을 믿게 합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에 충성하여 진리를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이 따릅니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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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사탄의 황동도,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행하는 일들에 미혹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 복음으로 성도들을 부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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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진리'와 '거짓', 그리고 그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거부'가 어떻게 구원과 심판을 결정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_"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9절) : 악의 세력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동반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현상에 얼마나 쉽게 미혹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고 경고하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기적과 표적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맹신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 열매와 가르침을 통해 분별해야 합니다.

_"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10절) : 심판의 근본 원인은 단순히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 의지적이고 도덕적인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진리가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된 욕망과 불의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진리를 거부했습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인간의 죄를 '자기 사랑(amor sui)'이 '하나님 사랑(amor Dei)'을 압도한 '질서의 파괴'로 설명했습니다. 진리를 거부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보다 자신과 세상을 더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_"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11절) : 이는 하나님께서 악을 조장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완악한 선택을 그대로 용납하시는 '사법적 유기(judicial abandonment)'를 의미합니다. 로마서 1장 24-28절에서 바울이 반복해서 말하듯,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가장 무서운 심판 중 하나로, 거짓을 진리로 믿게 되는 영적 무감각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C.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지옥의 문은 안에서부터 잠겨 있다"고 통찰했는데, 이는 지옥이 하나님의 강요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거부의 최종 귀결임을 보여줍니다.

_"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13절) : 반면,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과 성령의 내적 사역("거룩하게 하심"), 그리고 인간의 믿음의 반응("진리를 믿음")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는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인격적인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는 신비로운 진리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전통적 견해인데, 로마서에서는 더 강력하게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로마서 3:27에서 말하는 ‘믿음의 법’의 개념은 구원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죽을 수밖에 없던 인간을 향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정과 선택으로 이루어진 주권적 선물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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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영적 분별력의 기준 : 우리는 영적 현상이나 개인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진리', 즉 성경에 계시된 복음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가르침이나 운동이 십자가의 복음을 희석시키고, 회개를 촉구하지 않으며, 거룩한 삶의 열매보다 현세적 축복이나 신비 체험만을 강조한다면 경계해야 합니다.

_진리를 '사랑하는' 삶 : 우리는 성경을 단순히 지식의 대상으로만 대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묵상하며, 그 진리 앞에서 우리의 죄를 아파하고, 진리를 따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진리에 대한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을 때, 우리는 거짓의 달콤한 유혹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됩니다.

_구원의 확신과 감사 : 우리의 구원이 나의 의지나 노력 이전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택과 성령의 역사에 근거하고 있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와 겸손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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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과 구원의 날은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적 종말이든 우주적 종말이든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평가를 분명하게 받을 것입니다. 진리를 거부한 이들에게는 심판이, 진리를 순종하려 하는 자들은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합당하게 반응하여 우리고 주의 말씀을 굳게 부여잡고 상고하고 배워서 주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뜻을 따라 선한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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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7절 종말을 사는 교회는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시며, 그 사랑에 힘입어 살아가는 자녀들을 모든 선한 말과 행실에서 견고하게 붙드시는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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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앞선 교리적 설명들을 바탕으로 실천적인 권면과 기도로 넘어갑니다. 그는 형제들에게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친 전통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로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해 주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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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가르친 전통을 지키라"(15절) : 여기서 '전통(traditions)'은 인간적인 유전이나 관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어 사도들을 통해 교회에 전달된 권위 있는 복음의 핵심 가르침, 즉 '사도적 전승'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사도적 가르침이 교회가 혼란의 시대에 굳건히 설 수 있는 유일한 반석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교회가 시대의 흐름이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복음의 본질을 변개해서는 안 되며,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진리의 토대 위에 서야 함을 말해줍니다.

_"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16절) : 혼란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소망입니다. 이 위로는 일시적인 감정이나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에 뿌리내린 '영원한' 위로입니다. 또한 이 소망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을 통해 반드시 성취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좋은' 소망입니다. 이러한 위로와 소망은 거짓 가르침이 주는 불안과 공포를 이기는 강력한 영적 무기입니다.

_"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17절) : 바울의 기도는 성도들이 단지 교리적으로만 굳건해지는 것을 넘어, 그 믿음이 구체적인 삶으로 나타나기를 간구합니다. 신학 용어로 '정통(orthodoxy, 바른 신념)'은 반드시 '정행(orthopraxy, 바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선한 일'(행동)과 '선한 말'(언어)을 통해 세상에 증명됩니다. 종말론적 혼란 속에서 비생산적이고 무기력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깨어있는 종말 신앙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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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전통의 가치 재발견 : 포스트모던 시대는 모든 전통의 권위를 해체하려 하지만, 교회는 사도적 '전통', 즉 역사적 기독교 신앙고백(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등)과 성경적 가르침의 소중함을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속적 가치관의 도전에 맞서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는 힘이 됩니다.

_위로와 소망의 내면화 :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세상이 주는 불안과 염려에 압도당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사랑하사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장차 누리게 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의지적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이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이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힘입니다.

_말과 행실의 일치 : 우리의 신앙은 주일 예배당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가정, 직장, 사회 속에서 우리의 언어와 행동이 우리가 믿는 바를 반영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정직한 비즈니스, 진실하고 사랑이 담긴 언어, 사회적 약자를 향한 섬김 등 '모든 선한 일과 말'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장차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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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살아 내려고 순종하려고 힘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십니다. 

바른 믿음 위에 굳건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길은 묵상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지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선한 일에 힘쓰고, 언행이 일치된 성도로 살아갑니다. 이 여정이 비록 녹녹치 않는다 할 지라도 주님이 인정하시고, 주님이 함께하시고, 주님의 도우시고, 주님이 인도하시니 믿음으로 굳건하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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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날을 늘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메멘토모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주어진 삶의 현실들을

잘 분별하면서 허탄한 말이나 글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우리 경배의 대상이고

다른 인간과 피조물은 사랑과 다스림의 관계임을 잊지 마소서. 

영분별의 은사를 구하옵고,

모든 성도들이 거룩하고 건강한 길로 행하도록

깨어 기도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말고,

악인의 득세를 두려워 말고,

악인의 통치를 겁내지 않길 원합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할 줄 믿고

허락하시는 날 동안 주의 세미하신 인도와 사역에 

충성되게 하옵소서. 

오직 주의 진리의 말씀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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