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갸랴 06:01-15 새 시대의 여명 : 왕 같은 제사장의 대관식

by 평화의길벗 posted Aug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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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갸랴 06:01-15 새 시대의 여명 : 왕 같은 제사장의 대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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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의 여덟 번째 마지막 환상은 어둠의 시대가 끝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새 시대의 여명을 보여줍니다. 두 놋산 사이에서 나온 네 병거가 온 땅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여, 마침내 거짓 평화를 끝내고 하나님의 영을 쉬게 합니다. 이 역사적 전환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온 사절단의 금과 은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우는 충격적인 상징 행위를 명령하십니다. 이는 장차 오실 진정한 ‘싹’(메시아)이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겸하여 친히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완전한 평화의 통치를 이룰 것을 예표하는 대관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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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절 어둠의 끝, 심판의 서광

  •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불의가 판치는 거짓 평화의 시대를 당신의 주권적인 심판으로 끝내시고 공의로운 통치의 새 시대를 여시는 분입니다.

  • 핵심 명제 : 하나님의 심판은 파괴가 목적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거룩한 질서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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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온 땅의 불의를 감찰하시고, 마침내 당신의 때에 행동하심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시며, 당신의 공의가 만족될 때 비로소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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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깊은 밤에 시작된(1:8) 스가랴의 환상은 이제 동이 트는 새벽을 배경으로 하는 마지막 여덟 번째 환상으로 끝을 맺습니다. 스가랴는 ‘두 놋산’ 사이에서 네 개의 병거가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 병거들은 각각 다른 색의 말들이 끌고 있으며, 온 땅의 주 앞에 서 있다가 사방으로 흩어져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특히 ‘북쪽 땅’으로 간 병거는 그 땅을 평정함으로 하나님의 영을 ‘쉬게’(만족하게) 했다는 보고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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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 ‘두 놋산’의 의미 : ‘구리(놋)산’은 새벽 여명에 붉게 물든 산의 이미지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는 새 시대의 서광을 알리는 아름다운 상징입니다. 신학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성경에서 ‘놋’은 종종 ‘심판’을 상징합니다(예: 성막의 놋제단). 따라서 이 두 놋산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집행되는 거대한 관문과도 같습니다. 새 시대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통과하여 열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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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번째 환상의 응답 : 이 환상은 첫 번째 환상(1:7-17)에 대한 완벽한 응답입니다. 첫 환상에서 순찰자들은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라고 보고했고, 이에 여호와의 천사는 “주여 언제까지니이까?”라며 고통받는 유다를 위해 탄원했습니다. 그 거짓된 평화(Pax Persiana) 속에서 신음하던 백성들의 기도가 마침내 응답받은 것입니다. 네 병거는 더 이상 순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싣고 온 땅에 그분의 통치를 선포하며 불의한 세력을 심판하는 집행관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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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쪽 땅’과 하나님의 ‘쉼’ : 이스라엘에게 ‘북쪽’은 늘 침략과 압제의 방향이었습니다(앗수르, 바벨론). 그 북방 세력에 대한 심판이 완료되자, 하나님의 영이 ‘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피곤해서 쉬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쉼’(히, 누아흐)은 공의가 실현되어 분노가 그치고 만족에 이른 상태를 의미합니다. 죄와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긴장이 해소된 것입니다. 이제 심판의 시대가 끝나고, 은혜와 재건의 새 장이 열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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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 개인과 교회 : 우리는 정의가 무너지고 악이 승리하는 듯한 현실 앞에서 “주님, 언제까지입니까?”라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이 환상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반드시 그분의 때에 심판의 병거를 보내어 모든 것을 바로잡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그분의 공의로운 통치가 임하도록 기도하며 신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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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을 보는 관점 :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 ‘안정’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거짓 평화는 아닌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타인의 불행 위에 안주하는 것을 경계하며, 하나님의 진정한 샬롬, 즉 모든 관계가 바로 세워지는 공의로운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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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3절 예표의 대관식: 왕과 제사장의 연합

  •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구약의 분리된 직분(왕과 제사장)을 하나로 통합할 새로운 지도자, 메시아 ‘싹’을 약속하시며, 그의 통치를 통해 진정한 성전과 완전한 평화가 임할 것을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 핵심 명제 : 인류의 궁극적인 회복은 정치적 해방(왕)과 영적 죄 사함(제사장)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될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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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역사 속 실제 인물과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계획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시며, 점진적으로 당신의 구원 계획을 펼쳐 나가시는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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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매우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십니다. 바벨론에서 온 헬대, 도비야, 여다야에게서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정치 지도자인 총독 스룹바벨이 아닌,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표적 행위와 함께 ‘싹’(צֶ֫מַח, 체마흐)이라 이름하는 이에 대한 예언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그 ‘싹’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 왕의 영광을 입고 보좌에 앉아 다스릴 것이며, 동시에 그의 보좌 곁에 제사장이 있어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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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 충격적인 대관식 : 이 행위는 당시 사람들에게 혁명적이고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왕과 대제사장은 엄격히 분리되었습니다. 왕은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이, 대제사장은 레위 지파 아론의 후손이 맡았습니다. 웃시야 왕이 제사장의 직무를 넘보다가 나병에 걸렸던 사건(대하 26장)은 이 구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왕의 상징인 면류관을 씌우심으로, 기존의 모든 질서와 기대를 깨뜨리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을 예고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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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싹’이신 그리스도 : 3장에서 죄 사함을 받은 여호수아와 연결되었던 ‘싹’은, 여기서 그 정체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는 성전 건축자이며(요 2:19-21, 참 성전이신 예수님), 왕의 영광을 지닌 통치자이며, 동시에 보좌에 앉은 제사장입니다. 구약에서는 불가능했던 이 두 직분의 완벽한 통합이 한 인격 안에서 이루어질 것을 예언합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왕이시며, 히브리서가 증언하듯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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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의 의논’ : 왕의 통치(정의와 공의)와 제사장의 중보(죄 사함과 화목)가 한 분 안에서 완벽한 조화(평화의 의논)를 이룰 때, 비로소 백성에게 진정한 샬롬이 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왕의 심판)와 하나님의 사랑(제사장의 희생)이 만나는 지점이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 그리고 우리와 이웃 사이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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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 개인 : 우리의 삶에는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와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용서가 모두 필요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다스림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동시에 죄와 실패로 넘어졌을 때,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께 나아가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까?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신앙은 건강하게 자랍니다.

  • 교회 :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왕의 사명과, 깨어진 세상을 치유하고 화목케 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동시에 감당해야 합니다(벧전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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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14-15절 거룩한 동역 : 순종으로 짓는 성전

  • 단락 핵심 주제 :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인 계획을,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여 헌신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섬김과 연대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 핵심 명제 : 하나님의 나라는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의 거룩한 동역을 통해 이 땅에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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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홀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지만, 우리를 당신의 동역자로 부르시어 우리의 순종과 헌신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를 기뻐하시는, 인격적인 관계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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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찰 (Observation)

면류관의 재료는 바벨론이라는 ‘먼 데서’ 온 사람들의 헌신(은과 금)으로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면류관은 성전에 ‘기념물’로 보관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가랴는 놀라운 약속을 덧붙입니다. 장차 ‘먼 데 있는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이며, 이 모든 일은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 들을진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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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석 (Interpretation)

  • 주권과 책임의 조화 :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헌신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진행됩니다. 바벨론에서 온 사절단의 헌금, 스가랴의 순종, 여호수아의 순종이 없었다면 이 예언적 사건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인간의 책임적 순종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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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 데 사람들’의 동역 : 일차적으로 이는 포로 된 땅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이 돌아와 성전 재건에 동참할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이는 장차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돌아와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함께 세워갈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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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종이라는 조건 : “너희가 온전히 들을진대”라는 조건은 우리의 순종이 구원의 원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경험하는’ 통로가 바로 순종임을 알려줍니다. 믿음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약속을 붙들고 한 걸음 내딛는 능동적인 신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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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용 (Application)

  • 나의 헌신 :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역사 앞에서 나는 방관자입니까, 아니면 헬대와 도비야처럼 나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드리는 동역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작은 헌신을 ‘기념’하시고, 그것을 통해 당신의 교회를 세워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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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대와 협력 : 하나님 나라는 나 혼자 세울 수 없습니다.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먼 데 사람들’과의 연대와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교회 안팎에서 나와 다른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해 나는 어떻게 협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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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불의가 가득한 이 땅에 공의의 심판을 행하시고 

새 시대의 여명을 여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상의 거짓 평화에 안주하지 않고, 

주님의 때를 신뢰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의 통치에 순종하게 하시고, 

그의 보혈을 의지하여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에 저희를 동역자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의 작은 순종과 헌신을 기쁘게 사용하시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먼 데 있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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