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07:01-14 참된 금식 :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금식

by 평화의길벗 posted Aug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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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07:01-14 참된 금식 :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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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재건이 2년째 진행되던 때, 벧엘에서 온 사람들이 과거의 재앙을 기념하던 금식을 이제 멈춰도 되는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질문을 통해, 그들의 관심이 겉모습뿐인 종교 형식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금식이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이웃에게 정의와 인애와 긍휼을 베푸는 삶의 실천임을 상기시키십니다. 조상들이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음을 돌처럼 굳혔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 흩어졌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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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형식에 대한 질문, 본질을 묻는 하나님

  •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우리의 종교적인 질문과 행위의 이면을 꿰뚫어 보시며, 그 동기와 마음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물으시는 분입니다.

  • 핵심 명제 : 신앙의 성숙은 '어떻게(How)'의 문제를 넘어 '왜(Why)'의 문제에 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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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의 종교적 열심이나 형식적인 질문을 받기 전에, 그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있는지를 먼저 살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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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다리오 왕 제4년 아홉째 달(기슬래월) 넷째 날, 즉 성전 재건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 벧엘 사람이 스가랴와 제사장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들은 성전 파괴(5월)와 총독 암살(7월)을 슬퍼하며 수십 년간 지켜온 금식에 대해 묻습니다. "우리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즉, "이제 성전도 다시 지어지고 있으니, 이 슬픔의 금식을 그만둬도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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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 질문의 얄팍함 : 표면적으로 이 질문은 매우 합리적이고 경건해 보입니다. 금식의 원인이었던 성전 파괴의 아픔이 이제 성전 재건으로 회복되고 있으니, 금식을 축제로 바꿔야 할 때가 아니냐는 것입니다(8장에서 실제로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이 질문 속에는 자기 죄에 대한 깊은 성찰의 부재가 깔려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이 무너진 ‘사건’은 기억하며 금식했지만, 성전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는 잊어버렸습니다. 금식이 죄에 대한 애통과 회개의 표현이 아니라, 그저 재앙을 기념하는 연례행사, 즉 내용물 없는 포장지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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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질을 놓친 열심 : 그들은 건물이 다시 세워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전의 회복 이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백성의 삶의 회복이었습니다. 형식을 지키는 데는 익숙했지만, 그 형식이 담아내야 할 본질,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이웃을 향한 거룩한 삶은 놓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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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 개인과 교회 : 우리도 하나님께 이런 ‘벧엘의 질문’을 던질 때가 많습니다. “주일 예배만 잘 드리면 되나요?”, “새벽 기도에 꼭 나가야 하나요?”, “어떤 방식으로 헌금해야 복을 받나요?” 등 행위의 형식(How)에 대한 질문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되물으십니다. “너는 왜 예배하느냐? 왜 기도하느냐? 그 중심에 나를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긍휼이 있느냐?” 신앙의 형식과 열심이 자기만족과 자기 의를 위한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늘 그 동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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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0절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

  •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자기 만족적인 종교 행위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당신의 백성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인 정의와 인애, 긍휼을 실천하는 참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 핵심 명제 :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건은 골방에서의 기도와 통해(痛悔)를 넘어, 거리와 시장에서 약자를 향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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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제사보다 긍휼을,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시며(호 6:6), 우리의 삶이 당신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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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하나님은 금식에 대한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으시고,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라고 통렬한 반문을 던지십니다. 이어서 과거 선지자들을 통해 외쳤던 하나님의 본심을 상기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셨던 것은 ①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②서로에게 인애(헤세드)와 긍휼을 베풀며, ③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자 등 사회적 약자를 압제하지 말며, ④마음으로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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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 이 질문은 그들의 모든 종교 행위가 결국 하나님이 아닌, 자기 위안과 자기 의, 사람들 앞에서의 경건의 모양을 위한 이기적인 행위였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재앙을 피하고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금식을 이용했을 뿐,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갈망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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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된 금식의 내용 (이사야 58장과의 연결)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음식을 끊는 것이 아니라,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사 58:6)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선포했습니다. 스가랴가 여기서 열거하는 ‘정의, 인애, 긍휼, 약자 보호’는 바로 이 이사야의 외침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은 구약 전체를 통해 한결같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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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미쉬파트)와 인애(헤세드) : 이 두 단어는 구약 예언서의 심장과도 같습니다. ‘정의’는 사회 구조 속에서 공의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이며, ‘인애’는 언약 관계에 기초한 변함없는 사랑과 친절,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가 개인의 경건 생활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흐르기를 원하셨습니다. 한 사회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는, 그 사회가 가장 힘없는 자(과부, 고아, 나그네)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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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 개인과 교회 : 나의 경건 생활은 이웃과의 관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까? 기도 시간에는 눈물을 흘리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의 부흥을 외치면서, 정작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아픔에는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주일 하루, 교회 건물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터와 가정, 사회 속에서 정의와 인애를 실천하는 삶 전체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입니다. 교만의 죄와 더불어 태만의 죄 곧 무사고(사유), 비공감의 삶을 죄악된 삶이며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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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4절 닫힌 귀, 굳은 마음, 그리고 황폐한 땅

  •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귀를 닫고 마음을 돌처럼 굳히는 교만을 가장 싫어하시며, 그 불순종의 결과로 임하는 관계의 단절과 심판을 엄중히 경고하시는 분입니다.

  • 핵심 명제 :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분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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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 말씀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시지만, 그 말씀을 고의로 거부하는 자에게는 침묵하시며, 그들이 선택한 불순종의 결과를 스스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운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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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하나님은 조상들이 왜 멸망했는지를 정확히 진단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①듣기 싫어하여, ②등을 돌리며, ③귀를 막고, ④마음을 금강석(다이아몬드)같이 굳게 하여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큰 진노가 임했고, 그들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도 듣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여러 나라에 흩어지고, 그들이 살던 아름다운 땅은 황폐하게 버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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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 영적 타락의 4단계 : 본문은 마음이 완고해지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보여줍니다. 1) 듣기 싫어하는 소극적 거부에서 시작하여, 2) 등을 돌리는 적극적 외면으로, 3) 귀를 막는 의지적 차단으로, 그리고 마침내 4) 마음이 금강석같이 되어 어떤 말씀의 자극도 느끼지 못하는 완전한 불감증 상태에 이릅니다. 마음이 돌처럼 굳어지는 것, 이것이 영적으로 가장 비참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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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계의 상호성 : “내가 그들을 불러도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나를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이는 감정적인 보복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이라는 비극적 결과를 보여주는 상호성의 원리입니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과의 소통 채널을 닫았기에, 하나님과의 소통 역시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심판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단절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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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땅의 황폐 :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이 황폐하게 된 것은 자연재해나 외적의 힘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그 땅에 살던 백성들의 ‘불순종’이었습니다. 죄는 개인의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과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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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 개인과 교회 : 지금 나의 마음 밭은 어떻습니까? 부드러운 옥토입니까, 아니면 딱딱한 길가 밭이나 돌짝밭입니까? 특별히 내게 불편하게 들리는 말씀,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 앞에서 귀를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두 번 말씀을 외면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마음은 금세 금강석처럼 굳어질 수 있음을 경고로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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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교훈 : 이스라엘의 역사는 오늘 우리를 위한 거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때 흥왕하고, 불순종할 때 쇠퇴했던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리에는 민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둔감해질 때, 교회는 황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구호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묵상이든 성경연구든 설교든 나눔이든 어떤 형태로든 기록된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순종해 나아가는 삶만이 복되고 사는 길이며, 주님이 원하시는 복있는 자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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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참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 금식과 헌신이 

나 자신을 위한 거짓된 경건이 되지 않도록 

늘 저희 마음을 감찰하여 주옵소서. 

종교적인 형식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위선에서 벗어나, 

삶의 모든 자리에서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인애와 긍휼을 베푸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 앞에서 저희의 귀가 닫히지 않게 하시고, 

마음이 금강석처럼 굳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는 부드러운 마음을 허락하사, 

듣고 깨닫고 순종함으로 생명의 길을 걷게 하여 주옵소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배워 주님께 온전히 돌아가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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