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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약한 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 홍화옥 선교사

대학교 1학년 때 주님은 나를 만나주셨습니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텅빈 가슴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고 있을 때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나의 삶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절망감, 무료함, 혼돈, 방황 대신에 목적과 확신, 기쁨 그리고 내 삶에 의미를 주셨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주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헌신으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그분의 비밀하신 구원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바로 이 일에 나를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7년전 아프리카 선교사로 헌신하여 지금까지 케냐를 중심으로 동부, 중부 아프리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다시 한 번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해도 저는 선교사의 길을 택할 것입니다. 저는 선교사로서 17년이라는 젊음을, 삶을 아프리카 땅에 묻었습니다. 그렇게 아프리카가 좋으냐고요? 네! 저와 제 가족은 아프기카가 너무 좋아서 그만 17년이라는 세월을 그곳에서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시고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을 주셔서, 우리를 사용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특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직책도 주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증거하고 그분의 계획을 이루는 일에 그분의 동역자로 쓰임을 받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17년이라는 기간이 놀랍고 흥분되고 기쁨에 찬 기간만은 아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쓰러짐과 실패, 기쁨과 승리로 점철된 기간이었습니다.

17년 전만 해도 선교라는 단어는 한국교회에서 아주 희귀한 단어였습니다. 선교사로 헌신된 사람들을 준비시켜 줄만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우리 가족이 아프리카로 떠날 때 큰 아이는 2살반, 둘째는 6개월이었습니다. 이때는 전 가족이 한꺼번에 여권을 받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극심한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저의 남편만이 겨우 6개월짜리 단수여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족을 뒤에 남긴 채 홀로 6개월짜리 단수여권을 들고 남편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에 저는 두 어린아이와 함께 이 땅을 떠나 새로운 모험의 발걸음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주님의 부르심과 그에 대한 헌신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과 흥분으로 가득차서, 한국 땅을 떠나면서 우리 자신에게 앞으로 다가올 장애물과 당면하게 될 어려움들이 어떠한 것일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캠퍼스 사역, 교회청년사역, 제자 삼는 사역 등으로 어느 정도 우리들이 준비되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한국에서 우리를 쓰신 하나님이 아프리카에서도 동일하게 사용하시리라는 믿음과 열정 하나로 한국 땅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당할 어려움과 상처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그렇게 용감하게 나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저희 가족은 아프리카로 들어가기 전 아나스타시스라는 국제선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선교선박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세계 20여 개국에서 온 200여 가족이 승선하여 훈련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유일한 한국인 가족이었습니다. 갑자기 다른 국제 문화 속에 들어온 우리 가족에게는 모든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벗어나 갑작스럽게 다른 문화와 언어 속에서, 우선 영어를 익히며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 적응하며 훈련을 받는 일은 정말 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우리가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말을 할 줄 모르면 참으로 바보같아 보이는 경험을 해 보았습니다. 많은 각양의 은사들과 재능을 소유한 다른 국제 선교사 팀과 접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등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받은 훈련과 준비는 앞으로 해야할 사역에 비해 너무나 미미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우리를 낮추시고 고치시는 은혜를 많이 맛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동시에 내 안에 깊이 열등감도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 열등감은 외국인 선교사들과의 비교에서 나온 것이었기에 무엇인가를 성취하여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아니면 우리 자신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은 성취욕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우리 가족은 아프리카 케냐의 항구도시인 몸바사에게 첫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서양선교사, 아프리카 현지인 그리고 유일한 한국인인 저희 가족이 같이 선교공동체를 이루어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현지언어를 습득하며 현지 문화를 적응하는 또 다른 훈련과정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온 선교사들이건 막론하고 모두가 다 아픈 상처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각 나라에서 각자가 자라난 배경 속에서 무엇인가 아픔을 가지고, 아니면 어딘가 해결되어야만 하는 부분들을 안고 선교지에 모여서 사역합니다. 그리고 또다른 문화권 안에서, 새로운 문화충격 속에서 이 아픔과 문제들은 더 크게 작용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입는 일이 선교지에서는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희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선교센터를 이끄는 미국 지도자와의 충돌은 첫 사역을 시작하는 우리 부부에게 큰 아픔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지도자의 대한 불신감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자꾸 무너져 내리게 되었습니다. 열등감이 더해지면서 성취욕이 우리 삶의 한부분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안은 채 이곳에서의 생활을 마무리 짓고, 드디어 우리의 사역지인 나이로비에 선교베이스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지탱해 주시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는 주님의 은혜 안에 이 선교 베이스는 서로 다른 12국적을 가진 60-70명의 선교사들이 동역하는 선교 공동체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 선교 팀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우리 자신의 능력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팀은 그야말로 컬러풀한 팀이었습니다. 서양인, 아프리카 현지인, 한국인들이 섞인 국제선교 팀을 이끌어 가기에 우리 부부는 역부족을 느꼈습니다.

지도자의 자리는 공격받기 쉬운 또한 상처받기 쉬운 자리입니다. 오해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입니다. 누구든지 선교사로 헌신하고 나가면, 영역은 다를 수 있지만 어떻든 지도자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모두는 공격을 받고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미 아픔과 상처가 있어 치유되지 않은 채 선교지에 간다면 우리가 받을 상처는 더욱 더 클 것입니다. 바로 해결되지 않은 아픔들은 쓴뿌리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쓴 열매를 맛보게 할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러한 국제 팀을 이끌고 사역하면서,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심한 실패와 좌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오해를 받고 비난을 당할 때는 분노와 배신감에 자기방어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단단해지고 주위 사람들에 대하여 날카로운 마음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심한 실패감으로 아픈 나의 내면은 상한 심령이 되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도록 무너져 내려가는 경험도 했습니다. 갈 곳은, 치유를 받을 곳은 주님의 은혜의 보자 앞밖에는 없었습니다. 주님 앞에 이 아픔들을 내려 놓을 때 나의 마음속에 주님은 새로운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겪는 이러한 아픔과 상처를 주님도 똑같이 경험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해하시고 치유하실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도다”(이사야 53:3-4)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또 경험할 수도 없는 상상을 초월한 거절감과 상처를 경험하셨습니다. 그분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사람들, 그들 때문에 이 땅에 그분이 오셨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주님이 그토록 알리기를 원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분을 거절하고 그분께 대항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그분은 완전히,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분의 존엄성은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명성도 잃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자들도 다 잃었습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우리의 죄를 다 그 몸에 지시고 우리를 위해 죄인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내면세계가 그분을 지탱해 주는 통합성 존재 그 자체가 모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그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 아버지마저도 주님에게 등을 돌리셨습니다. 이러한 아픔을 친히 경험하신 주님 앞에,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 나의 상처를 찌르는 말들과 상처들을 가지고 나갈 때, 주님은 나에게 ‘용서’라는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연약한 자리에 있을 때 우리는 두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좌절감, 무기력, 분노에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용서’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주님의 치유를 경험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용서’는 나를 먼저 용서하신 그분의 용서를 다시 한번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훈련도 많이 받았고, 실력과 능력을 갖춘, 어느 정도 수준의 선교사라고 스스로 생각해 봤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서 이러한 것들이 무너져 내릴 때 나는 내가 얼마나 교만한 사람이었는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용서가 아니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인 것이었습니다. 또한 주님은 무조건적인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아버지 앞에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나갈 때 주님은 새로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선교사역과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우리가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딸이기 때문에, 부인할 수 없는 자녀라는 신분 때문에, 나의 실수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패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받으시고 무조건으로 주시는 사랑 안에서 치유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항상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의 실패는 위기가 아니라 또 하나의 기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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