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6:01-15 예레미야의 성전 연설과 그의 재판 1

by 평화의길벗 posted Jun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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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6:01-15 예레미야의 성전 연설과 그의 재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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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시대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성전 뜰에 서서 성전 몰락에 대해 가감없이 전하라 합니다. 그러나 뜻을 돌이키실 여지를 두고 전했음에도 종교지도자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체포하며 죽이려 합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그들을 향하여 자신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전하니 여호와의 목소리 청종할 것을 다시한번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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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절 여호와께서는 이제라도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뜻을 돌이킬 여지가 있음을 전하십니다. 

‘여호야김(608-598)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성전 뜰에 서서 예배하러 올라온 유다의 모든 성읍 주민들에게 경고(권고)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여호야김은 요시야 왕의 아들로 애굽의 느고에 의해 그의 배다른 동생 여호아하스를 대신하여 보좌에 앉았습니다. 요시야의 죽음으로 위기에 빠지기는 했지만 유다에게는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야훼의 율법을 통치 기반으로 선포하고 실천했던 선왕의 정책이 여호야김 통치의 모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예언자들을 정치적으로 핍박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최소한의 존경심도 내보이지 않습니다. 주저 없이 야훼의 예언자를 죽이려는 그의 난폭하고 방자한 태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유다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당신 백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예언자의 말을 듣고 저마다 제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 다시 경고의 말을 전하게 하십니다(3a절). 그분은 그들의 악행 때문에 그들에게 내리려는 재앙을 집행하기 보다는 거두길 원하신다(3b절; cf. 18:8-10; 욘 3:10). 예루살렘과 유다가 야훼의 말을 듣지 않고 그분의 법대로 걷지 않는다면(4절), 그분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5절) 예루살렘 성전은 실로처럼 되고(cf. 7:12-15) 예루살렘은 세상 모든 민족들의 저주거리가 될 것입니다(6절).

실로 성소의 멸망은 유다에게 타산지석입니다. 사사시대 말기에 이스라엘의 중앙성소의 역할을 담당하다가 멸망에 떨어진 실로 성소의 운명(삼상 1-4장)으로부터 유다 사람들은 동일한 잘못을 범하면 예루살렘 성전도 마찬가지로 심판에 떨어질 수 있음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실로 성소의 몰락이 보여주듯이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소가 있다는 사실이 그 도성과 나라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악을 행할 경우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소라 할지라도 멸망에 넘기신다. 

이스라엘의 악행(4-5절)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율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면 자동적으로 심판이 면제된다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일주일 내내 범죄하고 주일에 예배만 하면 면죄부를 받는 것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며 제할 일 다했다고, 하나님은 그저 기복을 주는 수단에 불과한 신앙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배당에 드나들고, 습관적으로 예배하고, 제의적인 행위와 여타의 종교행위들이 우리의 부정과 죄악들을 깨끗케 할 수 없으며, 우리 일상의 불신앙이 용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긍휼을 악용하고 오용하다가 어느새 이러한 경고에 대해서도 무디어지고, 착각속에 회개와 경고를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된다는 경고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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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1절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전한 말씀에 대한 반응은 반드시 둘로 나뉘어 집니다. 

8-9절, 하나님의 실낱 같은 소망에 반하여 야훼의 성전 안뜰에서 행한 예레미야의 선포는 적대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킵니다. 분노한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예레미야를 붙잡아 재판에 회부합니다. 이들은 예레미야의 선포에서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할’ 중한 죄를 봅니다. 이들에게 문제가 된 것은 예레미야가 선포한 예언의 내용입니다. 성전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야훼의 성전과 예루살렘의 멸망은 야훼의 이름으로 선포될 수 없는 예언입니다. 야훼의 이름으로 그분 성전과 그분께서 택하신 도성의 몰락을 선포하는 행위는 바로 야훼 하나님을 훼방하는 불경죄로 반드시 죽음에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cf. 레 24:15-16). 그래서 이들에게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가 된 것입니다. 

10-11절, 성전에서 발생한 소란을 듣고 고관들이 왕궁에서 성전으로 올라와 ‘야훼의 새 대문 입구’에 앉습니다. 왕의 신하들의 주관 아래 재판이 거행된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고발자로, 고관들이 재판장으로, 백성은 증인[재판장]으로 등장합니다.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재판이 진행됩니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거슬러 예언했기에 죽어야 마땅하다고 고관들과 백성에게 그를 고발합니다.

결정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이러한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듭니다. 그리도 오래도록 하나님의 뜻을 예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를 죽이려 하고, 이 일에 분별력 없이 휘말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뿌리는 실로 깊습니다. 

지금도 여러 정치 경제 외교 현안들에 대한 심각한 실정 속에 애꿎은 이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종교 안에서도 왜곡되고 고착된 전통에 의해 진보적 신학자들과 포용과 관용을 추구하는 신학자들이 매도되고 강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도 현실을 직시하지도 못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살기 바빠서 그런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회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그런 일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가히 더 절망적입니다. 분명 정의와 공의가 무너지고 있고 약자들이 죽어가고 억울한 이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불의한 이들이 득세하는 형국에서도 책임있는 이들이 침묵하는 것은 악에 대한 동조일뿐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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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5절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악행의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예레미야는 변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선포를 다시 반복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야훼로부터 보냄을 받고 ‘이 성전과 이 성을 향하여’ 예언하였다(12절)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악한 길과 행위를 떠나 야훼께로 돌아와 그분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그분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 내리기로 하신 재앙을 다시 거두실 것입니다(13절). 

예레미야는 고발자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대부분 인정합니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너희 귀로 들음 같이’[11절])처럼 예레미야(‘너희가 들은 바 모든 말로’[12절])도 자신의 선포를 들은 자들에게 직접 호소합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목숨이 백성의 손에 달려 있는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들에게 책임 있게 판단할 것을 요구합니다(14-15절). “나는 피고석에 있으니 보고 들은 당신들이 알아서 처리하시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명심하기 바라오. 여러분이 나를 죽이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이요.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도록 야훼께서 나를 보내셨소.” 예레미야는 야훼의 예언자를 죽여 야훼에 의해 징계를 받지 않도록 신중할 것을 백성에게 경고합니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야훼께서 현존하시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의 멸망을 선언하는 예언자는 야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일 수 없다고 고발하는데 반하여, 예레미야는 자신은 바로 그 일을 위해 야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터무니 없다고, 허튼 소리라고 치부하기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의연하게 예언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에서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은 분명 재고하고 생각해 봐야 했습니다. 쓰디쓴 말씀으로 나의 위선과 거짓이 폭로되면 그것을 변명하고 가리고 외면하기보다는 이  때가 기회인 것을 알고 뼈를 깎는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과 공동체의 문제들을 살피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그러한 객관적 진단과 돌이킴과 성찰이 없다면 이러한 경고로 조금만 심기를 건드려도 오히려 조언하는 이들에게 격노하며 자신의 치부를 정당화하고 가립니다. 그런 일이 반복될 수록 주변에 더이상 조언이나 쓴소리나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은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말 하는 이들은 자꾸만 입을 닫게 되어서 정작 듣고 깨달아야 할 때는 더이상 들을 수 없는 때가 오게 됩니다. 악한 길에도 돌아오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돌아오는 일도, 깨우치는 일도, 객관화도 점점더 멀어지고 요원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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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사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

몸된 성전으로서, 날마다 주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은혜

허락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경험이 미지근해지고

나의 심령골수를 쪼개고도 남음이 있는 말씀이 들리지 않고

말씀을 듣고서도 가슴이 뜨거워지지도 않으며

찔림고 촉진도 도전도 충격도 느끼지 못할 만큼

무디어진 심령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순종과 행함과 성실함을 잃어버린 데에서

다시 돌이켜 온전히 주의 말씀을 청종하기 원합니다.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닫는 일에 게으르지 않기를

무엇보다 나를 향한 주의 음성에 온전히 귀기울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듣는 마음도 주시옵고

말씀을 듣고 합당하게 반응하여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돌이킬 수 있는

용기와 결단있는 믿음도 주옵소서. 

담대하게 당당하게 주의 말씀을 살아내고 증언할 수 있는 능력도 주옵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 맡은 자로서의 소명 주심을 기억하고

전하고 선포하고 살라신대로 순종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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