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완목사가 쓰는
침묵기도(Centering Prayer)와 렉시오 디비나 방식의 깊은 묵상 큐티
큐티 밥과 함께 하는 깊은 묵상
큐티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설교말씀을 듣는 것이나 해석된 말씀을 읽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읽고 묵상하면서 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경 말씀은 그 자체가 인격적이시며 스스로 일하시기 때문에 성경 말씀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큐티 밥은 이같은 영적 경험에 이르도록 돕는 큐티입니다.
큐티 밥과 함께 하는 경건의 시간
1. 내적 침묵기도(Centering Prayer) 5분, 10분, 20분등 자신에게 맞게 침묵합니다
내가 무엇을 계획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내면의 하나님을 집중하는 기도(centering prayer)를 침묵함으로 드립니다. 이같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의 욕심과 세계관에 지배되어 있는채 색안경을 쓰고 말씀을 보는 것을 배제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우리는 말씀을 읽을 때조차 무엇을 얻으려는 숨은 동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같은 숨은 동기에서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잘못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가능성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 안에 꿈틀대는 숨은 동기로 가득한 거짓자아를 벗겨내서 온전하고 진실한 영적 자아로 말씀 앞에 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숨은 동기에 지배받은 거짓자아의 만족을 구하는 방법으로 말씀을 읽지 않고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짓 자아를 벗겨내고 참 자아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기까지는 오랜 수련이 필요하겠지만 이것이 큐티를 위한 선행조건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2. 렉시오(Lexio) 읽기 읽기는 듣기입니다. 모든 감각을 사용하십시오
말씀은 읽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단순히 말씀을 일반적인 책처럼 읽으려고 한다면 잘못된 태도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연구한다는 표현도 문제있는 표현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씀을 받아들일 태도뿐이기 때문입니다.
침묵기도를 마친 후 이제 말씀을 주의깊게 듣기로 결정하였다면 무엇보다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를 겸손하게 묻는 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대함으로(anticipate) 매우 의도적으로(intentionally) 천천히(slow) 생각하면서(think) 소리내어 읽습니다.(read) 평상시에 읽던 속도보다 2-3배정도 느린 속도로 읽습니다.
말씀을 읽는 중에 강하게 다가온 구절을 오늘의 말씀 쪽지에 적습니다. 이때 구절은 한 번에 생각이 날 정도로 짧은 구절로 좁혀서 적는 것이 좋습니다.
3. 메디타치오(Meditatio) 묵상 하루 종일 반복해서 읽고 연구하고 묵상합니다
우선은 오늘 받은 말씀을 오늘의 말씀 쪽지에 쓴 후 그 말씀을 들고 다니면서 하루 종일 반복해서 읽고 생각함으로 묵상합니다. 이것이 메디타치오의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묵상이 더 깊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신 “구절”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둘러싸고 있는 컨텍스트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더 깊은 연구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더 폭넓고 깊도록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잘못된 해석과 묵상에 이르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6장 14-29절을 본문으로 읽다가(렉시오)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을 만났다고 합시다. 22절 말씀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너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묵상자는 이 22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기만하면 다 주겠다”는 음성이었습니다. 순간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잘못된 묵상입니다. 왜냐하면 22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 헤롯왕이 자신의 비난받는 아내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에게 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살로메는 어머니 헤로디아의 요청에따라 세례 요한의 목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니까 22절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으로 묵상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앞뒤 둘러싸고 있는 문맥을 살피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편의대로,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는 것에서도 놓임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문맥과 전체 연구를 통한 묵상은 자신에게 주신 말씀의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묵상은 좀 더 넓은 시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4. 오라치오(Oratio) 기도 묵상중 하나님 음성에 청종함으로 기도합니다
허락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다는 말이고, 그분의 뜻을 이해할 때 우리의 기도는 무엇을 일방적으로 소망하는 것이 아닌 말씀하심에 반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때는 회개가 나올 수 있고, 어떤 때는 감사와 찬양이 나올 것입니다. 혹은 강력하게 중보기도와 긍휼히 여기는 기도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 기도는 미리 계획된 기도가 아니라 말씀 묵상을 통해 그때 그때 주시는 성령의 감동에 따라 주시는 제목이기에 기도는 깊이있는 기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정해진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쪽지 묵상을 하다가 어디서든지 성령의 감동을 주실 때 하면 되는 것입니다.
5. 컨템플라치오(Contemplatio) 관상기도/ 쉼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쉽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평안과 안식을 줄 때가 옵니다. 그때 그 말씀의 평안함에 거하는 것이 쉼 곧 컨템플라치오입니다. 혹은 메디타치오 즉 묵상할 때 주신 하나님의 감동을 좇아서 기도(오라티오)할 때 하나님이 안식과 위로 혹은 평안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 하나님의 만지심 가운데 편안히 쉬는 것이 컨템플라치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관상은 이냐시오(Ignatius de Loyola)가 말하는 관상과는 약간 다른 것이며 하나님안에서의 쉼, 그런 의미에서 관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프락시오(Praxio) 실천 말씀을 따라 실천합니다
말씀 읽기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을 때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만지게 됩니다. 그 마음을 읽으면서 드리는 것이 기도(오라치오)이고, 그 기도에 깊이 참여할 때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프락시오입니다.
예를 들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받아서(렉시오) 깊이 묵상하면(메디타치오) 당연히 “사랑에 대한 기도”(오라치오)가 나올 것입니다. 그동안 마음을 닫고 용서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회개하는 역사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쉼이 생깁니다.(컨템플라치오) 이어서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프락시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