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09:09-17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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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백성을 눈동자처럼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신(9:8) 직후, 그 이유이자 방법이신 ‘왕’의 도래가 선포됩니다. 그러나 그 왕은 세상의 통치자와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그는 무력의 상징인 군마가 아닌 평화의 상징인 나귀를 타고 겸손히 오시는 ‘공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왕’입니다. 그의 나라는 칼과 활을 폐하고 오직 ‘평화의 말씀’으로 땅끝까지 확장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피에 근거하여 절망의 구덩이에 빠진 ‘소망을 품은 포로들’을 건져내시고, 친히 그들을 위한 용사이자 목자가 되셔서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 왕의 통치의 결과는 백성들의 완전한 승리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찬양하는 풍요로운 번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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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절 왕의 입성 : 세상의 기대를 뒤엎는 겸손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세상이 기대하는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스스로 낮아져 백성의 자리로 내려오시는 겸손하고 공의로운 왕을 통해 당신의 구원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핵심 명제 :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은 힘의 과시에 있지 않고, 섬김을 위한 자기 낮춤(겸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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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당신의 가장 큰 능력과 영광을 압도적인 힘이 아닌, 스스로를 낮추시는 사랑과 온전한 공의의 성품을 통해 드러내시며, 이를 통해 참된 기쁨과 구원을 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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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시온의 딸, 예루살렘의 딸을 향해 “크게 기뻐할지어다, 즐거이 부를지어다!”라는 감격적인 명령이 선포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네 왕이 네게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왕에 대한 묘사는 세상의 왕과 완전히 대조됩니다. 그는 ①공의로우며(צַדִּיק, tsaddiq) ②구원을 베푸시며(נוֹשָׁע, nosha) ③겸손하여서(עָנִי, 'ani) ④나귀, 곧 나귀의 새끼를 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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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왕의 성품 :
공의로우며(צַדִּיק) :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백성과의 관계에서 흠 없이 올바른 분입니다. 그의 통치는 공평과 정의에 기초합니다.
구원을 베푸시며(נוֹשָׁע) : 이 단어는 수동형으로 ‘스스로 구원하는’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은, 승리하게 된’ 이라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즉, 그의 승리는 인간적인 힘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입니다.
겸손하여서(עָנִי) : 이는 단순히 성격이 온순하다는 뜻을 넘어, ‘가난한, 비천한, 고난받는’ 자의 처지에 있는 왕을 의미합니다. 그는 백성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의 고통을 아는 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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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타신 왕 : 고대 근동에서 말은 ‘전쟁’과 ‘권력’의 상징이었고, 나귀는 ‘평화’와 ‘일상’의 상징이었습니다. 정복 군주나 개선 장군은 위풍당당한 군마를 타고 입성합니다. 그러나 이 왕은 평화의 왕, 섬김의 왕이시기에 의도적으로 가장 보잘것없는 나귀 새끼를 타십니다. 이는 무력 통치를 완전히 거부하겠다는 상징적인 선언입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의도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마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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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세상은 더 높은 자리, 더 강한 힘, 더 많은 소유를 성공의 척도로 삼습니다. 그러나 우리 왕이신 예수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설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어디에 있는가? 더 높아지는 데 있는가, 아니면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왕을 닮아 겸손히 섬기는 데 있는가? 높으신 왕이 비천한 우리에게 내려오셨다는 사실이야말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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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절 평화의 나라 : 칼을 내려놓는 힘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무력과 전쟁의 악순환을 끊어버리시고, 오직 평화의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진정한 샬롬의 나라를 세우시는 분입니다.
핵심 명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군사력이 아닌 복음의 능력으로, 강압이 아닌 사랑의 선포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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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모든 전쟁 무기를 폐기하시고, 당신의 말씀 하나로 열방에 참된 평화를 가져오시며, 그 평화의 통치를 땅끝까지 확장하시는 만유의 주재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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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겸손한 왕이 하실 첫 번째 일은 ‘무장 해제’입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에브라임)의 병거와 남유다(예루살렘)의 군마를 끊어버리고, 전쟁의 활도 끊어버릴 것입니다. 무력을 완전히 제거한 후, 그는 이방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며, 그의 통치는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온 세상에 미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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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자기 백성의 무장 해제 : 가장 놀라운 점은 왕이 적의 무기가 아니라, 자기 백성의 무기부터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외부의 적을 제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공격성을 먼저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는 급진적인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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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임하는 평화 : 왕은 군대를 보내 열방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화평을 전할 것(דִבֶּר שָׁלוֹם, dibber shalom)’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통치는 강압이 아닌 선포로, 칼이 아닌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복음의 능력이 세상의 어떤 군사력보다 강하며, 온 세상을 변화시킬 유일한 힘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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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통치 : 그의 통치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른다는 표현은 시편 72편 8절의 메시아 예언과 일치하며, 그의 평화의 왕국이 특정 민족에게 국한되지 않고 온 인류를 향한 보편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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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우리는 여전히 힘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나만의 ‘병거’와 ‘활’은 무엇인가? (예: 목소리 높이기, 감정적인 압박, 권위 내세우기 등) 평화를 세우는 힘은 칼을 휘두르는 힘이 아니라, 먼저 내 칼을 내려놓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갈등 속에서 평화를 말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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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3절 언약 백성의 해방과 역전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당신의 희생적인 언약(피)에 근거하여 절망의 구덩이에 빠진 당신의 백성을 건져내시고, 그들을 소망의 용사로 변화시켜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신실한 구원자이십니다.
핵심 명제 : 우리의 구원은 나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며, 그 구원은 우리를 무기력한 포로에서 하나님 손에 들린 승리의 무기로 변화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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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피로 인치시고, 그 약속에 근거하여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을 건져내시며, 갑절의 축복으로 회복시키시는 신실하고 전능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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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하나님은 시온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구원하는 근거는 바로 “네 언약의 피”입니다. 이 피로 인해 그들은 “물이 없는 웅덩이”에서 놓여날 것입니다. 그들은 “소망을 품은 갇힌 자들”이라 불리며, 요새로 돌아오라는 명령과 함께 “갑절이나 네게 갚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구원받은 유다를 활로, 에브라임을 화살로 삼아 시온의 아들들을 일으켜 헬라(야완) 자손들을 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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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언약의 피(בְּדַם בְּרִיתֵךְ) : 이는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피로 인친 사건(출 24:8)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피로 맺으신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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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없는 웅덩이 : 이는 죽음과 절망,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상징합니다(예: 요셉이 던져진 구덩이). 포로 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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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품은 갇힌 자들 : 절망적인 상황(갇힌 자)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소망을 품은)이 공존하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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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절의 보상(מִשְׁנֶה) : 이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완전한 회복과 그 이상의 축복을 의미합니다(사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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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무기가 된 백성 : 10절의 무장 해제와는 다른 차원의 말씀입니다. 이는 세상적인 전쟁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당신의 백성을 영적 전쟁의 무기로 사용하시어, 세상의 지혜와 철학(헬라로 상징되는)을 대적하고 승리하게 하실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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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위한 새 언약의 피입니다. 그 피의 공로로 우리는 죄와 사망이라는 ‘물이 없는 웅덩이’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여전히 죄와 싸우는 ‘갇힌 자’ 같을 때가 있지만,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자유를 바라보는 ‘소망을 품은 자들’입니다. 이 소망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악한 영향력과 싸워 이기는 거룩한 무기로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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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7절 목자이신 용사, 그 선하심과 아름다우심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친히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전능한 용사이시자, 자기 양 떼를 구원하시는 선한 목자이시며, 그의 구원의 결과는 만물이 찬양할 수밖에 없는 풍성한 번영과 아름다움입니다.
핵심 명제 :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는 모든 대적을 멸하는 압도적인 힘과, 자기 백성을 살리는 무한한 선하심의 완전한 조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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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 앞에서는 번개와 나팔 소리로 임하시는 두려운 전사이시지만, 당신의 백성에게는 그들을 보석같이 여기며 구원하시는 자비로운 목자이시며, 모든 선함과 아름다움의 근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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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 위에 나타나시어 번개 같은 화살을 쏘시고, 나팔을 불며, 남방 회오리바람처럼 전진하시는 신적인 전사(神戰)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며, 그 결과 그들은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실 것이며, 그들은 왕관의 ‘보석 같이’ 빛날 것입니다. 마지막은 하나님의 ‘선하심(טוּב)’과 ‘아름다우심(יֹפִי)’에 대한 감탄과, 그 결과로 주어지는 풍요(곡식과 새 포도주)에 대한 찬양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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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용사이신 목자 : 이 구절은 하나님의 두 가지 이미지를 절묘하게 결합한다. 온 세상을 진동시키는 강력한 용사이신 하나님(14-15절)의 그 모든 능력은, 결국 당신의 연약한 양 떼를 구원하시는 선한 목자(16절)의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하심은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과 보호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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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심(טוּב)과 아름다우심(יֹפִי) : 구원의 최종 결과는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선하심’은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함과 은혜로우심을, ‘아름다우심’은 그분의 창조와 구원 사역에 나타나는 조화와 광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모습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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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생명력 : 곡식과 새 포도주는 젊은이들을 소생시키는 생명력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순히 위험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넘어, 다음 세대가 힘차게 일어나 번성하는, 풍성한 생명력의 회복까지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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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우리가 인생의 싸움터에서 지치고 두려울 때, 나를 위해 번개 같은 화살을 쏘시며 싸우시는 용사이신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길 잃고 연약할 때, 나를 보석처럼 여기시며 구원하시는 목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세상의 힘과 지혜가 우리를 주눅 들게 할 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찬양합시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이기게 하시는 분이 계심을 잊지 맙시다(고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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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명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왕들과 같이 힘으로 군림하지 않으시고,
겸손히 나귀를 타고 우리에게 오신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교만의 군마와 다툼의 병거를 끊어주시고,
먼저 내 칼을 내려놓고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언약의 피로 우리를 절망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고,
소망을 품은 자녀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때로 연약하여 넘어질지라도,
친히 우리의 용사요 목자가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주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이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게 하시고,
마침내 주님의 풍성한 생명력으로 우리를 채워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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