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0-131편 죄책감을 버리고 소망으로 : 깊은 절망에서 찾은 참된 소망과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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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여정은 때로 깊은 어둠의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시편 130편은 그 깊은 절망의 한복판에서 드리는 죄인의 처절한 부르짖음이며, 용서하시는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음을 고백하는 참회의 노래입니다. 이어서 시편 131편은 그 소망을 붙든 자가 도달하는 영적 성숙의 경지, 곧 모든 교만과 욕심을 내려놓고 어미 품에 안긴 아이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고요하고 평온한 신뢰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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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0편: 깊은 곳에서 부르짖는 영혼의 노래>
‘참회시’ 중 하나로 분류되는 이 시는, 죄로 인한 깊은 절망의 나락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용서와 인자하심을 향한 간절한 기다림, 그리고 마침내 공동체를 향한 소망의 선포로 나아가는 영혼의 극적인 여정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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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1-2 절망의 심연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우리가 인생의 가장 깊은 절망의 구렁이에 빠져 있을 때에도 우리의 작은 신음 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귀 기울여 들으시는 분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그 절망의 자리에서도 주님께서 자신의 소리, 곧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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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곳’은 구약성경에서 혼돈의 바다,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심연을 가리키는 강력한 이미지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경험했던 스올의 깊음(욘 2:2-6)과도 같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울감이나 어려움을 넘어, 죄와 절망에 완전히 압도되어 스스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실존적 파탄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침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어떤 깊은 어둠도 하나님의 들으심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듣기 위해 하나님은 가장 깊은 절망의 자리까지 기꺼이 따라오시는 분입니다. 이 부르짖음은 우리의 구원이 절망의 깊이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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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깊은 우물에 빠진 것 같은 고독과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까? 죄책감이 나를 짓눌러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어둠 속에 갇혀 있다고 느낄 때, 기억하십시오. 바로 그곳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할 기도의 자리입니다. 나의 가장 깊은 곳까지 찾아오시는 주님은, 우리의 부서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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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3-4, 7-8 용서가 있기에 경외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일일이 감찰하지 않으시고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며, 그 용서의 은혜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도록 이끄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자신의 고통이 죄 때문임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그는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을 시인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라며 하나님의 용서에 소망을 둡니다. 그는 이 소망을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로 확장하며, 하나님의 풍성한 속량(구원)이 모든 죄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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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외부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의 ‘죄’ 문제로 직면합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시작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기록하고 심판하신다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 곧 용서(사유)하심에 주목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역설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가 죄를 가볍게 여기도록 만드는 방종의 면허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드는 동기가 됩니다.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살리신 그 엄청난 은혜에 대한 감격과 사랑의 빚진 마음이 하나님을 더욱 존중하고 두려워하며 따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적인 두려움을 넘어선, 인격적인 사랑과 존경에서 비롯된 경외입니다. 하나님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기에, 죄인은 역설적으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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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이 우리의 양심을 찌르고 삶을 어둡게 만들 때, 숨거나 외면하지 마십시오. 의인의 당당함이 아닌 죄인의 겸손함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들 때, 우리는 고통과 어둠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고, 감사함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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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5-6 파수꾼보다 더 간절한 기다림 ;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시며, 간절히 기다리는 영혼에게 구원의 아침을 열어주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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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기다림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라고 묘사될 만큼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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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깊은 밤을 지나는 시인에게 유일한 희망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다립니다’. 이 기다림은 막연한 체념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바라는" 적극적이고 소망에 찬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곧 그분의 약속의 말씀이 내 삶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붙드는 것입니다.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짙은 어둠 속에서 동이 트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파수꾼의 심정. 이는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반드시 구원의 아침을 가져오실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비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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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삶이 어둡고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우리는 파수꾼의 심정으로 주의 말씀을 붙들고 구원의 아침을 기다려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경험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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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1편: 젖 뗀 아이의 평안>
다윗의 시로 알려진 이 짧은 시편은,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해 교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참된 만족과 평안을 찾은 성숙한 영혼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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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1-3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 품에 안기다 ;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당신의 품에 안기는 자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만족과 평안을 주시는 우리의 어머니 같은 분입니다.
시인은 주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눈이 오만하지 않으며,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나 놀라운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오히려 그는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이" 자신의 영혼이 고요하고 평온하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평안을 온 이스라엘이 함께 누리기를 바라며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초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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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의 영혼의 중심에는 늘 하나님을 향한 겸손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취나 지위에 마음을 두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분에 넘치는 야망을 품지 않았습니다. 이 시의 백미는 "젖 뗀 아이"라는 비유입니다. 갓난아이는 배고픔이라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엄마를 찾지만, 젖을 뗀 아이는 더 이상 젖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존재 자체, 그 품이 주는 안정감과 사랑 때문에 엄마 곁에 머뭅니다. 이처럼 시인의 영혼은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하나님 존재 자체만으로 만족하는 성숙한 신앙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요하고 평온한" 영혼의 상태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품에 온전히 안길 때, 우리 마음에는 시들지 않는 만족과 평화가 깃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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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욕망은 무엇을 향하고 있습니까?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소유, 더 위대한 업적을 갈망하며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윗처럼 우리의 가장 큰 욕망이 오직 ‘하나님’이 되기를 소망합시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던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했듯, 세상의 것들은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서 완전한 평안을 누리듯, 창조주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불안과 욕심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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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관 찬송 및 찬양
찬송가 280장 (통 204) "천부여 의지 없어서"
복음성가 "내 모습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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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저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깊은 곳에서 절망하며 신음할 때에도
저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귀 기울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의 죄악대로 갚지 않으시고
용서하심으로 주님을 더욱 경외하게 하시니,
그 놀라운 은혜 앞에 엎드립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 주의 말씀을 바라오니,
어두운 저희 삶에 구원의 아침을 열어 주옵소서.
저희 마음의 교만과 헛된 욕심을 내려놓고,
젖 뗀 아이가 어미 품에 안기듯
오직 주님의 품 안에서 참된 만족과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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