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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을 마신 사람들
잔을 마신 사람들
김마가 선교사(Global Operation 해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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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전도종족이 가장 많은 최대 그룹은 무슬림이다. 이슬람은 빠르게 성장할 뿐 아니라 기독교에 가장 위협적인 종교 집단이다. 비록 그들이 정치적 세력화를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넓히는 데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하여도 그들이 바라보는 기독교인은 정치적 및 경제적 승리 외에는 도덕적이고 문화적인 승리를 하지 못하였다고 믿는다.

9.11사태 이후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더 이상 미국에서 새로운 테러를 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테러집단에 대한 부시의 공격적 정책과 이라크 전쟁의 시작 때문에 테러의 중심지는 미국보다 이라크나 몇몇 주변국가가 되어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카르자이 정권이 국민투표를 통해 합법적으로 인정받고 오랫동안 맹주로 군림하던 이스마일칸과 같은 지역 지도자들이 제거되면서 안정의 발판을 구축했다. 여전히 테러가 일어나고 있지만 현저히 그 빈도가 줄어든 이라크도 지난 총선을 통해서 사실상 알자르카위와 같은 테러집단들이 더 이상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한 이슬람 정치권은 (이슬람은 근본적으로 정치과 종교를 분리하지 않는다) 정치적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권에서 그들이 여전히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도덕적 승리와 종교적 승리이다. 특히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을 우습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들은 자신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목숨을 내어놓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믿는 것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자들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인 사실이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그 비판을 인정해야 할 상황에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2004년 김선일형제의 사건이후로 한국교회의 이슬람권 사역은 주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보아야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대표적 모델이 있다. 기원전 7세기경의 바룩과 세례요한이다. 약 600여년의 차이를 두고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들은 모두 좋은 가문의 출신이라는 것이다. 바룩은 네리야의 아들이었고 그의 할아버지 마세야는 요시야왕 때 예루살렘의 관원이었으며 그의 형제 스라야는 시드기야왕 시절의 병참담당 시종장이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는 대제사장이었고 요한의 출생에 연관된 이야기는 복음서에 잘 기록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스스로 좋은 환경과 편안한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둘째 이들은 모두 섬기는 자리에 있어서 왕을 만드는 자리에 있었다. 바룩은 서기관이면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받아 글로 적어서 시위대 앞에서 공표하였다. 그는 자주 행동에 제한을 받았던 예레미야가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였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인기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세상에 처음 소개함으로 인하여 결론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였다. 그는 스스로 흥할 수 있었지만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고 이해했다. 그들은 빛이 아니었고 빛나는 자를 소개하거나 돕는 자였다.

셋째 이들은 모두 고난을 받았다. 바룩은 예레미야 대신 발표한 내용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예레미야와 똑같은 취급을 받아 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애굽에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다. 전승에 의하면 그가 예레미야와 함께 바벨론에서 죽었다고 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고 난 뒤 급격하게 영향력을 상실했으며 그를 따르던 많은 제자를 잃어버렸다. 그는 결국 옥에 갇히게 되었고 잔치의 여흥을 돋는 제물이 되기 위해 목이 잘리고 말았다.
이들이 갖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그들이 모두 고난 중에 있을 때 바룩은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다"(렘45:3)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였다. 반면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역과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가 옥에 있을 때 예수님에 대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마11:3)라고 질문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들은 모두 주님이 "마시려는 잔"을 마신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시대에 많이 기억되거나 혹은 사람들에게 많이 존중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마신 잔으로 인하여 주님에게 기억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바룩에게 예레미야는 이렇게 축복한다.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 같게 하리라" (렘45:5)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들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마11:11)라고 최고의 칭찬을 하였다.

젊은이나 나이든 사람들이나 모두 최고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는 차이가 없다. 큰 자가 되고 싶은 야망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미친듯이' 주님 일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가문 속에서 또 자기 형제의 삶을 비교하면서 '대사'를 경영하고 싶은 바룩과 같은 사람들이 있고 또 온 세상이 자기 앞에 와서 무릎을 꿇으며 죄를 고백하는 영광스러운 인기와 영향력을 얻었던 요한과 같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오늘날 '리더쉽'이라는 단어는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주님의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도 똑같은 야망을 갖고 있었고 그들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분노하던 열명의 제자들도 같은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야망과 리더쉽이 아버지의 일을 다 이루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미전도종족, 특히 무슬림들에게 나아가는 데에는 야망과 리더쉽과 비젼이 아니고 "내 잔" 곧 예수님이 마셨던 잔을 마시는 자들이 필요하다. 그렇게 섬기는 자요 종이 되기를 원하는 자라면 자신들의 믿는 것을 인하여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승리가 아니고 참된 신앙의 승리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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